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연향

김정란 지음

판매가(적립금) 7,000 (350원)
분류 나남포에지 2
면수 236
발행일 2001-10-25
ISBN 89-300-1502-6
수량
총 도서 금액     7,000
한겨레신문 2001.12.17

세상의 절반이거나 혹은 두번째이거나

두 여성 시인, 김정란(48)씨와 김경미(42)씨가 여성적 삶의 상처와 그 극복을 노래한 시집을 나란히 내놓았다.
김정란씨의 <용연향>(나남출판)은 상처와 눈물에 속박당한 삶이 치유와 성숙의 과정을 거쳐 더 넓은 연대와 갱신으로 나아가는 서사적 진행을 담고 있다. 이 시집에서 여성적 삶의 질곡이 주로 억압된 말의 형상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밤새, 묶인 혀 하나 내 가슴 속 밑, 낮은, 바닥에”(<통곡하는…>)라든가 “분노 낮게 낮게//잘린 혀 뿌리 끝에서”(<잘린 혀, 낮은 분노>)와 같은 구절들은 “힘센 사람들이 마구 버린 말의 쓰레기”(<사향>), “그들의 손에 들린 두껍고 무거운 책(…)/그걸 수천 년 동안 핥아먹은 그들의 딱딱한 혀”(<허공에 뿌리내리는 꽃>) 들에 대비된다.

말하자면 시인은 “말하지 못하고 죽어갔던 수많은 여자들”(<분노일기 1>)을 대신해 `말'을 하는 것이며, 죽은 자들의 원한과 산 자들의 분노를 해소할 방도 역시 `말'을 통하는 수밖에는 달리 없다. 그러나 그 말이 힘세고 나쁜 자들의 딱딱한 말과 같은 것일 수는 없다. 그들의 말이 돌의 말이라면 그에 맞서는 것은 물의 말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더디고 지난할지언정, 물의 말은 결국 돌의 말을 이긴다. 이겨야 한다.

“우리가 연약한 물의 말로 그대들의 힘센 돌의 말을/이윽고 무너뜨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곧 무너질 벽>)

김경미씨의 <쉬잇,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 시집은 이를테면 “종일 꽃의 내부를 살아봤으면”(<방명록>) 하고 바랐으나 “나 생을 얼마나 편지 뜯어보지도 않고 탕!/문 닫아버렸는지/꽃 속의 뜻들 두려워 서성였는지”(<네 살의 여자>) 후회하는 이의 시집이다. 후회는 자주 허무와 자학의 포즈로 이어지는데, 시인이 넘보는 곳은 그런 것들을 두루 거친 뒤의 소극적인 평화와 안락의 경지이다. `세컨드의 처세술'이라 이름할 만한 태도가 거기서 나온다.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나는야 세컨드 1>)세컨드의 처지는 “그날까지, 이곳에서의 모든 생,/세컨드, 그/첩질이게 하는, 생의 본처”(<나는야 세컨드 2>)인 죽음에 대한 인식을 불러온다. 생의 본질인 죽음 앞에서 “삶, 이라는 불륜”(<나는야 세컨드 3>)은 좀 더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어떤 것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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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배문성 기자/msbae@munhwa.co.kr

김정란 새시집

〈용연향〉

문학평론가로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정란(상지대 불문과) 교수의 새시집 ‘용연향’(나남출판)이 나왔다. 문학평론가 권명환씨의 지적처럼 “‘존재’에 미쳐서 소수문학의 영토에 천막을 친지 20여년이 넘은” 김교수의 내면이 잘 보이는 시집이다. 특히 최근 문학권력 논쟁 등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교수의 상처투성이 내면이 아프게 읽힌다.

시 ‘슬픔의 끝에 가보았니’는 이런 김교수의 사정을 잘 드러내는 시다. ‘슬픔의 끝에 가보았니// 내가 혀 깨물고 입다문 그곳에/팔팔한 짐승들 몇 마리/생매장한 그 무덤 보았니//내가 그 무덤에 술 뿌리며/오 제발 죽어라 죽어라 하고/우는 것 보았니//다시는 생을 받지 말라고/내가 이승의 목숨을 걸고/그 무덤 다지고 다지는 것 보았니…’라고 노래하는 시 ‘슬픔의 끝에 가보았니’는 삶 자체의 슬픔을 죽음에 대비하는 전율적인 시어를 구사하고 있다.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치욕적이고 더러운 이승의 삶. 이 땅에서 온전하게 통하는 기도는 ‘다시는 생을 받지말라’다. 이보다 더 강렬한 자기모멸을 통한 구원의식은 없어 보인다.

죽음을 통해 거듭나는 삶을 노래한 시 ‘사향’도 처절할 정도로 자기파괴를 통해 부활을 노래한다. ‘여자 하나/어쩔 줄 모르며 말의 쓰레기 사이로/허우적대며 숨도 쉬지 못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비참한 광경이었다 여자는 이미 반쯤 죽어있었다//난 여자를 내버려두었다/내심 깊이 믿었다 그녀가 기어이 형식을 발견할 것이라고…’(시 ‘사향’ 중에서).

존재 자체의 비극성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시집은 한달음에 다 읽어내기 벅찰 만큼 ‘마음의 풍파’를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 김교수가 시집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허위의식을 파괴하고 난 뒤 건져지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다. /배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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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 보도자료>

1999년《스.타.카.토. 내 영혼》이후 2년 만에 내놓는 김정란 시인의 시집《용연향》역시 시인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지금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일들을 일단 접고 프랑스 체류를 준비중이다. 이 시집은 오랫동안 문학 밖에 나가 있던 시인이 다시 문학 속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회귀를 나타내는 것일까? 시집 제목과 같은 시〈용연향〉은 아주 짧은 시다. "당나귀 등 위에 / 내 썩은 혀 한 짐 // 딩동 // 문 열어라" ― 여기서 '내 썩은 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지? 섣부른 해석은 금물이지만 시인 자신이 '자서'에서 밝히고 있는 지난 몇 년간의 시인의 삶과 어떻게든 연관된 표현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각 부별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Ⅰ부 '눈물의 방', Ⅱ부 '치유와 성숙', Ⅲ부 '계시 또는 천사', Ⅳ부 '세상 속으로-귀환과 연대'이다.
아마도 "문학 밖에 나가 있던 시인이 다시 문학 속으로 돌아오는 하나의 회귀"라는 예단은 적절치 못할 듯싶다. 그보다는 시인 자신이 관여된 이전의 여러 일들을 모두 문학이라는 본원의 출발점으로 통합시키는, 그런 의미에서의 진정한 귀환이며 회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자서는 감동적이다. "나는 문학이 여전히 인간이 지닌 드문 능력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믿는다. 문학의 힘으로 영혼을 고양시키는 것. 나는 그것 외의 그 무엇도 문학의 이름으로 원한 바 없다. 문학은 경계를 돌파하는 힘이며, 그 힘으로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열망을 구현한다. 그것은 여전히 깊고 높고 넓다." ― 모든 것이 권력화해 버리는 마법의 성과도 같은 한국사회에서 문학에 대한 그의 믿음은 오히려 이채롭게 느껴진다.
랭보는 세계를 바꾸고 또한 자아를 바꾸라고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문학을 수류탄처럼 끌어안은 채 현실 속으로 돌진했다. 프랑스문학도인 김정란 시인의 세계 역시 그와 같은 문학정신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00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우수도서(문학예술)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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