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행위이론 (전2권)

위르겐 하버마스 지음 장춘익 옮김

판매가(적립금) 70,000 (3,500원)
분류 나남신서 1131,1132
판형 신국판
발행일 2006-03-05
ISBN 89-300-8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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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70,000
2006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20세기 서구 정신사를 꿰뚫는다
 
19세기 독일지성사 아니 세계지성사의 커다란 산맥이 맑스의《자본론》이었다면, 20세기 현대사회이론의 대표적인 저작은 단연 하버마스의《의사소통행위이론》이다. 그간 소문만 무성하고, 정작 올바른 완역본을 볼 수 없었던 한국에서 원저작이 출간된 지(1981년) 반세기 만에 한림대 철학과 장춘익 교수의 4년간에 걸친 노고로 완역되어, 생존하는 최고의 사회철학자로 손꼽히는 하버마스의 사상의 정수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하버마스가 갖는 의미
 
이 책이 출간된 지 25년이 지난 저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이 책이 서구의 20세기 사상사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이 책에는 서구화나 근대화 담론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 혹은 정신사를 탐조할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사상적 시금석들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구조주의자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를 탐험하면서 제기했던 ‘원시적 사고’와 ‘근대인의 과학적 사고’의 차이, 서구와 비서구의 경계선 설정에 매우 중요한 개념, 그래서 정치적인 개념이 되어버린 ‘합리성’(rationality)에 대한 문제, 우리 학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근대성과 사회근대화의 문제, 포스트모더니즘, 신보수주의 등에 대해 하버마스는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한 하버마스의 생각을 엿보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풍성한 정신적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체계적인 철학자’(리처드 로티), ‘정직한’ 철학자(자크 데리다)라는 평을 듣고 있는 하버마스의 대표저작에서 우리는 순수하고 치밀한 철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숲속 길을 걷는 상쾌함으로, 때로는 태산준령을 넘어가야 하는 고단함으로, 때로는 사막의 길을 걷는 것 같은 지루함으로, 때로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올랐을 때의 장쾌함으로 이 책은 다가올 것이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이라는 ‘괴물’
 
《의사소통행위이론》은 하버마스 스스로도 ‘괴물’이라고 평하는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 책에서 맑스, 베버, 뒤르켐, 미드, 파슨스에 이르는 사회학의 이론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지심리학으로부터 언어이론, 행위이론, 문화인류학, 체계이론에까지 이르는 그야말로 현대사회이론을 총망라하고 있다. 단지 현대사회이론의 총망라라면 그와 같은 말은 과장된 허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이 허언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뉴욕의 빌딩숲과 같은 치밀하기 그지없는 현대사회이론들의 숲을 하나하나 세밀하게 걷고 탐사해 그 다양한 이론들을 하나로 꿰뚫는 실마리를 찾아낼 뿐만 아니라, 분명하고 명료한 사상적 길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 때문에 그 책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 범위와 깊이에서 비견할 책이 없는 저작’[토마스 매카시(영문판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역자], 혹은 ‘사회이론과 철학 분야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저서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Philosophy and Social Criticism)는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사상적 눈을 뜨게 한다
 
