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촌수필

이문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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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나남문학선 40
판형 신국판 양장
면수 585
발행일 1999-10-20
ISBN 89-300-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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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李文求) 문학 35년의 정수(精髓)들을 모은 이문구 문학선《관촌수필》이 간행되었다. 이 작품집에는 초기 작품〈장난감 풍선〉(1970)으로부터 최근작〈長川里 소태나무〉(1998)까지 12편의 중·단편들이 발표연도 역순으로 실려 있다. (목차: 25쪽)
"이 작가의 등장으로 우리 문단은 가장 이채로운 스타일리스트 한 사람을 얻게 되었다"는 김동리의 추천사와 함께 한국 문학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이문구. 일반적인 예와는 달리 그의 이미지는 딱 꼬집어서 떠올리기 힘든 측면이 있다. 김동리의 문하이면서도 7·80년대 참여문학 계열의 작가들 중에서 늘 중요한 인물로 꼽혔다는 점이 특이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에 관해서 작가의 정체성 자체가 혼란스럽다는 식의 섣부른 이야기는 여태껏 들려온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한국 문단에서 가장 중후한 면모를 지닌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1974년부터 84년까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간사로서 주된 역할을 담당했고 나중에는《실천문학》의 대표까지 지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참여문학'이라는 카테고리로 간단히 범주화할 수 있는 성격이 결코 아니다. 혹자는 그에 대해서 "참여문학단체 활동을 했지만 그의 소설은 참여문학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는데, 그러한 지적이 순전한 오해의 산물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번 문학선에 실린 작품들의 제목만 일별해 보더라도 그의 작품세계가 그 어떤 목적문학의 성격과도 판이할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심증을 얻게 된다. 초기 작품들인〈장난감 풍선〉과〈암소〉는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제목들은〈일락서산〉(日落西山),〈공산토월〉(空山吐月),〈우리 동네 鄭氏〉,〈長洞里 싸리나무〉등으로 이어진다. 특히〈해벽〉(海壁)이라는 제목이 지니는 서정성은 70년대 당시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된 같은 이름의 작품집 표지와 더불어 그 암울했던 시절을 되레 '아련하게' 떠올리는 하나의 모티브라 할 만하다.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면 우리의 현대사란 과연 사회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억압받고 해코지당해야 했던 그런 극악함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속에 놀라운 유머가 그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 유머는 그렇게 단순한 성격만은 아니다. 해설을 맡은 평론가 김인환 교수에 따르면 이 작가의 창작방법은 브레히트의 '소외효과'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즉 대화에 의도적인 풍자와 해학을 삽입하고 인물의

행동을 정상인 이하의 어리석은 짓으로 드러내어 인물을 골계화함으로써 미적(美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문구의 소설은 곧 '소외효과와 골계효과가 통일되는 공간'이다(567쪽). 이러한 점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서루 사화허구 마슈. 선생은 치료비나 받구 취하허시고, 증승화씨는 저 여자허구 이미 그렇게 됐다니 이젠 서방질을 하건 화냥질을 허건 신척허지 말기루 허고 … "
백순경은 증인 서마고 묻어들어온 귀숙어매도 그냥 두지 않았다.
"아주머니, 이 여자 하여간 … 당신은 핵교 댕기는 딸 보기두 우세스럽지 않수? 씨 피 엑스가 걸려서 임검 나가보면 여관서 안 만나는 적이 웂는디, 아니 워치기 생겼간디 그걸 그렇게 그러는 거유?"
"나 원 참, 별꼴이 내년까지 간다더니 진짜 사람 웃기는 순사두 다 있네."
"어라, 내가 원제 웃겼어?"
"그럼 순사는 냄의 사생활까장 시비 걸게 되여 있슈?"
술이 덜 깨어 불콰한 얼굴로 앉아 마을 온 사람처럼 지서 안을 신청부같이 구경하던 귀숙어매가 물기 거둔 눈을 박아뜨며 더불어 따따부따하려 들었다.
"시비는 당신들이 천일여관서 했지 내라 했어? 여보, 아무리 남자에 세서 남편허구 갈라섰기루니, 그래두 남의 이목은 가려야 허잖소. 수치가 싫으면 염치라두 가져보라 이 말여 내 말은."
"누구는 삼천만 동포 위해 살던가 베. 그러면 나 땜이 냄의 농사가 들 된다는 거여, 장사가 들 된다는 거여. 냄이사 연애를 걸건 애인을 갈건, 그게 부가가칫세를 무는 거유 방윗세를 내는 거유? 암만 생각해봐두 아저씨가 좌향 앞으룻 가, 우향 앞으룻 가, 헐 일이 아닌디 소리가 큰소릴세."
그녀는 넉살좋게 코웃음을 쳤다. 백순경은 질렸는지 한참 있다가
"인물 났구먼."

계속해서 김인환을 인용하자면 이문구 소설의 골계효과는 인간이 물건과 같은 인상을 줄 때에 터져나오는 침통한 웃음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성(物神性)을 반영한다. 아울러 그는 "농촌을 한국사회의 외딴 섬으로 묘사하는 작가들과는 반대로 이문구는 농촌을 우리시대의 전체성에 용해시킨다. 농촌도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양식 안에 있으며 상품사회의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이 이문구의 현실인식이다". 이 작가가 계속 농촌을 이야기한다 해서, 또는 작품 속에 엄청난 사투리를 집어넣고 있다 해서 어떤 토속취미 같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농촌이라고는 하나 그 속에서의 삶은 곧 우리 동시대인들 모두의 신산한 삶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구의 소설은 요컨대 가장 빼어난 스타일리스트에 의해 씌어진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사실주의적' 소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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