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말
큰 아들 윤기열을 군대에 보내 놓고, 친구들을 만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아들 군생활 얘기를 하게 된다. 몇몇 친구가 “너 언제부터 아들을 그렇게 사랑했냐”고 묻는다. 내가 20여 년간 매일 7시에 출근해 밤 12시 넘어 퇴근하는, 바쁜 기자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다.
일에 바쁜 아버지라고 해서 아들과 대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러나 나는 아들과 제대로 대화한 일이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父子)의 대화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바로 내가 그 경우에 해당한다.
어쩌다 밥상머리에서 “기열이도 좀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면 아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무 말 없이 제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성적이 너무 떨어지지 않았느냐 호통 치면 마지못해 한 시간 정도 공부하는 시늉을 한다. 우리 집에서 이따금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나마 그게 고작이다.
남들은 주 5일 근무라고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1주일에 하루밖에 휴일이 없었다. 그 휴일에는 낮잠 자는 게 일과라서, 가족과 함께 어디 놀러 다니지도 못했다.
‘빵점 아빠’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그렇다고 자식을 위해 사교육을 엄청 시켜준 것도 아니다. 아이 엄마가 “과외라도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과외해서 나아지는 아이가 있고 하나마나인 아이가 있는데, 우리 아들은 하나마나다. 자기가 알아서 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 둬라”고 일축하곤 했다.
놀다가 대학을 못 가도 자기 선택이니, 스스로 책임지도록 하면 된다는, 어줍지 않은 교육철학을 들먹이며 아들에 대한 무관심을 스스로 변명하기도 했다.
그 아버지의 아들도 어지간했다. 학교는 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왔다갔다 했다. 달리 말썽을 피우는 일은 없었지만 공부에는 별 취미가 없다. 뚜렷한 미래의 목표도 없는 것 같고, 도대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유일한 취미는 컴퓨터 게임이다. 고3 수험생 방에서 매일 밤 컴퓨터게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학? 거리가 멀다.
나는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 입대로 밀었다. 군대 가서 고생 좀 하는 것이 빨리 철들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었다.
“기왕이면 확실히 고생하게 해병대로 가라.”
그러나 막상 아들의 군 입대 모습을 지켜보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린 나이에 낯선 환경에서 고생할 아들에 대한 연민이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른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러나 이제 아들은 내 곁에 없다. 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편지뿐이다.
부모와 떨어져서 처음으로 겪는 군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울까. 아픈 것조차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는 군대 규율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고된 훈련은 무사히 받아낼 수 있을까.
이런 상념이 들 때마다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훈련병 아들도 아버지의 편지를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훈련병 생활실의 희미한 조명 아래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읽고 또 읽고,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아들이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어린 훈련병이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흔적이 역력하다. 집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는 그 편지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들이란, 어쩔 수 없는 나의 피붙이란 사실이 몸으로 느껴진다.
‘윤기열 훈련병’의 해병대 교육훈련단 7주.
그동안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족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 7주는 부자간에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10년 7월
윤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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