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년의 약속

한수산 지음

판매가(적립금) 재판준비중
분류 나남창작선 67
판형 신국판
면수 296
발행일 1999-09-20
ISBN 89-300-0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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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작가 한수산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투명한 감성의 작가' 평론가 김화영은 한수산을 다음과 같이 그린 적이 있다. "그림도 현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상하게 재현한 구상화라기보다는 반추상, 혹은 서정추상에 가깝다. 그는 현실 속에서 핵심적인 몇 가지 요소들만을 가져와서 마음의 색조와 결합시키면서 빠른 터치로 새로운 틀 속에 그것을 형상화한다. 한수산의 '감성'은 언어가 만들어내는 심상의 유동성, 속도감 그리고 그 유동성에서 생겨나는 신선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 한수산이 몇 년 전 불혹의 나이를 넘어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4년 넘게 살고 돌아왔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그가 '조국'을 떠나 나라 밖을 떠돌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들이다. 이 소설들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시간적인 차원과 공간적인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간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 소설들이 그가 극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음의 단계에까지 이른 후 다시 새로운 작가적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씌어진 작품들이라는 것이며, 공간적인 차원에서는 이 시대의 한국인의 삶을 밖의 세계에서 객관화시켜 돌아보게 된 작품들임을 관련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어떻게 사는가, 혹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이 호소력 있는 무게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400년의 약속〉은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공(陶工)들이 남긴 시간의 족적을, 심수관 가(沈壽官家)의 줄기찬 생명력을 통해 그린 이야기이다. 1998년 12월《문학사상》에〈조선도공의 혼〉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이 작품에는, 400년의 시간과 이국(異國)에서의 고절(苦節)이라는 공간을 이겨내고 서울에서 열렸던〈심수관가 귀국 보고전〉의 그 장엄함이 바닥에 깔려 있다.

〈시간의 저편〉은 한국전쟁의 기아(棄兒)가 되어, 남쪽도 북쪽도 아닌 제3국을 찾아 떠났으나 끝내는 인도에 남아 신고(辛苦)의 삶을 살아야 했던 반공포로들의 삶을 더듬어 간 이야기이다. 1992년 계간《민족과 문학》봄호에〈시간의 묵시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말 탄 자는 지나가다〉는 혁명을 일으킨 군인들을 말 탄 자에 비유하여 그 혁명의 허구성을 희화적으로 표현한 특이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군사 독재정권 시대를 살아 넘으며 한 작가로서 겪어내야 했던 초극을 담은 이야기이다. 1998년 가을《세계의 문학》에 발표되었던 이 작품은 작가 한수산에게 "그것이 씌어져서 발표될 때까지의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회한이 있고 각질의 분노가 삭아내린 16년에 걸친 앙금"이 있는 소설이다.

〈시간의 저편〉,〈4백 년의 약속〉은 한수산이 일본에 체류하면서 한국인의 삶과 자유와 역사적 현실의 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한 일련의 문학적 성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며,〈말 탄 자는 지나가다〉는 현실주의적 방법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초현실주의적 소설의 방법을 모색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집《4백 년의 약속》은 "이 작품집으로 어떤 굽이 하나를 돌아나온 느낌"이 든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모래와 안개 그리고 투명한 감성'으로 상징되던 작가 한수산의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삶의 체험이 훨씬 깊고 두터워진 작가의 정신을 보여주는, 그의 90년대 작품세계를 결산하는 의미가 있는 소설집이다.
4백년의 약속
시간의 저편
말 탄 자는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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