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사 가운데 가장 가혹한 언론통제 사례로 꼽히는 ‘민족일보 사건’. 발행인이었던 조용수는 불과 32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단지 96일간을 열심히 살다가. 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이, 사건이 난 지 45년 만에 이뤄진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5·16 직후 혁명재판소에서 반국가단체를 고무·동조했다는 혐의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에 대해 사형을 선고·집행한 사건에 대해 조사개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령 92호를 내고 역사 속으로 4·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실시된 7·29총선에서 참패한 혁신계 인사들은 총선 후 혁신계를 대변할 신문을 창간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3학년을 수료한 뒤 민단계 기관지인《민주신문》편집부장과 논설위원으로 일했던 조용수 또한 총선에서 낙마한 뒤 재일교포를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신문창간 자금을 확보하는 등 신문창간에 힘을 쏟았다. 혁신계 인사들은 이런 조용수를 사장으로 내세워 2월 13일《민족일보》창간호를 냈다. 처음에 2만부를 발행하던《민족일보》는 곧 4만 5천부까지 인쇄하였는데 이 중 4만여부는 가판에서 팔리는 등《동아일보》와《조선일보》같은 보수지 일색이던 신문업계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중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이 주도한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이틀 뒤인 5월 18일 민족일보사로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조용수 사장과 임원, 편집관련자 등 간부 9명을 연행하고 5월 27일 정식으로 폐간을 통고하였다. 이에 따라《민족일보》는 1961년 5월 19일 92호를 내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민족일보》사건에 대한 8월 22일 열린 혁명재판의 선고공판에서 조용수, 송지영, 안신규 등에 대해 “이북 괴뢰집단의 주장내용과 상응한, 한국의 중립화와 정치적 평화통일에 앞선 남북협상, 경제, 서신, 문화교류 및 학생회담 등을 적극 찬동, 추진한다는 지(旨)로 사설, 논설, 기사 등을 게재, 발간케 하여 이를 선전·선동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이북 괴뢰집단의 활동을 고무·동조했음”을 인정하여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1961년 12월 12일 조용수 사장은 처형되었다. 왜 군사정부는 신문사 폐간과 발행인 처형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민족일보》의 중립화 통일론의 내용 자체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당시 두 가지 급박한 과제에 당면해 있었는데 하나는 대학생과 진보주의자들의 저항 가능성으로, 정변을 일으킨 군부로서는 대학생과 진보적 지식인들을 초기에 제압해 둘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박정희 자신과 그 가족의 공산당관련 경력에 기인한 미국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쿠데타군은 공산주의자 제거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하며 친미 반공주의임을 미국에 알렸고, 마침내 백악관은 정변 지도부에 대한 사상적 의구심을 풀고 군사정권을 승인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 쿠데타군은 이른바 ‘용공분자’를 초기에 소탕함으로써 당시 박정희 군부의 두 가지 당면과제를 아울러 해소할 수 있었다.《민족일보》는 그런 작업에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두루 잘 갖추었던 것이다.
《민족일보》 내용에 관한 다각적 분석 세계 언론사상 유례없는 언론탄압이라는 ‘타이틀’ 아래 이제까지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으나《민족일보》내용 자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 이 책은 92호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민족일보》라는 신문에 대한 연구다.《민족일보》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내용에 관한 다각적 분석을 시도한다. 특히 이 책은 혁명재판부가 이적성을 제기한《민족일보》에 실린 기사, 논설, 사설을 중심으로 특성을 분석하고, 부록으로 민족일보 사건 재판기록을 싣고 있어 민족일보의 성격을 더욱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연《민족일보》가 혁신계의 주장을 넘어 북한 괴뢰집단의 주장을 고무·동조했는지, 그리고 조용수 사장이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아야만 했었는지 등을 독자 나름대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민족일보 사건에 대한 공판에서 안신규의 변호인이었던 태윤기 변호사는《민족일보》의 논설 등이 “북한 괴뢰집단의 이익이 되기 위하거나, 또는 그 활동을 고무·동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출판의 자유, 나아가서는 비판의 자유인 국민기본권의 소행”이기 때문에 “합헌적 정당행위에 속할망정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6조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신도 진실화해위의 조사관이 되어 민족일보 사건에 대한 “규명” 혹은 “불규명” 판정을 내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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