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과 도시

레이먼드 윌리엄스 지음 이현석 옮김

판매가(적립금) 32,000 (1,600원)
분류 학술명저번역총서(학술진흥재단) 354
판형 신국판
면수 648
발행일 2013-04-05
ISBN 978-89-300-86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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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32,000


문화연구의 새 장을 연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대표작
도시는 고대부터 존재했으나 본격적인 도시화는 아무래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흥과 떼어서는 생각할 수 없다. 근대 이후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양대 축으로 삼아 인류 전체를 절대빈곤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생산력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 결과 산업화와 도시화를 먼저 이룬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가 되었다. 다른 지역들이 유럽의 일부가 경험한 근대화 과정을 모방한다면 그 지역들에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것이고, 이는 결국 세계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었다. ‘근대화 이론’으로 일컬어지는 이런 주장들이 창궐하는 가운데, 유럽 일부 지역의 도시는 다른 지역에도 조만간 도래할 발전상을 앞서 보여 주는 사례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이들 도시에 숲을 이룬 고층 건물들, 거대한 공공시설들, 휘황한 밤거리의 조명들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의《시골과 도시》는 유럽의 바로 이 지역, 그중에서도 주로 영국의 잉글랜드에서 진행된 도시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왜 하필 잉글랜드인가? 그것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흥했을 뿐 아니라 이후 세계 전체로 확장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지역으로서, 도시화와 산업화를 이해하고 그것의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는 데 요긴한 사례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시골과 도시》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도시화나 산업화 과정을 다루는 다른 많은 연구서들과 다르다. 우선 다분히 논쟁적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도시를 시골의 미래형으로 보는 데 반대한다. 다시 말해서 단선적으로 나아가는 시간상의 어느 한 점에 시골이 존재하고 그것이 진화하여 도시가 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부정한다. 도시는 시골과 동시대에 존재하고, 시골을 약탈하고 착취하며 성장한다. 도시에서 발흥한 자본은 시골의 농지를 강압적으로 사유화한 끝에 다수의 농민들을 ‘자유로운’(노동력을 판매하는 것 외에는 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노동자로 ‘해방’시키기에 이른다. 잉글랜드가 급속도로 산업화하고 맨체스터를 비롯한 새로운 유형의 도시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것은 바로 시골에 대한 이처럼 잔혹한 침탈―이후 ‘시초축적’이라 불리게 되는―이 수백 년 간 지속된 결과였다.
《시골과 도시》는 이렇듯 잉글랜드의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진행된 잔혹한 역사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의의 범위를 잉글랜드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에 따르면 잉글랜드의 도시 자본이 시골을 붕괴시켰던 것은 시골을 대신하여 식량이나 원료를 제공해 줄 식민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잉글랜드 내부의 시골과 도시의 잔혹사는 잉글랜드라는 ‘대도시적 국가’와 해외 식민지 간의 더욱 폭력적인 역사와 동시적으로 전개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시골과 도시》의 현재성을 확인하는데, 결국 저자는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순차적으로 세계를 동질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같은 시간 속에서 세계를 공간적으로 차별화하는 과정이었고(데이비드 하비), 서구적 근대가 성립한 것은 ‘생각하는 자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식민지를 ‘정복하는 자아’에 의한 것이었음(엔리케 두셀)을 이미 풍부한 사례를 들어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과 도시》의 논쟁적 측면은 시골을 보는 시각에서도 역시 뚜렷하게 드러난다.《시골과 도시》가 출판될 당시 영국에서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재앙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도래 이전 시기를 신비화하고, 잉글랜드의 옛 시골 마을을 ‘유기적 공동체’로 이상화하는 풍조(F. R. 리비스로 대표되는)가 유행하였는데, 저자는 이러한 풍조를 통박한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풍조는 비단 이 시기의 영국에서만 목격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견디기 힘들 때 우리는 언제나 이상적인 ‘황금시대’나 목가적인 시골마을을 향수어린 어조로 읊조리는 목소리들을 어김없이 듣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말하는 ‘유기적 공동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해 보지만, 결국 대다수 민중이 지배계급의 폭력적 침탈에 신음하는 장면들만을 확인하게 될 뿐이다. 자본주의의 도래 이후 도시와 시골 간에 일방적인 지배․약탈 관계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이전 시기의 전통적 시골 마을을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운 이상적 공동체로 상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도시와 대비하여 시골을 이상화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오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도시에서 진행되었거나 지금도 진행 중인 많은 유의미한 변화를 놓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행위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도래 이전과 이후를 관통하는, 그리고 도시와 시골을 두루 포용하는, 넓은 시공간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지배·피지배 관계의 진상을 추궁하는 작업일 것인 바,《시골과 도시》는 바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과 도시》의 두 번째 특징은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학적’ 텍스트들을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빼어난 문학․문화연구자로서의 저자의 이력을 감안할 때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한 편의성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평생에 걸친 문학 연구 작업을 통해서 문학 텍스트가—적어도 근대 이후 한동안 지속된 ‘문학 제도’의 전성기 동안에는—시대의 변화를 감지하는 가장 예민한 촉수들 중 하나로 기능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말과 글은 개인의 개성적 표현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대를 사는 이들이 함께 빚어내는 장엄한 합창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인간들이 어울려 만드는 변화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훌륭한 ‘문학적’ 텍스트란 이러한 변화의 기척을 의미심장하게 담아낸 글일 것이며, 훌륭한 문학․문화연구자들이란 글 속에 담긴 변화의 징후들을 감지하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시골과 도시》는 이미 고전으로 공인된 텍스트를 새로이 해독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지배계급 중심의 주류 문화가 역사의 무덤 속에 매몰해버린 많은 텍스트들을 새로이 발굴해내기도 하면서, 시골과 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역사의 변화가 진행되는 장면을 생생이 그려보이고 있는 것이다.

