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소설이 있다. 물리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삶’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넌 이의 이야기다. 17년 전 이념과 권위가 뒤틀린 북쪽 땅에서 탈출해 이제는 한국 국적을 가진 소설가 장해성이 장편소설《두만강》을 발표했다. 그는 중국 길림 태생으로 해방 후 1962년 북한으로 넘어가 정부 호위총국 군사호위부에서 복무하고,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조선중앙방송〉의 기자ㆍ작가로 20년간 일하며 북한 ‘상류층’으로 살았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배고픔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북한의 수많은 민중과 거짓권위와 오만한 허세로 철벽을 두르고 주지육림 속에 묻혀 지내는 지도자층의 모습, 이 양극단의 지옥 같은 현실을 목도하면서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을 결심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한줌도 못 되는 권력자들이 어떻게 한 나라와 그 백성을 처참하게 만드는지, 과연 ‘인민의 배신자’는 누구인지 묻고 싶어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소설의 주인공은 평양에 사는 은영과 혜영 자매다. 의사인 아버지 홍준석이 ‘말(言) 반동’ 누명을 쓰고 정치범으로 몰려 국가보위부에 끌려간 후, 자매도 중국과의 접경 지역, 자강도 위연으로 추방당한다. 평양에서의 비교적 안락했던 삶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위연의 임산사업소 작업장에 배치받아 당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고 노동하며 겨우 삶을 이어나간다.
준석은 보위부 예심의 모진 고문을 통과하고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수용소로 이송되던 중 우연히 발생한 열차사고를 틈타 탈출에 성공하는데, 이때부터 보위부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두 딸을 찾기 위한 준석의 여정이 시작된다. 한편, 준석의 탈출 소식이 전해지고 은영과 혜영도 도피의 길에 오른다.
자매의 삶은 하루하루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위연에서 180리 떨어진 강계에서 두부장사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끼니를 해결하는 나날. 악질 ‘조선여자 장사꾼’ 왕가에게 겁탈의 위기를 겪기도 하고, 도둑 누명을 쓰고 노동단련소에 수감되어 돼지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에 동원되는 인권말살의 현장을 체험하기도 한다.
‘평범한 삶’, ‘강냉이죽이라도 좋으니 굶지만 않는’ 그런 하루를 위해 자매는 시커멓게 사품치는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한다. 강 너머에 있을지도 모르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목숨을 건 도강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그친다. 혜영이 국경경비대에게 붙잡힌 것이다. 노동단련소에 끌려가지만, 이미 수감인원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얼마 안 되어 다시 석방되고, 북한 땅을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인신매매단을 통해 국경을 넘어 연길에 도착한다. 하지만 강계에서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혜영은 다시 왕가의 손에 팔려가고, 왕가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중국돈 1만2천 원에 다시 중국 산골 마을로 팔려가기에 이른다.
혜영의 연인, 철민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은영, 혜영, 그리고 준석까지 가족이 모두 연길에서 재회한다. 이들의 삶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남으로 만 리, 중국의 남쪽 국경지대를 넘어 베트남으로, 거기서 다시 한국으로 가고자 하는데….
그들 앞에 희망과 절망이 뒤섞여 사품치는 두만강이 흐른다.
평범한 삶, 그 작은 소망을 좇아 자매의 목숨을 건 도강(渡江)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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