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학문적 업적은 다음 3가지 특징들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페미니스트 입장론을 가장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집대성했다. 통상 페미니스트 인식론의 세 모델로 페미니스트 경험론, 페미니스트 입장론, 페미니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이 거론된다. 이 중에서 페미니스트 입장론은 1970년대에 시작하여 80년대의 전성기를 거쳐 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결합으로 입장론 내외부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현재까지 그 사조를 이어오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인식론이다. 입장론의 창시자이자 대표적 이론가 중의 한 사람으로서 하딩은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입장론자들(도로시 스미스, 낸시 하트속, 패트리샤 힐 콜린스, 힐러리 로즈, 앨리슨 재거, 벨 훅스, 도나 해러웨이 등)의 논의를 정리했고, 입장론을 실증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비시키면서 하나의 고유한 사상으로 체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둘째, 이 책은 “강한 객관성”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입장론에 주어졌던 외부의 비판과 내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강한 객관성”은 하딩이 제기한 가장 괄목할 만한 개념으로 가치중립적 객관성을 비판하면서 초역사적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지식은 사회적으로 위치지어진다는 전제를 갖는다. 그런데 지식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양하게 생산되면 이 중에서 어떤 지식이 가장 객관적인 지식인지와 그걸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지의 문제가 곧 제기된다. 하딩은 여성들의 삶에서 시작하는 연구는 지배집단 남성들의 삶에서 시작하는 연구보다 덜 편파적이고 덜 왜곡된 신념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어떤 사회적 상황이 가장 객관적인 지식을 산출해 내는지 결정할 수 있는 역사적 기준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주변인인 여성들의 삶의 관점과 타자들(제3세계 여성들, 레즈비언들 등)의 위치는 덜 왜곡된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강한 객관성”은 여성들의 삶을 지식생산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상대주의를 극복하게 하는 논리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과학과 다문화주의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것은 여성간, 인종간, 성적 지향성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 위치의 삶에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권력을 발견하여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더 낫게 하는 데 기여하는 지식으로 이어질 수 있게 한다. 서구과학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다문화주의와의 결합은(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과학문명, 출산 중심으로 여성 몸을 규정하는 의료체계에 대한 레즈비언의 개입 등) 타자들의 삶, 즉 지역성의 삶을 드러냄으로써 가능해진다. 하딩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포스트모던 입장론’이라고 밝혔듯이 하딩은 하나의 현실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뿐더러, 현실을 얼마나 더 정확하게 설명하느냐보다는 권력과 지식 간의 관계를, 즉 남성우월과 지식생산이 서로를 구성했던 방식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지역성간의 상호교차성이 야기하는 지식의 다중성은 이 책에서 처음 등장하여 향후 하딩의 연구세계를 주도하는 주제로 발전한다.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7월의 읽을 만한 책 선정
2010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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