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가슴으로

이만섭 지음

판매가(적립금) 24,000 (1,200원)
분류 나남신서 1760
판형 신국
면수 424
발행일 2014-06-05
ISBN 978-89-300-87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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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24,000

뜨거운 가슴에 국민을 안고 격동의 현대사를 정면돌파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는 우리 현대사에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던 것인가?《정치는 가슴으로》는 이러한 물음에 ‘아니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한 정치원로의 고백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50여 년의 정치역정을 담은 이 책은 국민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리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며 ‘한순간도 가슴에서 국민을 내려놓지 않았던’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이승만 정권이 몰락하던 자유당 말기에 기자의 길에 들어선 이만섭은 3․15, 4․19, 5․16 등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온몸으로 겪는다.〈동아일보〉정치부의 열혈기자였던 그는 부정과 불의의 현장을 취재할 때면 항상 국민들의 입장에서 울분을 참지 못했다. 4․19의 싹이 되었던 2ㆍ28 대구학생시위에서는 몸싸움을 벌이며 무술경관들에게 구타당하는 어린 학생들을 구해주었고, 4․19 민주혁명 때는 최루탄이 이마에 박혀 숨진 김주열군의 참혹한 주검을 빼돌리려 한 자유당 정권의 저열한 음모를 추적 보도함으로써 전국적 규모의 항거를 불러일으켰다.
 
국회에 진출한 이만섭이 추진했던 정책들은 보면 그가 정계입문 후에도 변심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당 정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늘 고통을 당하지만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들이었다. 우선 그는 ‘용공’이라고 몰리면서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남북 가족면회소를 제안한다. 또한 당시 약소국이던 우리나라에서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깡통을 찾는 배고픈 어린 소년들에게조차 총을 쏘던 주한미군의 횡포를 막고 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미 행정협정 체결을 제안한다.
 
14대, 16대, 두 차례의 국회의장을 역임하면서도 국민을 기만하는 날치기를 없애려고 노력했고, 여야가 대립할 때마다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행복 추구라는 대전제를 각성시키며 화해를 도모했다. 이만섭은 보이지 않지만 늘 자신을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이만섭은 박정희의 사람이 아니었다. TK계의 대부도 아니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도 않았다. 그는 여느 정치인들처럼 정파를 만들고 자기 사람을 관리하지 않았지만 그로써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50년을 달려왔다. 부끄럼 없는 세월이었다. 
 

제1편 식민지와 전쟁 속에서 단단해진 꿈

 

개구쟁이였던 나의 어린 시절
잔혹했던 일제 식민지 교육
민족의식을 싹틔워 준 민족사학 대륜중학교
일요일에 울린 총성으로 평화가 깨어지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려 날개를 펴다
 
 
제2편 열혈기자로 격동의 시대를 정면돌파
 
연세대학교 털보 응원단장 시절
격동의 현대사 속에 들어선 기자의 길
4·19 민주혁명과 독재정권의 몰락
구국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5․16 
‘동아일보필화사건’과 인생의 시련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의 첫 만남
 
 
제3편 시대 아픔 나누는 국민 대표로 정계입문
 
박정희 의장 돕고자 정계입문 결심하다
미국의 방해에도 민심은 박정희를 선택했다
반대파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든 박 대통령의 용인술
이산가족 만남을 위한 첫 시도, 남북가족면회소 제안
민족의 권익보호를 위한 최초의 한미행정협정 체결
3공 최초의 위기 6·3 사태와 JP의 2차 외유
재벌밀수에 경종 울린 김두한 의원의 ‘국회 오물투척 사건’
대구에서 출마, 이병철 회장과 대결
박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뚫린 경부고속도로
 
 
제4편 공화당 집권 후반기 여당 정치인으로서의 고뇌
 
4․8항명, 당명보다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
박 대통령의 설득에도 3선개헌 반대
대의를 따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김형욱의 반발과 박 대통령의 비밀약속
3선개헌 후 멀어진 박 대통령
10월유신과 독재체제 속에서 8년간 와신상담
초심을 잃은 공화당 정권의 표류에 일침을 가하다
‘옳소’ 국회가 ‘옳지 않음’을 밝히다
10․26, 그 비극의 징후들
 
