기계와 함께 걸어온 외길

권승관 지음

판매가(적립금) 24,000 (1,200원)
분류 나남신서 1877
판형 신국판
면수 356
발행일 2016-07-11
ISBN 978-89-300-88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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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24,000

기계 외길 70년, 기업인의 근본을 묻는 시간

화천그룹 창업자 권승관의 뚝심경영

 

서암 권승관은 1916년에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였다. 모두가 가난했으므로, 그도 굶었다. 10대 소년 권승관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주물공장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기계와의 첫 만남이자 기업인의 근본을 묻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서암 권승관이 1952년 설립한 화천그룹의 역사는 한국 기계공업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화천이 세운 발자취를 잠깐 일별해 보면 알 수 있다. ‘국내 최초 벨트식 피대선반 개발’, ‘국내 최초 NC선반 개발’, ‘국내 최초 CNC밀링기 및 COPY밀링기 단독 개발’, ‘국내 최초 NCTC 개발’ 등. 가장 기본적인 공작기계조차 드물던 시절 서암은 선반을 국산화하고 독자적 기술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화천은 ‘공작기계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시련도 많았다.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발맞춰 창원기계공단에 대규모 공장을 조성하려다 회사가 위태로웠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고난은 노ㆍ사가 화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위해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봉급 보류를 감수했고 운영자금을 변통해 온 것이다. 서암의 리더십과 인격을 믿지 않았더라면 이뤄지기 힘든 선택이었다.

회사 규모가 커지자 주변의 유혹도 많아졌다. 서암은 업종 다각화, 부동산 투자 등을 여러 차례 권유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쇳물 먹고 살아온 사람은 다른 물 마시면 안 된다”면서 유혹을 뿌리쳤다. 그가 70년 외길인생을 묵묵히 걸어온 비결이다.

오락가락하는 세상이다. 언뜻 무수한 가능성으로 가득해 보이지만 정작 뭐 하나 진득이 붙들고 물어지기는 또 어렵다. 휘청대고 넘어지기 일쑤인 젊은이들에게 서암 권승관이 손을 내민다. 말을 건넨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가 없다. 내가 한번 선택해서 나아가고자 한 길을 좀 어렵다고 해서 바꾸거나 되돌아설 수는 없었다. 앞길에 난관이 닥치면 오로지 이겨내고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일념一念뿐이었다. 바로 이런 신념이 지금까지 나를 밑받침해 준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발간사 권영열 화천그룹 회장 5

머리말: ‘기계 인생’ 70년 세월을 돌아보며 9

 

 

1고난과 모색의 세월

1장 힘겨웠던 성장시절 19

2장 철공 인생의 시작 39

3장 근면이 가져다준 안정 59

4장 주인으로 새 출발 71

5장 전쟁의 와중에서 87

6장 화천시대를 열다 99

7장 풍류 한 시절 111

 

2화천과 더불어 공작기계와 더불어

1장 공작기계에 도전하다 137

2장 신용이 최고의 재산 167

3장 창원공단 입주의 모험 201

4장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231

5장 화천의 자부심과 신념을 지키자 265

 

3가족 단상 293

부록 오늘의 화천 329

 

권승관 창업회장 연보 349

화천 연보 351

서암문화재단 연보 353

권승관(權昇官)

191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1932년 일본인이 경영하는 주물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어가 기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1952년 합명회사 화천기공사를 설립하였다. 일찍이 가장 기본적인 공작기계인 선반을 국산화하고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국내 최초 벨트식 피대선반 개발’, ‘국내 최초 NC선반 개발’, ‘국내 최초 CNC밀링기 및 COPY밀링기 단독 개발’, ‘국내 최초 NCTC 개발’ 등은 그 성과이다. 기계공업육성발전 대통령표창(1977), 수출의 날 대통령표창(1980), 기술개발 산업포장(1984) 등을 수상했다. 1998년에는 조선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2년에는 올해의 공작기계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4년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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