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저자는 사람에 대한 애정,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런 세상을, 그런 세상을 만들 사람들을 만들어 가는 데 출판이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한순간도 잃지 않는다.
언론으로서의 출판, 그리고 언론 의병장을 향한 꺼지지 않는 꿈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요약 발췌한〈한국언론과 출판의 자리매김〉에서 저자는 독재정권 하의 한국사회에서 언론기관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출판이 대체 언론의 역할을 맡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출판에 대한 저자의 현실인식일 뿐 아니라 그간 출간된 나남출판사의 2,500여 종의 책을 통해 그 자신이 직접 실천해온 사항이기도 하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언론기관을 대신하여 출판이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비유컨대 기존의 언론기관이 ‘관군’이라면, 출판인들은 ‘의병’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스스로 ‘언론 의병장’이 되기를 자청한다. 저자에 따르면 의병장이란 “익명의 민중이나 의병이 아니라 당당하게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쳐 이겨내 역사의 좌표를 공론장에 제시하는 창조적 소수의 지식인”이다.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밤에도 가야 할 먼 길이 있다”라는 프루스트의 시 구절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그것을 자기 자신과의 약속, 설령 실현은 요원할지라도 끝내 간직할 꿈으로 고백한다.
책에서 저자는 몇 번이고 ‘자연채무’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여느 채무처럼 갚지 못한다 해서 법정에 서야 되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는 잊어버려도 빚진 사람은 갚을 의무를 마음속에 새겨두는 빚’을 의미하는 이 ‘자연채무’ 의식을 저자는 이 사회에,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게 품고 있다. 저자가 출판을 언론으로 보고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이러한 채무를 갚으려는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의지로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책,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리는 책’을 고집스레 출간하는 저자는 그것이 언젠가 결실을 거두리라는 믿음을 ‘콩나물시루에 물 주기’라는 비유로 표현한다. 즉, 구멍 뚫린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이 혹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허망하게 느껴질지라도, 어느새 콩나물은 성큼 자라 있으리라는 것이다.
‘어떻게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만이 횡행하고 ‘왜 책을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는 정의의 강처럼 한국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힘의 주체를 그려보고자” 30년 동안 올곧게 한 길을 걸어온 한 출판인의 꿈과 행보는 출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하나의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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