 
제5편 국민당 당수로 민주화 위해 종횡무진
 
민주화의 대로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로 6․29의 씨앗을 뿌리다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 ‘학원안정법’을 저지하다
정국 혼란 속 영수회담에서 얻어낸 ‘88올림픽 후 개헌’ 
직선제와 내각제의 갈림길에서
박종철 사건과 흔들리는 정국
전 대통령의 방향 선회, 4․13 호헌 선언
6월 민주항쟁의 횃불이 된 연세대 이한열 군
‘정치인합동용퇴론’으로 민정당의 일방통행을 제지하다
전·노에게 직선제 설득, 6․29선언을 이끌어내다
직선제 개헌안에 쏟아지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야권 분열로 역사의 시곗바늘은 다시 80년대 초로
봄은 왔으나 꽃은 피지 않았다
 
 
제6편 문민정부 개막을 위한 고군분투
 
여소야대와 중간평가의 파고 속에서 출발한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의 제의로 이루어진 정계복귀
후계 인선으로 고민하는 노 대통령에게 내민 YS카드
YS에게 노심 전달, 여권후보로서의 입지를 다지다
노 대통령 탈당 후 YS 지원 유세
YS의 승리와 30년 만의 문민정부의 수립
 

제7편 14대 국회의장으로 정정당당한 국회 확립

14대 국회의장 취임 약속 “날치기 없애겠다”
국회의장으로서 무너진 국회 위상 재정립
YS의 날치기 요청에 맞서다
대화와 타협으로 힘의 논리를 제압하다
예기치 않은 퇴임과 미완의 꿈
YS와의 조찬과 풀리지 않은 의문들
 
 
제8편 세대와 정파를 잇는 다리가 되어
 
국회의장직 물러나고도 정부·여당에 계속 충고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 국회에서 조사
TK 민심 이탈을 막으려 15대 총선 총력 지원
7용이 난립하는 대권경쟁에서 경선관리 대표를 맡다
대선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진 여당
이인제, “병역 의혹 안 된다” 대선 출마
부끄러운 정치 현실에 의원 임기 남겨놓고 신한국당 탈당
여야 협공에 급부상하던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고전
IMF체제 속에서 치러진 15대 대통령 선거
대승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국민회의와의 통합
 
 
제9편 16대 국회의장으로 국민의 국회 확립
 
16대 국회의장 취임 약속 “국민을 위한 양심의 의사봉 치겠다”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파동
“만섭 오빠 파이팅” 국회 홈페이지에 응원 글 쇄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넘어
헌정사상 최초로 당적을 떠나 국민의 국회의장이 되다
‘국민의 국회’ 약속 지키고 박수 소리 속에 의사봉 넘겨
국회 외교로 한반도 평화와 국익을 위해 힘쓰다
‘한사모’를 통해 한국과 세계의 교류를 돕다

지은이 ㅣ 이만섭
이만섭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0년 대구의 전통 민족사학 대륜중학교(6년제)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하였다. 그러나 공사 동료들이 처벌을 받게 될 상황에 처하자 생도회 회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 퇴교하였다. 이후 연세대에 복학하여 털보 응원단장으로 이름을 날리며 평생의 반려자 한윤복을 만나게 된다. 1956년 언론계에 투신한 그는 4ㆍ19 당시〈동아일보〉정치부 기자로 김주열군의 죽음을 비롯한 여러 특종기사를 다루며 불의에 항거하고 혁명정신을 고취하는 자유언론인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1963년에는 정치계에 투신하여 8선의 국회의원과 2번의 국회의장을 역임하며 50여 년간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올곧게 헌신하였다. 국회의장 재임 시에는 헌정사의 고질병인 이른바 날치기를 거부하여 국회의 위상을 바로 세움으로써 헌정사에 길이 남을 공적을 남겼다. 또한 스스로 당적을 이탈하여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려 했으며, 여야를 초월한 공정한 국회운영과 투철한 의회주의 정신으로 한국의 의회정치 발전과 민주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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