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열한명의 사상가, 언론인들의 언론과 관련된 사상을 다뤘다.〈독립신문〉을 창간해 한국의 근대언론의 서막을 연 서재필에서부터, 윤치호, 장지연, 이광수, 신채호, 홍명희, 안재홍, 천관우, 최석채, 장준하, 송건호 등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언론사상의 흐름을 잡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기존의 연구가 이들 사상가들에 조명한 시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현시대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다. 갈수록 언론학에서 비인기 분야로 소외되는 언론사상사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시대를 올바르게 조망할 사상적 기틀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출판사 서평
비디오의 폭발로 혹은 디지털미디어의 시대로 불리는 현대사회에서 100여 년이 지나버린 사상가들의 사상을 탐구하는 것은 어쩌면 우공(愚公)들이 벌이는 신선놀음일지도 모른다. 말도 변하고, 의식구조뿐만 아니라 생활양식까지 급변하는 사회에서 그들 사상가의 고답적인 말들이 무슨 의미를 갖겠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류역사에는 늘상 변하는 것들도 있지만, 그 변화의 중심에는 일정한 상수(常數)도 존재하니, 후대의 사람들이 선대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이러한 상수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의 언론사상사를 탐구하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지혜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주조하는 언론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또 그런 의미에서 언론 본연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기 쉬운 환경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참다운 기능에 대해서 정직한 고민을 했던 사상가들의 사상을 반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먼저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신문의 서막을 연 독립신문을 다룬다. 당연히 서재필과 윤치호의 사상이 논의의 대상이다. 저자는 서구의 자연과학 세례를 받은 서재필의 과학기술적 사고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독립신문에 어떤 식으로 투영되었으며, 그것이 당시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분석한다. 역시 독립신문에 관여했던 윤치호에 대해서는 그의 그리스도적 민권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친다. 서재필과 윤치호가 근대적 언론의 서장을 연 인물이라면 장지연은 그의 애국계몽운동의 행적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사(國士)언론인’이라는 언론인 상을 실천한 인물로 평가된다. 탁월한 언론인이었던 신채호는 언론의 의미에 대한 직접적 논문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으며, 언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많은 논란이 있는 이광수는 상업적이고 산업적인 구조를 갖춘 언론사에 근무한 근대적인 ‘조직인’의 시각에서 평가한다는 점이 새롭다. 소설 ‘임꺽정’으로 너무나 유명한 홍명희를 저자는 객관보도의 기능적 접근, 역사적 접근을 훌륭하게 실현한 인물로 평가하고, 다큐드라마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안재홍의 다사리정신에서는 개인적 자유와 민족적 자유, 그리고 국제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신민족주의 사상을 발견한다. 언론인 천관우는 당시 우리 민족의 과제였던 근대화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언론활동 혹은 역사학자로서의 활동에서 그 사상을 구현하려 노력한 언론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상계》를 통해 장준하는 정치사회적 활동가들과 일반대중을 연결했으며, 잡지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회운동을 진행시킨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최석채와 송건호는 각각 ‘반골’ 언론인, ‘우리시대 마지막 지사적 언론인’이라는 평가에 맞게 그의 사상적 행적을 추적한다. 이들에게서 언론인으로서의 정도, 혹은 언론인의 올바른 상을 저자는 찾고 있다. 언론의 힘이 커지고, 그 권력을 등에 업고 천박성을 드러낼수록 우리가 되돌아가야 할 이념적 지주, 판단의 근간이 되는 것들을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이념이나 사상적 영역에서 그 근거가 되는 저수지와 같은 곳은 고전적 사상가들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상가들은 우리의 갈길을 제시해주고, 우리의 사상적 갈증을 해소해줄 맑은 샘물을 쏟아내는 저수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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