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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로 불리기를 거부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철학을 총정리
미셸 푸코(1926～1984)는 20세기 철학사에 우뚝 솟은 거목이다. 그런데도 강단 철학계에서는 그를 철학자로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철학자로 불리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명한 진실로 되어 있거나 보편적 진리로 알려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는 회의주의자였고, 철학은 인간의 영원한 문제보다 ‘오늘’과 ‘현재’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사상체계를 견고하게 구축하는 철학자들과는 달리,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동안 계속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혁명적 열정의 소유자였다.
빡빡 깎은 대머리의 특이한 외모, 동성연애자, 에이즈 환자 등 푸코의 외피 때문에 정통파에서는 그를 외면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좁은 틀의 철학을 벗어나 다양한 사유(思惟)의 세계를 펼친 르네상스적 지식인이었다. 그의 저서가 서점의 역사, 정신분석학, 사회학, 의학, 여성학, 문학, 문화비평 등 여러 코너에 꽂혀 있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푸코 철학은 오히려 문학, 미학, 문예비평 분야에서 더 주목을 끈다. 강단에서보다 현장에서 더 각광을 받는다.
그가 종횡무진 누빈 연구분야를 요약하자면 권력과 지식, 그리고 이 둘의 상호작용이다. 그는 ‘아는 것은 힘’이라는 다소 진부한 격언에서 연구의 출발점을 잡았다. 인간에 대한 앎(지식)과 인간을 옥죄는 힘(권력)의 관계에 그는 천착했다.
문학평론가가 30년에 걸쳐 쓴 푸코 철학분석
《미셸 푸코와 현대성》의 저자 오생근은 철학자가 아니라 불문학자 겸 문학평론가이다. 오생근 교수는 푸코를 연구하게 된 계기를 이 책의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내가 푸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때였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소설《나자》의 신비로운 주인공이 미친 여자로 취급되어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이 정의하는 광기는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우연히 《광기의 역사》를 읽은 것이 푸코의 세계로 들어간 출발점이었다. 그 후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말과 사물》,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은 《감시와 처벌》 등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공부하던 프랑스 문학에서와는 아주 다른 새롭고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 내가 초현실주의를 좋아하게 된 동기가 ‘삶을 변화시키자’는 랭보의 명제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종합하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적 혁명 때문이었는데, 그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전복적 사유와 한계 경험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푸코의 삶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그의 책을 통해 내가 변화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자 축복이었다.
저자는 1983년 초에 귀국하여 2년쯤 지나서 “미셸 푸코, 지식과 권력의 해부학자”라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1990년대 말까지 몇 편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 10년쯤 연구를 중단하다가 2011년 8월에 서울대를 정년퇴임한 이후 1년 반 동안 집중적으로 푸코에 관해 5편의 논문을 쓰고, 이전에 쓴 논문들을 수정했다. 이 책에 실은 12편의 논문 중에 6편은 퇴임 전에, 6편은 퇴임 후에 썼다. 저자가 이 책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쯤 되는 셈이다.
12개의 다양한 논문… 권력의 본질을 설명
저자는 “이 책은 푸코의 사상적 편력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그 편력을 추적해 본 한 연구자의 비체계적 독서 경험을 모은 것”이라는 겸사를 밝혔지만 실제로는 푸코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했다.
모두 12편의 논문들은 이 책 안에서 독립적이면서 비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논문 안에서 언급된 말이나 논의된 주제가 다른 논문 속에서 중복될지라도, 종합적인 관점에서 저자가 이러한 부분들을 제거하지 않은 까닭은 그 부분이 소속된 논문 속에서 나름대로의 필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푸코의 현재성과 현대성’은 현재성과 현대성이 동의어처럼 쓰이면서도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기 위한 작업이다. 이 논문을 1부에 넣은 것은 푸코에게서 중요한 ‘현재성’의 개념이 ‘생명관리정치’(le bio-politique)와 연결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식과 권력의 해부학’은 푸코의 독특한 권력개념을 탐구하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가령 아우슈비츠의 철도기관사가 유태인을 죽음의 길로 운송하는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나치라는 괴물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봉급을 가져오도록 요구하는 권력, 즉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이러한 권력관계는 우리의 삶에서 무수히 많을 것이다. 현대의 권력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권력은 현대사회의 어디에서나 모세관처럼 촘촘하게 확산되어 있다.
말과 사물과 인간의 죽음… 휴머니즘의 종말
2부에 실린 논문들 중에서 ‘푸코와 바타유’는 푸코의 경험과 바타유의 경험이 어떻게 일치되고, 어떻게 다른지를 논의한 것이다. ‘푸코, 칸트, 보들레르의 현대성’은 푸코에게서 주체에 대한 관심이 말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했음을 밝히려 작성됐다. ‘데카르트, 니체, 푸코, 들뢰즈의 육체’는 서양철학에서 육체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육체의 철학사라는 관점에서 검토한 논문이다.
3부에 실린 논문들 중에서 ‘말과 사물과 인간의 죽음’은 인식론의 차원에서 휴머니즘의 종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광기의 역사》와 침묵의 고고학’에서는 정신의학의 탄생과정에서 이성의 독단적 언어가 군림하면서부터 타자의 언어로 소외된 광기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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