모든 (사회)이론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는 것이다. 시선이 확장된 느낌, 그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개안의 느낌이 바로 이론이 주는 감동이다.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미시의 세계를 보게 하는 것, 거시의 세계를 보게 하는 것, 현재를 넘어 과거와 미래를 보게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성공한 이론은 지금, 여기, 나의 관점에 사로잡힌 시선을 다른 시점, 다른 장소, 다른 관점을 포괄해서 볼 수 있도록 한다.
사회를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로 생각해보자. 미시적 분석은 그 건축물이 어떤 재료로 이루어졌는지를 살핀다. 사회적 행위의 성격을 분석하고 행위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거시적 분석은 건축공법에 주목한다. 사회의 구조, 사회적 기능들의 배치가 주요 관심사이다. 역사적 분석은 이 건축물이 서 있는 자리에 그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건축과정에서 주역은 누구였고 어떤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는지, 지금의 소유주는 누구이며 용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 이 건축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런 식의 이론 스타일 분류에 따르자면, 하버마스의 이론은 세 가지 분석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버마스의 이론을 비춰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거울은 맑스의 이론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사회라는 건축물이 추상적 노동을 재료로 해서, 상품생산과 교환이라는 건축술에 따라, 그리고 자본증식이라는 목표를 위해 세워진 것임을 밝혔다. 그는 한편으로 이런 재료와 건축술, 그리고 건축목표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고 다른 한편 이 건축물의 안전진단도 감행한다.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맑스는 우리를 건축물의 지하로 안내한다. 지상층만 보면 완벽한 구조역학에 따라 건축 재료들이 빈틈없이 매끈하게 맞물린 것처럼 보이지만, 지하층은 음습하고 여기저기 균열이 생겼음을 보여준다. 맑스에 따르자면 자본주의사회가 결코 사회적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자본과 임금노동 관계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균열이 모든 은폐 혹은 수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균열은 커져서 자본주의사회가 붕괴할 것이라는 그의 진단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맑스에 이끌려 자본주의사회라는 건축물의 지하를 들여다 본 감동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
맑스가 우리를 자본주의사회라는 건축물의 지하로 안내했다면, 하버마스는 우리를 비행선에 훌쩍 태우고 도시 위를 날면서 일종의 도시생태학적 관점을 펼쳐 보인다. 우리가 도시의 온갖 편의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시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여준다. 상공업지역의 확장과 함께 녹지가 줄어들고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혹은, 하버마스도 맑스처럼 사회를 하나의 건축물로 본다면, 요즘의 예로 주상복합건물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상가가 편의시설로 기능하는 한에서 그 자체로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자칫 상가 수익을 위주로 건물이 관리될 경우 주거공간의 질이 하락할 위험이 있다.
인간은 의사소통하는 존재다
딴소리 그만하고 하버마스 이론을 조금만 이야기하자. 미시적 분석의 차원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의사소통행위이다. 의사소통행위란 상황에 대한 공통의 해석과 합의를 통해 조정되는 상호작용의 유형을 말한다. 이 행위유형에서 언어적 상호이해는 행위조정의 필수불가결한 수단이고, 그래서 언어적 상호이해에 내재하는 논리가 행위조정에서 힘을 발휘한다. 맑스가 구체적인 노동으로부터 자본주의사회 비판의 규범적 근거를 도출하였듯이, 하버마스는 행위조정에서 실제로 힘을 발휘하는 사회비판의 구조로부터 비판적 사회이론의 규범적 기초를 얻는다. 의사소통행위에 대비되는 상호작용 유형은 전략적 행위이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상호작용 유형을 말한다. 전략적 행위에서도 언어가 사용될 수 있는데, 이때 언어는 특별한 지위를 갖지 않고 조작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하버마스는 두 사회적 행위유형이 일종의 원형과 파생형태 관계에 있는 것으로 설정한다. 우리는 언어의 논리에 따르는 상호작용을 먼저 배우고, 언어를 조작적으로 사용하는 상호작용방식을 나중에 배운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설정은 많은 하버마스 비판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회이론은 오히려 전략적 행위를 원형으로 파악하는 쪽에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그 논쟁은 여기서 접어두기로 하자.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의 극복을 위하여
 
