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詩話

오탁번(고려대) 지음

판매가(적립금) 12,000 (600원)
분류 나남산문선 35
면수 268
발행일 1998-02-24
ISBN 978-89-300-0835-8
수량
총 도서 금액     12,000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하여

《오탁번 詩話》는 제목 그대로 시와 시인에 관한 이야기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시와 시인에 대한 나름의 독특한 관점이 생명이다. 관점의 새로움이나 독특함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시화'는 그저 그렇고 그런 천편일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오탁번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의 내적 청자(聽者) 혹은 이 책의 독자로 삼은 대상은 흥미롭게도 '사랑하는 원주중학교 2학년 2반 오탁번 군'이다. 저자가 '원주중학교 2학년 2반 오탁번 군'을 특별히 사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저자의 시가 처음 활자화되어 지면에 발표된 것은 원주중학교 2학년이었던 1958년《학원》을 통해서였다. 거기에 실린 자신의 시를 읽을 때 쿵쾅거리며 뛰던 심장소리를 귓전에 간직한 채 그때부터 저자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도 까맣게 모른 채 밤낮으로 많은 시를 읽고 쓰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 아득한 세월이 생애의 벼랑을 지나갔지만 시는 까까머리 중학생 소년 오탁번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지표였듯이 현재 시인이며 소설가인 오탁번 교수의 삶을 지탱해온 유일한 지표가 되었다.

그런 이유에서 '원주중학교 2학년 2반 오탁번 군'은 저자에겐 시에 대한 첫사랑의 순수함과 강렬함에 대한 상징이며, 이 책의 글들은 까까머리 소년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자신의 몸이요 마음이며 자신의 삶과 꿈 자체였던 시에 대한 헌사이다.

《오탁번 詩話》는 단순히 학문의 한 분야나 창작의 한 장르로서의 시에 대한 개념이나 이론을 논리정연하게 풀어간 책이 아니다. 비유와 어조의 팽팽한 장력, 언어와 언어의 부딪침 속에서 발생하는 시적 의미의 탄력과 내재적 깊이, 더 나아가 시의 비의(秘義)는 개념이나 논리로써는 결코 해명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시는 아주 보잘것없는 작디 작은 것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의 한 장르이다. 그것은 어떤 심리학자도 과학자도 발견할 수 없는 극미세한 것을 다루기 때문에, 요컨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마음으로 금방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시와 거리가 멀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시는 거창하거나 강력한 것이 아니라 토란잎 위에 맺히는 물방울처럼 작디 작고 연약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확고부동한 물건처럼 손으로 움켜쥐려 하면 언제나 달아나기 마련이다. 한 편의 시의 핵심적 진실에, 그리고 그 시를 낳은 시인의 순연한 마음에 다가가는 데에는 오로지 시의 진정성에 걸맞은 방법과 태도가 요청된다.《오탁번 詩話》는 그와 같이 한 편의 시를 읽고 한 사람의 시인과 만나는 태도와 방법에 관한 진솔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난삽한 개념어와 딱딱한 논리에 의지하지 않고도 섬세한 감수성과 탄력적인 정신은 시의 비의 속으로 곧바로 파고든다. 그리하여 시 아닌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을 떨쳐내버린 공간 속에서 진동하는 시적 진실의 미세한 떨림과 울림을 느끼게 해준다.

《오탁번 詩話》는 이미 확정되고 고정된 시의 개념에 대한 진부한 동어반복이 아니다. 한 편의 시나 한 사람의 시인과 만나는 매순간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진정한 시와의 대화의 다양한 편린들이다.

그 조각들의 집합은 일견 어떤 질서와 체계를 결한 것처럼 보이나 훨씬 더 자유롭고 활력적인 정신과 감수성이 부여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질서와 체계에 의해 짜임새와 균형을 갖추고 있다.《오탁번 詩話》는 기존의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의도와 목표는 단순히 그것에만 있지 않다.

이 책의 독자로 설정된 '원주중학교 2학년 2반 오탁번 군'처럼 아직 시인은 아니지만 밤낮으로 많은 시를 읽고 쓰고 있는 무수한 미래의 시인들, 그리고 그들이 쓴 서랍 속의 시들.《오탁번 詩話》는 바로 그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들에게 보내는 꾸밈없는 편지이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진정한 시를 위한 송가일 것이다.


[신간] `오탁번 초혼'

오탁번 시화

시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 인간의 원형 심상을 불러오는 초혼의 예술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를 그토록 거창하게 규정하면 아무런 감동도 느낄수 없다는 것이다.

시는 무지의 눈으로 읽을 때 제 온몸을 드러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마음으로 느낀 시일수록 세월이 흘러도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현상에 시의 비밀이 숨어있다. 이 책의 저자는 시인소설가 평론가로 활동하는 전방위 문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현학적시이론을 전개하지 않는다. 김소월 정지용 윤동주 등 시문학사의 거장부터 서정주 김종길 등 선배 시인들, 마종하 김종철 등 동년배 시인들을 읽고 얻은 감동의 파장을 영혼의 불씨인양 소중하게 감싸안으면서 쓴 글을내놓는다. 좋은 시를 풍요롭게 해석하기 위해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의재미난 이야기를 끌어오되, 시론적 분석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장년의 저자는 글 마디마다 습작에 몰두하던 까까머리 시절을 회상한다. 그것은 시어 하나에도 가슴이 짙게 물들던 자신의 순수를 회복하려는 영혼의 회항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하여다.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날아오르는 양파/엿치기와 연애편지/명사산과 그림엽서/물총새와 토란잎 위 물방
울 하나/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뢰/채변 봉투와 교감주술/날개달린 붕어와 허수아비/
사막의 꿈과 자지감자/꿈같은 이야기와 깊은 나무/뙤약볕 같은 놋쇠 요령과 저울눈/'아니 눈물'
과 가애가증/슬프고도 기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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