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현재 정치적 영향력, 경제력, 군사력 등을 포함한 국력 면에서 세계 최강의 국가이다. 이러한 미국은 한국의 발전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2001년 현재 대미 수출 312억 달러와 대미 수입 224억 달러 등 총 교역액 536억 달러로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이다. 또한 미국은 2001년 현재 한국에 총 투자액 120억 달러로 한국 내 제 1위의 투자국이다. 이러한 미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자세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유형은 '반미'(反美)로서 미국을 세계 지배를 위해 주력하고 있는 사악한 국가로 간주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적대시한다. 둘째 유형은 '무관심'(無關心)으로서 국제관계에서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주적으로 우리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유형은 '친미'(親美)로서 모든 국력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미국과 무조건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반미는 '민주·통일' 그리고 친미는 '반공·분단'이라는 시각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도식은 현재와 같은 국제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시각이다. 명분과 정서에 집착한 반미 또는 친미의 시각은 역사적 흐름을 뒤틀리게 한다.
이 책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용미'(用美)의 관점을 강조한다. 용미는 현실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인정하며 이를 긍정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시각으로서 실리 우선, 국익에 대한 열정, 그리고 냉정함을 기초로 우리 국익을 위해 미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주요 관심이다. 즉, 한국의 경우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없이는 핵무기 개발 및 장거리 미사일과 관련된 남북한 문제, 기술 및 자본 도입을 통한 경제성장, 대미 수출 등 정치·경제·안보·사회·문화 분야에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미국의 이념과 체제에 대한 선호를 무시하고서라도 한국의 국가 장래를 위한 실익 추구라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미국이라는 체제가 운영되는 정치현상과 그 체제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특히, 미국이 2001년 9월 11일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간 '9·11 테러' 이후 '대 테러전쟁'을 선언하면서 헌법체계·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미국체제는 모든 면에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9·11 테러 사건은 21세기 미국 정치를 '9·11 테러 이전'과 '9·11 테러 이후'로 구분해야 할 만큼 중요한 분기점이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미국 사람들은 B.C. 또는 A.D. 대신 B.T. A.T.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기점과 그 변화의 중심은 대통령의 권한확대와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에 대한 침해문제이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취지 아래 이 책은 미국의 정치체제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또한 '새로운 천년'(New Millennium)을 맞이하여 선진국인 미국의 제도와 관습 그리고 문화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한국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미국의 형성 기반을 개관하였다. 미국은 어떻게 발전되었으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미국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미국 정치문화의 특징을 고찰하였고, 아울러 미국 헌법의 기본원리도 살펴보았다.
제 2부는 미국의 정치제도, 즉 제도적 기관인 의회, 사법부, 대통령 그리고 행정부, 특히 관료제를 살펴보았다. 의회조직과 입법과정, 미국 헌법의 해석자로 우뚝 서 있는 연방대법원의 구조와 판결과정, 연방사법체계, 대통령의 위상과 역할, 미국행정을 실제 맡고 있는 관료제도, 행정각부의 조직 및 기능,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중인 행정개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을 개관하였다.
제 3부는 미국의 정치과정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여론, 정당, 매스미디어, 이익단체, 선거와 정치자금 등에 관해 살펴보았다. 즉, 미국의 진정한 정치운용 체제를 분석하였다. 제 2부가 하드웨어라면 제 3부는 소프트웨어이다.
제 4부는 정치과정의 결과물인 공공정책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왜냐하면 정부조직이 정치행위를 하면서 나오는 결과가 바로 미국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세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정책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교육, 사회복지, 주택, 환경, 경제, 외교안보정책의 결정주체와 관련하여 분석하였다.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진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이 책은 종래의 미국에 대한 연구와는 달리 미국의 행정부, 특히 관료제에 대하여 치밀하게 분석·설명하고 있다.
둘째, 기존의 연구들은 사법부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국의 사법체제와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의 사법체제는 그 성격이 현격히 달라서 그 연구의 적용성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사법체제가
그 영토의 크기만큼 방대하고 인종의 종류처럼 다양해서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가 안보뿐만 아니라 지적소유권을 포함한 무역 그리고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더욱 밀접해짐에 따라 양국간의 갈등도 종류가 다양해지고 그 깊이도 상당히 복잡해지고 있다. 따라서 점차적으로 한국은 영미법의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법과대학원에 유학을 하고 있고 또 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을 고려하여 이 책은 미국의 사법체제를 좀더 체계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였다.
셋째, 이 책은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정치과정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왜냐하면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치체제가 정치적 과정을 거쳐서 나타나는 결과가 바로 공공정책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공공정책을 구체적으로 세분하여 교육, 사회복지, 주택, 환경, 경제, 외교안보정책을 분석하였다.
넷째, 미국의 경우 모든 사회문제 갈등의 최종해결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루어진다. 즉, 미국의 법은 '성문법'(statutory law) 중심이 아니라 '판례'(case) 중심의 '관습법'(common law)으로 이루어져 유연성이 매우 높은 체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중요한 판례를 기초로 미국의 체제를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특히 판례에 대한 설명은 독자들이 주요 논점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각주로 처리하였다.
이 책의 집필은 1999년에 출판된 함성득·남유진의《미국정치와 행정》(나남출판)을 수정·증보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특히 2001년 9월 11일 '테러사건' 이후 미국의 정치체제의 운용이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에 수정은 새로운 집필을 필요로 하였다. 이 책을 출간하는 데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근간이 된《미국정치와 행정》의 공동 필자였던
남유진 현 구미 부시장, 그리고 무더운 여름날 이 책 출판의 마지막 과정에서 원고를 여러 번 정리하고 교정을 보면서 수고한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의 조혜진, 김옥진 등 대학원생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리고 책의 출판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신 나남출판 사장 조상호 박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2002년 8월
안암골에서
함 성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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