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풍 어머니

윤혜준 지음

판매가(적립금) 10,000 (500원)
분류 나남창작선 71
판형 4*6판
면수 360
발행일 2004-05-20
ISBN 89-300-05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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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도서 금액     10,000
<조선일보 문학: 2004년 5월 29일 토요일>
[파격적인 형식실험 점잖은 한국문학을 비틀어 버리다]
비발디풍 어머니/ 윤혜준 장편소설/ 나남출판/ 355쪽/ 1만원
청담동의 페트라르카/ 윤혜준 시집/ 나남출판/ 117쪽/ 6000원

윤혜준 교수는 연세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친다. 비평집 ‘포르노에도 텍스트가 있는가’를 낸 적도 있다. 강단에 선 외국문학 전공 교수가 장편소설과 소네트 형식의 시집을 한꺼번에 내놓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8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8명의 화자가 등장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며 전체 줄거리를 이어간다. 일기, 내적 독백, 방송·연극 시나리오, 용어해설 등이 뒤섞이고, 심지어 유전자들의 대화가 소설을 이끌어가는 등 다양한 형식실험이 등장한다. 게다가 온갖 상소리와 욕·음담패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

소설에는 청년실업, 이혼, 자살, 가정의 위기, 가치의 아노미, 입시지옥, 불륜, 강남 부유층, 부동산 투기, 노숙자 등 2004년 한국 사회의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여러 문제들이 등장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사회비판을 수행하는 리얼리즘적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그 전개방식은 비틀기와 희화화 하기, 말장난 등 쓴웃음을 유발하는 모더니즘적 접근이 동원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입사시험에 번번이 떨어진 후 지하철에서 자살을 하려고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 청년. 하지만 마침 지하철 파업으로 열차는 지연 운행된다. “너무한 것 아냐. 시민의 발. 맘 잡고 죽으려는데. 딴 데로 갈까? 아냐. 방법은 이거. 여기. 이게 젤 나. 보는 관객도 좀 있어야. … 백전백패. 100번 원서 내고. 100번 떨어지고. 딱 100번.”(55쪽)

자살을 앞둔 순간, 청년의 내적 고백을 담아낸 부분은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했다. 마침내 열차가 역내로 진입하지만, 그때 마침 배가 아파온다. “곧, 아유, 배가, 시발, 설사, 속이, 죽겠네, 이거, 정말, 꼬이네, 하필, 하필이면, 지금, 죽을 놈도, 똥 누고, 죽나, 아니, 죽을 때, 똥이, 바지에, 새면, 그게 뭐냐.”(76쪽) 청년은 똥까지 싸고 자살하면 엄마로부터 “넌 애가 왜 그러냐, 끝까지?”라고 힐난을 들을까 두려워 결국 자살을 포기한다.

윤 교수가 소설과 같이 낸 시집 ‘청담동의 페트라르카’는 서양 고전문학의 가장 오래된 연작시 형태인 소네트를 우리 문학에 도입한 특이한 작품이다. 14세기 시인으로 소네트 형식(14행)을 완성한 페트라르카가 부촌으로 이름난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 나타난 걸까?

모두 100편으로 구성된 이 연작시집에서 각 편은 소네트 전통에 따라 모두 14행으로, 그리고 각 행은 5박자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서양시 형식을 차용해 한국시를 풍성히 하려는 시도”라며 “막연한 서정성에 갇혀 있는 한국시에 이야기와 극적 전개가 있는 서사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소네트는 그 아름다운 멜로디로 연가에 많이 쓰이던 시형식이었으나, 이 작품은 사랑의 서정뿐 아니라 그런 정서와 현실의 거리를 부각시킨다. 외도·실업·이혼 등 당대 현실은 소네트라는 서정적 형식과 갈등을 일으킨다. 일련의 극적인 독백으로 이루어진 시는 주로 가상의 연인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했으나, 강남으로 대표되는 도시적 삶의 명암을 통렬하게 드러낸 점이 더 눈에 띈다.

‘하루치 머슴살이가 끝났군요, 하루치 젊음을/ 잘라줬군요, 돌아온 몫은 퇴근길 사거리/ 붉은 신호등의 저녁 점호뿐이군요.’

‘발가벗은 사내들은 방마다 갇힌 채 고추 달린/ 죄 값을 치르느라 악령들의 조롱을 감수하며,/ 한순간 내뱉는 외마디의 시세만 올려 놓는다./ “에고, 그게 다냐? 아니, 벌써!”’

저자는 이런 세태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심해지는 갈증,/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속을 찢는 허기,/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멀어지는 목적지,/ 도망하면 도망할수록 더욱 좁혀지는 올가미’(31편)로 표현한다.

저자는 “파격적인 형식실험과 유쾌한 상상력, 자유분방한 언어로 한국 문학의 덤덤한 근엄함을 뒤흔들고 싶었다”며 “또 하나의 실험으로 서간체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 윤혜준 교수는"재미있게 읽히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기존 정형틀을 깨는 여러 형식실험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 한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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