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전하는 따뜻한 사랑과 치유의 방법
걷고, 먹고, 감동하라
‘힐링’이라는 단어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그만큼 현대인의 몸과 마음이 지쳤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정해 놓고 끝없는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고 또 달린다. ‘잠시 멈추어라’, ‘내려놓으라’, ‘용서하라’라는 달관의 메시지들, ‘삶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신은 소중한 존재다’라는 위로의 메시지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가슴에 잘 와 닿지 않고 추상적인 말의 잔치처럼 느껴진다. 힐링조차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되는 세상, 좀더 쉽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구할 수 없을까? 오태진의《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따뜻한 해답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주말 일상이 한심했다. 토요일이면 밀린 잠 잔다며 늦은 아침까지 침대에 누워 있기 일쑤였다. 겨우 외식 한 번 나가는 것으로 가족에게 할 일 했다고 쳤다. 그러다 결혼 25년 은혼 기념일에 아내는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실로 실려 들어갔다. 아내가 기운을 차리고 일어서자 봄이었다. 꽃을 워낙 좋아하는 아내를 태우고 하동 쌍계사에 가 십리 벚꽃 터널을 걸었다. 그 뒤로 부부가 함께하는 나들이가 새로운 주말 일상이 됐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의 저자는 바쁜 기자생활에 쫓겨 주말에도 가족과 소통하기보다는 게으른 휴식을 즐기다 아내의 투병과 수술을 계기로 치유의 필요성을 깨닫고 일상의 행복을 찾기 시작한다.
저자가 실천한 첫 번째 힐링의 방법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거니는 것. 고요한 화엄사에서 한나절 즐기기, 서울대공원 삼림욕장에서 아침햇빛 쬐기, 하회마을 진분홍 꽃잔치 구경하기, 쪽빛 겨울바다 감상하기 등등. 저자는 자연 속에 흠뻑 빠져 마음 속 먼지를 씻어낸다.
화엄사는 비와 안개와 고요에 잠겨 있다. 일기예보 덕분에 호젓하다. 낮게 깔린 운무가 빗소리까지 빨아들이는지 새소리만 영롱하다. 일주문ㆍ금강문ㆍ천왕문 지나는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졌다. 불가(佛家)에선 벚꽃을 피안앵(彼岸櫻)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세계, 피안을 상징한다. 만월당 처마에 구름처럼 머문 벚꽃이 피안의 황홀을 노래한다. 속세 삼독(三毒)이 가신다.
― ‘흑매 야매 올벚에 빠져 … 비오는 화엄사의 한나절’ 중에서
둘째는 맛집 탐방. 옛 추억과 정취가 살아 있는 식당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꼭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즐거운 일이다. 남도 주막의 가오리찜과 막걸리, 보길도 민박집의 푸짐한 밥상, 서귀포 ‘춘자싸롱’의 할머니가 말아주는 멸치국수, 경포해변의 별미 대구탕과 석쇠구이 등.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주는 별미들의 이야기들에 저절로 군침이 돈다.
하루하루 메마른 일상을 살다 사람들은 불현듯 끈끈한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마음이 허할 때, 삶이 허기질 때면 문득문득 국수를 생각한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 ‘마음이 허한 날엔 국수가 먹고 싶다’ 중에서
셋째는 시를 통한 세상 읽기. 저자는 시를 읽으면서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자녀 등 가족의 의미, 나이 듦과 세월의 흐름에 대한 순리, 세상사의 숨겨진 이치 등을 깨닫는다. 시라는 아름다운 거울로 보는 세상의 모습은 작은 것 하나도 빛나고 감동적이다.
시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고 숨결이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 늘 그곳에 있던 것이 어느 날 새롭게 보이는 일이다.…시와 담쌓고 사는 사람도 우연히 접한 시에서 놀라움, 두려움, 슬픔, 기쁨이 가득한 세상을 만난다. 어지럽던 심사가 차분해지고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지고 찌들었던 머리가 맑아진다. 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울림을 함께 나눠 사람들을 묶어준다. … 독자들이 한 편의 시를 읽으며 마음속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고 인생과 일상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 ‘시가 내게로 왔다’ 중에서
걷고 먹고 감동하라. 저자가 몸소 경험하고 적은 체험적 힐링서《사람향기 그리운 날엔》은 여행, 식도락, 시(詩)감상 등 쉽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치유의 메시지를 전한다. 더불어 이철원 화백의 일러스트와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은 시처럼 빛나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냈다. 이 책을 펼치면 고달픈 삶의 행간에 숨은 기쁨과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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