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덮친 미증유의 국가적 위기는 쓰나미나 원전 사고만이 아니다.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센카쿠 충돌․국채 폭락․수도직하지진
사이버테러․판데믹․에너지 위기
북한 붕괴․핵테러․인구감소
후쿠시마, 그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3년, 일본은 물리적 피해 이상의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바로 ‘국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이다. 일본의 시스템은 어떠한 재해에도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리라는 믿음, 그리고 일본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할 것이라는 믿음이 붕괴된 것이다.
원전 사고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최악의 사태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도록 곤도 슌스케 원자력위원장에게 극비리에 지시했다. 사흘 후인 3월 25일 곤도 위원장은〈후쿠시마 제 1원자력발전소의 예측불가 사태 시나리오 소묘〉라는 보고서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모든 연료 풀이 파손되어 코어 콘크리트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최악의 경우 170킬로미터 이원(以遠) 지역까지 주민들을 강제이전 시켜야 하며, 250킬로미터 이원 지역의 주민들이 이전을 희망할 경우 받아들여야 한다는 평가결과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은 2011년 12월이 되어서야 공표되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보고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것을 일부러 가정해 만든 것으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걱정시킬 수 있어 공표를 미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재건이니셔티브는 설립 후 첫 프로젝트〈후쿠시마원전사고독립검증위원회〉를 통해 국민의 시선에서 사고 대응의 문제점, 사고가 발생한 역사적․구조적 배경 등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거버넌스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정부의 위기관리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후쿠시마 사고보다 더 큰 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9개의 국가적 위기를 상정한 위기관리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9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려내고, 시나리오대로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위기대응상의 맹점과 사각지대를 찾아내고 교훈을 도출하여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한 방책을 찾고자 한 것이다.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이 책의 제1부에는 ‘센카쿠 충돌’, ‘국채 폭락’, ‘수도직하지진’, ‘사이버테러’, ‘판데믹’, ‘에너지 위기’, ‘북한 붕괴’, ‘핵테러’, ‘인구감소’ 등 가까운 미래에 일본이 직면할 수 있는 9가지 위기를 상정한 시나리오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수도직하지진, 핵테러로 인한 주요인사의 사망 등 각각의 위기는 비록 최악을 상정한 것이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실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이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1부의 시나리오에서 도출할 수 있는 교훈을 바탕으로 ‘법제도’, ‘관민협조’, ‘대외전략’, ‘총리 관저’, ‘커뮤니케이션’의 5가지 부문에 초점을 맞춰 효율적인 위기관리 혹은 위기대응을 위해 필요한 정책들을 구체적으로 제언한다.
우리에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북한 붕괴’ 시나리오이다. 보수파의 쿠데타로 북한이 내전 상태에 빠지고, 이를 계기로 한국군이 평양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통일을 성취하며, 이후 통일 한국은 북한에서 개발된 핵으로 무장한다는 상황 전개는 매우 흥미롭다. 통일은 단계적으로 올 수도 있지만, 이렇듯 갑작스럽게 찾아올 개연성 또한 충분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일본에게 있어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그리고 중국이나 미국에게도 북한의 붕괴와 한반도 통일이 가져올 동아시아 역학관계의 변화는 몹시 부담스런 일일 것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지도 정말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게 한다.
우리의 대응
이 책의 모태가 된 재단법인 일본재건이니셔티브의 ‘위기관리’ 프로젝트에는 관련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의 전․현직 고관들도 참여해 그들의 의견들이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는 일본 정부의 정책에 실제로 반영되고 있다. 지난해 논란 끝에 제정된 ‘특정비밀보호법’ 등이 그 예이다. 이 책에 나타난 시나리오상의 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2부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 제언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위기대응과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은 공상이며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고 치부해버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와 일본이 처한 사정은 서로 다르지만, 국채 폭락, 사이버테러, 판데믹, 에너지 위기, 핵테러, 인구감소 등의 문제는 언제든지 우리나라를 직격할 수 있다. 이 책이 우리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국가적 위기를 상정하고 이에 대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봄으로써 현재의 법제도나 위기관리 체제가 우리의 재산과 생명, 영토와 안전을 지키기에 충분한지, 그렇지 않다면 국가와 사회,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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