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관련법을 둘러싼 논쟁 ― 그 핵심에 서 있는 책
현재 한국에서 가장 첨예한 입법 쟁점이 되고 있는 미디어 관련법은 미디어 소유권의 문제를 비롯해서 미디어와 관련되어 그동안 누적된 정치,사회, 경제적 문제를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미국 미디어체제의 본질적 문제들에 천착해온 미국의 대표적 미디어 학자이자 미디어 개혁단체인 ‘자유언론’의 대표인 로버트 맥체스니가 2004년에 펴낸 The Problem of the Media (Monthly Review)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미국에서 미디어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에 쓰여진 책으로서 최근 우리 사회에 미디어 관련법 문제가 첨예한 갈등적 이슈로 떠오른 시점에서 이 책이 제기하는 주제들은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하다.
미국의 미디어를 둘러싼 8가지 신화를 파헤친다
맥체스니는 미디어체제와 미디어정책이 가진 본질적 문제점을 파고들기 위해 미국 미디어를 둘러싸고 그 실상을 은폐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이른바 ‘신화’를 벗겨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8가지 신화를 비판한다.
① 미디어는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반영한다. 따라서 미디어는 중요한 요인이 아니다, ② 상업 미디어체제는 미국을 건국했던 조상들의 뜻이었으며, 민주주의의 논리적 귀결이다, ③ 미국에서 미디어정책에 관한 논쟁은 정확하게 여론과 공익의 범위를 반영하고 있다, ④ 상업 미디어는 의심할 바 없이 가능한 최고 품질의 저널리즘을 제공하고 있다, ⑤ 오늘날 미국의 뉴스 미디어는 좌익 편향적이다, ⑥ 상업 미디어는 수용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⑦ 기술이 미디어체제의 성격을 규정한다, ⑧ 현재 상태에 대한 어떠한 대안책도 사태를 호전시키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만약 이들 신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미디어정책 수립과정에서 적극적인 대중참여에 대한 전망은 멀어지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들 대부분의 신화가 주류 정치문화 안에서 이미 진리로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왜 미디어정책 논쟁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많은 집단들이 그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지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미디어 정치학을 위한 전범
이 책의 장점은 우선, 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회의 지성인으로서 저자가 내놓은 치열한 미디어 개혁론이라는 점이다. 그를 학자가 아니라 지성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의 관심이 아카데미즘의 고전적 주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미국의 미디어 현실이라는 현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며, 치열하다는 것은 그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경계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미디어 산업의 상업주의라는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그가 방대한 양의 미디어 개혁론을 전개하면서도 뚜렷한 하나의 기준점을 중심으로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좌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저자는 미국 미디어체제의 핵심적 문제들 ― 무기력한 언론과 하이퍼상업주의 ― 을 조명하면서 미국 미디어체제가 어떻게 미디어의 상업적 구조와 연계되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들 구조가 명백한 정부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지를 서술한다. 이들 정책은 공중의 이름으로 수립되었지만, 공중에게 정보가 충분히 제공된 가운데서 이루어진 합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미디어 위기의 뿌리인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이 보여주는 미국 미디어의 현실은 미국의 주요 미디어 시장과 미디어 기업들을 다루는 구체적 사례들이나 미디어정책의 핵심적 문제들에서 현재 진행중인 한국의 미디어 문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갈등적 이슈들이 쉽게 정쟁적 구도 속에 묻혀 진지하게 검토되지 못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이 책은 미디어 개혁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우리에게 좋은 전범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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