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당분'과 '센티멘털'이 첨가된 오늘날,
참-외로움, 그 꿋꿋한 다릿심과 싱그러운 땀내, 청량한 고요를
다시 찾는 아름다운 산문들 !
신문과 잡지에서 인터뷰 전문기자로 오래 일한 칼럼니스트 김서령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참외는 참 외롭다》는 발랄한 제목만큼이나 경쾌한 그의 산문들을 한데 모았다. 서령(瑞鈴), 상서로운 방울소리라는 그의 이름 탓일까, 한 장 한 장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분 좋은 방울소리가 들려오는 듯 행복해지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의 대표를 맡고 있는 만큼 그의 시선은 언제나 오래된 것, 사소한 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향해 있다. 청계천의 시작점에 자리 잡고 생경한 색과 모양으로 뾰죽 솟은 소라탑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그이지만 그 곁에 피어난 작고 여린 들풀들에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야 마는 것. 그것이 바로 김서령의 글, 그 저변을 이룬다.
이제는 모두 없어지고 마지막 남은 성냥공장에 작지만 굳센 믿음을 보내는 것, 동네 길가에 누가 내다버린 낡은 대바구니를 냉큼 집어들고 돌아와 마당 한켠을 내어주고는 그 안에 손님처럼 찾아든 여린 야생화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는 것, 어릴 적 유난히 약한 손녀를 대추나무에게 딸로 주며 대추나무 같은 억셈과 장수를 두손 모아 빌던 할머니의 간절함을 잊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저자 김서령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사소함 속의 위대함을 놓치지 않고, 걸으면서 생각하는 사색의 힘을 믿는 그의 시선을 쫓다보면, 무미해진 당신의 일상마저 어느새 충만한 의미를 지닌 채 다가오게 될 것이다.
김서령의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엄마와 딸, 그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끊어질 듯한 기침을 기억하고, 딸의 수능시험날 길상사에서 멈출 수 없던 간절한 절, ‘관세음보살’ 외는 소리에 뚝뚝 흐르던 눈물을 체험하고, 어른이 되어 곧 엄마의 품을 떠날 딸의 창에 풍경을 걸어주는, 딸이었고 엄마였던 그의 고백 앞에 울컥이는 마음을 멈출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다.
참외는 왜 외로울까? 진정한 참-외로움을 이야기하다!
홀로 피어야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다. 곁엣 놈에게 방해받지 않아야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 단독자로 용맹정진해야 몸 안에 단맛을 충분히 저장할 수 있다. 외가 홀로 비와 어둠과 바람과 땡볕을 견디고 또 누리는 것은 그 길만이 안에서 익어가는 성숙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외’의 진정한 의미다.
― 참외는 참 외롭다 中
오늘날의 외로움엔 달짝지근한 ‘센티멘털’이 자리 잡았다. 홀로, 노랗고 향기롭게 익어가는 참외의 참-외로움이 아닌 나약한 의존과 절제되지 않은 감정의 호소만이 남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진정한 외로움, 홀로 성숙하는 단단한 마음과 곁눈질 하지 않는 곧은 마음의 축이 달달한 당분, 쉽사리 약해지는 무른 징징거림에 자리를 내준 것은 언제부터인가. 참-외로움, 그 꿋꿋한 다릿심과 싱그러운 땀내, 청량한 고요를 다시 되찾게 하는 글들을 이 책, 《참외는 참 외롭다》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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