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쪽빛

김상렬 지음

판매가(적립금) 9,800 (490원)
분류 나남창작선 83
판형 신국판
면수 336
발행일 2007-11-25
ISBN 978-89-300-0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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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9,800
1975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온 작가 김상렬이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9편과 중편소설 1편을 모은 창작집이다. 산촌에서 글농사, 밭농사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그의 처사적 면모가 소설 곳곳에 드러난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분위기의 소설들은 그 고요함 속에서도 냉철한 현실감을 잃지 않는다.

“밑바닥에는 아직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는가”
〈설경산수〉, <지상의 양식〉,〈월출산〉,〈수국〉(水菊) 등의 단편과 중편〈우국제〉(憂國祭)는 현실의식이 좀더 부각된 작품들이다.〈설경산수〉는 한때 함께 운동권에 몸담았던 서울 친구가 찾아와 지낸 하룻밤의 이야기이고,〈지상의 양식〉에서는 어려웠던 시절 무턱대고 함께 상경했던 여동생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간 주인공이 그 시절을 회상한다.〈월출산〉에서 주인공은 제사를 맞아 오랜만에 찾아간 사촌여동생의 집에서 예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격렬했던 대립을 떠올리고,〈수국〉에는 우연히 들어간 다방에서 만난 마담에게서 동생의 이야기를 듣는 스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소설들 속 삶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70~8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비록 그 첨예한 대립의 시기는 지났을지라도 여전히 그들의 삶 저변에는 그 고통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우국제〉는 소설의 길이만큼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 스펙트럼이 좀더 넓다. 일제치하 우국지사였던 죽천선생의 눈으로 바라본 지금의 세태는 답답하기만 하다. 광복 이후 하루하루 변하는 혼탁한 세상과 혼란한 정치상을 여실히 드러내는 한국선의 행태는 작가의 사실주의적 경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세찬 바람이 또 한차례 어둠 속의 눈밭을 훑고 지나간다. 제풀에 스르르 눈꺼풀이 감긴 죽천선생은 새우처럼 등을 구부리며 더듬어 베개를 찾는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눈 덮인 광야를 성난 말떼가 달리고 있고 숲에 가린 계곡 쪽에선 화약고 터지는 폭발음이 온 산을 울린다. 그리고 만세소리, 태극기의 물결…그러다가는 또 피멍 든 육신 위에 다시금 잔인한 고문의 채찍이 휘감아들기도 하고, 검은 두루마기 차림인 한 촌로의 가슴을 향해 정체불명의 군인이 대검을 무참히 꽂는 장면도 어릿 스쳐간다.
광기(狂氣)의 시대는 제발 끝나야 해!
죽천선생은 비몽사몽간에 신음처럼 내뱉는다.
-〈우국제〉중에서

“뼛속까지 시리고 아팠던 나의 또다른 리얼리즘”
한편〈카인의 사랑〉,〈콩〉,〈길은 집을 짓지 않는다〉,〈그리운 쪽빛〉,〈지팡이 끝에 놓인 산〉에는 개인의 감성적 성찰의 모습이 좀더 반영되어 있다. 카인과 아벨을 연상하게 하는 제목의〈카인의 사랑〉은 형과 동생의 얽히고설킨 감정이 화풀이하듯 청설모 사냥에 나서는 형의 모습에 담겨 있고,〈콩〉과〈길은 집을 짓지 않는다〉는 산촌에서 자연에 묻혀 사는 작가의 모습의 반영된 듯, 땅 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그리운 쪽빛〉은 전통적 삶에서 현대적 삶으로 전환되던 시기 구세대와 신세대의 혼란과 갈등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천진한 목소리로 전하며,〈지팡이 끝에 놓인 산〉에는 지팡이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모든 것을 털고 바람같이 떠난 친구 혜장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세상 속에 서로 뒤섞여 살아가는 존재이다. 개인의 미미한 삶에 초점을 맞추었다고는 해도 그 삶에는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현실의식의 바탕에 개인적 삶의 성찰을 접목시키는 작가의 경향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숲은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참 평화롭고 고즈넉한 듯싶어도, 조금만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유심히 살펴볼라치면 거의 경악에 가까운 참상이 전개되고 있게 마련이다. 네발 달린 짐승들은 짐승들대로, 온갖 새와 뱀, 지네, 불개미, 벌과 나비, 곤충들은 또 그놈들대로 서로 싸우고 잡아먹거나 먹히는 사투가 치열하게, 정녕 치열하고 처참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한참 재미있으면서도 통렬한 동물의 세계이나, 그러나 하늘에도 물속에도 가야 할 길은 저마다 다 따로 나있는 법이었다.
-〈콩〉중에서

 
책머리에
밑바닥에는 아직 충분한 공간이 있다 5
설경산수 9
카인의 사랑 39
지상의 양식 63
콩 87
길은 집을 짓지 않는다 113
그리운 쪽빛 143
월출산 175
우국제(憂國祭) 215
수국(水菊) 279
지팡이 끝에 놓인 산 305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작가 김상렬은, 1975년〈한국일보〉신춘문예에서 소설〈소리의 덫〉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 이후 주로 역사와 현실의식이 짙은 사실주의 바탕에 개인의 감성적 성찰을 접목시키는 경향으로 창작활동을 벌여온 한편, ‘독서신문’과 ‘한국문학’, ‘민족문화추진회’ 등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공주 마곡사 근처의 한 산촌에서 오직 글농사, 밭농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작품집으로는《붉은 달》,《달아난 말》,《카르마》,《사랑과 혁명》,《따뜻한 사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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