거시적 혹은 구조적 분석의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생활세계’와 ‘체계’의 개념이다. 사회화, 문화적 재생산, 사회통합처럼 반드시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서 행위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을 ‘생활세계’라고 하고, 권력과 화폐와 같은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체계’라고 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사회의 구조적 특징은 바로 생활세계로부터 체계가 분리된다는 점에 있다. 하버마스의 사회이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그가 이 분리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한편에서 그는 체계가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생활세계 합리화의 결과로 파악한다.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행위를 조정하기가 어렵게 되고, 언어적 의사소통의 과도한 부담을 덜기 위해 반드시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지하지 않아도 좋은 영역들이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체계를 자립화시키면 체계는 더 큰 기능적 역량을 갖게 되고, 생활세계 역시 더욱 더 언어적 의사소통의 고유한 논리에 따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 체계와 생활세계가 분리되기는 하지만 생활세계는 여전히 사회 상태 전체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틀이기도 하다. 어떤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체계의 논리에 맡겨둘 것인지를 정의하는 것은 생활세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체계는 생활세계로부터 분리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생활세계 안에 닻을 내려야 한다.
체계와 생활세계가 분리되면서도 동시에 체계가 생활세계에 닻을 내릴 수 있으려면, 체계와도 연결될 수 있고 생활세계와도 연결될 수 있는 특수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하버마스는 법에 그런 역할을 부여한다. 법은 한편으로 제재력에 기초하여 행위를 조정하는 형식적 규제들의 집합으로서 권력이나 화폐와 같이 비언어적 매체의 일종이다. 다른 한편 법 규범은 정당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제도의 일종이기도 하다. 도덕과 달리 근대적 법은 이렇게 양면이 다른 재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체계와 생활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근대적 법을 이렇게 보는 점에서 하버마스는 법을 지배도구로만 본 맑스와 결정적으로 다르고, 또 법실증주의적 시각을 취하는 베버와도 다르다.
생활세계에서 개방적 의사소통에 따라 합의된 규범이 법으로 구체화되고 체계가 이런 법에 따른다면, 체계의 독립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객관적 힘이 된 체계는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을 왜곡하고 오히려 생활세계를 체계의 기능적 부속물이 되도록 강제하는 경향을 갖는다. 금전화와 관료제화 경향이 생활세계에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버마스가 말하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이다. 하버마스는 계급에 특수하지 않은 여러 병리현상들을 바로 이런 생활세계 식민지화의 결과로 파악한다. 이런 식민지화 경향은 역설적이다. 체계가 생활세계 합리화의 결과이면서, 또한 합리화된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근본 원인이니 말이다.
하버마스는 자본주의경제를 사회합리화의 한 결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경제로부터만 아니라 행정으로부터 비롯되는 물화경향을 지적한다는 점에서도 맑스보다는 베버에 가까이 서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는 베버처럼 금전화와 관료제화를 사회합리화의 숙명적 결과로 수용하지 않는다. 생활세계가 체계의 논리에 흡수될 수 없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체계가 생활세계의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합리화가 아니라 합리성의 훼손으로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에서 그는 오히려 맑스에 가깝다고 하겠다.
하버마스는 맑스처럼 자신의 이론의 시대관련성을 의식하고 있다. 맑스는 추상적 노동을 자본주의 분석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상품생산경제인 자본주의사회에 이르러 이 개념이 실제로 사실에 부합하는 범주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추상적 노동은 한편에서 사실에 부합하는 범주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 구체적 노동의 규범적 함축을 축출해 버리기 때문에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이론을 우리가 일면화된 사회합리화가 가져 온 역설적 결과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상황과 연결시킨다. “자립화된 하부체계들의 명령이 생활세계에 침투하여, 상호이해라는 행위조정메커니즘이 기능적으로 필수적인 곳에서조차, 금전화와 관료제화를 통해 의사소통적 행위를 형식적으로 조직되는 행위영역들에 동화”시키는 “도발적 위협”(2권, 618쪽) 아래서 우리가 생활세계의 고유한 논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극복의 단서가 발견된다.

낱권 구매 가능

지은이 ㅣ 위르겐 하버마스(Jrgen Habermas, 1929~ )

 

하버마스는 비판이론의 전통에 서있는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통 네오맑스주의자로 불렀는데, 그의 관심사는 그런 명칭으로 다 포괄할 수 없게 다양하다. 그의 핵심주제로는 비판적 사회이론의 규범적 기초, 근대성과 사회근대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관계, 근대적 법의 사회진화적 의미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주제들을 다루기 위해 그는 한편에서 사회학의 이론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지심리학으로부터 언어이론, 행위이론, 문화이론, 체계이론에 이르는 동시대의 이론들을 동원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철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걸친 다양한 분야에서 그처럼 지속적으로 학문적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버마스가 지성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그의 저서의 제목 몇 가지만 떠올려보아도 얼마나 많은 논쟁의 키워드가 그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공론장의 구조변동》,《인식과 관심》,《이론과 실천》,《후기자본주의정당성문제》,《의사소통행위이론》,《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사실성과 타당성》,《이질성의 포용》,《탈민족시대의 구도》등을 떠올려 보라. 76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자연주의와 종교》(Zwischen Naturalismus und Religion)라는 저서를 출간하여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세계관의 대립문제를 다루고 있다.
 
 
옮긴이 | 장춘익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철학박사
현재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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