 

옮긴이 머리말 5
 
 1. 시골과 도시 15 

 2. 관점의 문제 29 

 3. 목가와 반(反)목가 39 

 4. 황금시대 81 

 5. 도시와 시골 101

 6. 그들의 운명과 선택 119

 7. 개량의 도덕 131

 8. 자연이 자아내는 실들 145

 9. 농투성이로 자라다 181

10. 인클로저, 공유지, 공동체 199

11. 파넘 주변의 세 사람 219

12. 멋진 조망 243

13. 녹색 언어 257

14. 도시의 변화 287

15. 도시의 사람들 307

16. 알 수 있는 공동체들 327

17. 그늘진 시골 357

18. 웨섹스와 접경 지역 383

19. 어둠의 도시와 빛의 도시 413

20. 도시의 인간 447

21. 살아남은 시골사람 475

22. 다시 접경 지역으로 507

23. 도시와 미래 523

24. 새로운 대도시 535

25. 도시들과 시골들 553

 


덧붙이는 말 585

옮긴이 해제 587

주요 참고문헌 613

레이먼드 윌리엄스 연보 625

찾아보기 633


지은이 ㅣ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 1921~1988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연구자, 소설가, 사회운동가. 웨일스 변경지방의 철도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후 10여 년간 노동자 교육에 종사하며 초기의 대표작인《문화와 사회》와《기나긴 혁명》을 썼다. 새로이 태동하던 좌파운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신좌파평론》과 같은 매체의 창간을 주도하는 등 영국의 양심적 지식인 사회의 핵심적 인물로 부상하던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계기로 당시의 문학연구 진영을 지배하던 귀족-부르주아지 중심의 문학 전통에 도전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시골과 도시》는 연면히 이어진 민중의 문화적 전통을 발굴․복원하고, 그들이 남긴 노동요, 인터뷰 기록, 법정 진술 등을 연구대상으로 삼는가 하면, 영화와 텔레비전 같은 새로운 매체의 사회적 의미에도 주목함으로써 ‘문화연구’라는 학문영역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그는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는 이른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전개를 목도하면서, 만연한 순응주의와 대결하는 이론적 작업에 전념하였다. 이 시기에 쓰여진《맑스주의와 문학》,《문화사회학》등은 후대의 연구자들에 의하여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문화유물론’이라는 연구방법론으로 정립되었다.
주요 저서로는《문화와 사회》(1958),《기나긴 혁명》(1961),《현대비극론》(1966),《시골과 도시》(1973),《텔레비전론》(1974),《맑스주의와 문학》(1977) 등이 있다.
 
옮긴이이현석(李炫錫)
서울대학교 인문대 영어영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영문학과와 대학원 문화기획․행정․이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작가생산의 사회사》등을 썼고,《우리시대의 비극론》(테리 이글턴),《예술의 사회적 생산》(자네트 월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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