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자유> 복거일의 피케티 읽기 - 중앙일보 2014-11-12
작성일 : 2014-11-12   조회수 : 1769
[정보 창고/Book] 복거일의 피케티 읽기
[중앙일보] 이 기사는 2014-11-12 오전 00:01:00 에 실린 기사입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 한국어판이 큰 관심 속에 출간됐다. 경제학 책이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반갑지만 다른 편으로는 적잖이 걱정스럽다. 『21세기 자본』이 무척 편향적인 책이기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마르크스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마르크스 경제 이론은 이론적으로는 이미 한 세기 전 추종자에게도 버림받았고, 현실적으로는 1990년대 초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다. 그런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터라 피케티 주장은 주류 경제학에서 상당히 벗어난다. 역설적으로 그런 편향이 책의 성공을 이끌었다. 사실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영어판이 출간되자 미국 좌파 지식인들이 열광했고 그런 열광이 거꾸로 유럽 좌파 지식인들에게 옮아가면서 ‘피케티 현상’이 일어났다. 이런 배경을 감안할 때 일반 독자가 『21세기 자본』만 읽는 것은 편향된 지식을 얻을 위험이 있다. 편향을 줄이고 균형된 시각을 갖추도록 도울 수 있는 책을 소개하는 이유다.

글·책 추천=작가 복거일(위 사진)

책, 어떻게 선정했나

먼저 읽어야 할 책은 경제학 입문서다. 경제학은 통계와 수학이 많고 반직관적 주장도 많아 다른 사회과학보다 접근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교한 이론 체계를 갖췄으므로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은 재미있고 지적 보답도 크다. 물론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도 얻는다. 그 다음엔 경제학사를 읽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학 원론에 나온 이론은 비교적 최신 지식을 소개한다. 그래서 경제학이 발전해 온 과정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경제학자들이 풀려고 애쓴 문제를 살피고 그 문제를 풀어나간 역사를 조감하면 경제 현상과 경제학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재산과 재산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경제란 인간 삶에서 재산과 관련한 측면이다. 재산은 삶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당연히 재산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은 한 사회의 구성과 운영에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일반적으로 재산에 대한 권리는 재산 형성에 공헌한 사람이 갖는다. 실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그런 원칙을 따른다. 그러나 이 원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재산을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워낙 중요한 논점이라 재산과 재산권에 대한 논의는 사회 철학의 핵심적 주제가 됐다.

 이렇게 경제학 입문서를 통해 경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경제학사를 통해 경제학이 발전해온 과정을 살피고, 재산과 재산권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면, 피케티 책을 읽을 준비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주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름의 반론을 제기하면서 저자와 토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전문적 지식이 요구되는 책을 읽으면서 일반 독자가 저자에게 반론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차라리 저자와 의견이 다른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현실적이다. 양쪽 주장을 비교하면서 독자는 보다 균형잡힌 의견을 갖게 될 뿐 아니라 논점을 훨씬 넓은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피케티를 읽기 전

① 맨큐의 경제학(Principles of Economics)
(그레고리 맨큐 저, 김경환·김종석 역, 센게이지러닝코리아, 3만9000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제학 입문서다. 경제학에 대해 알고 싶은 일반 독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입문서는 없다. 비록 입문서지만 아주 야심 찬 저작이다. 왜일까. 모든 이론은 연역적 체계다. 그래서 완벽한 이론은 원시적 용어(primitive terms)와 공리(axioms·자명한 명제인 동시에 다른 명제의 전제가 되는 명제) 위에 차근차근 정리를 쌓아 올린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은 이런 연역적 체계의 전범이다. 맨큐는 자신의 입문서에서 주류 경제학의 성과를 연역적 체계로 만들어 독자에게 제시하려고 시도했다.

 경제 움직임은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의 총합이므로, 결국 그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원칙)는 공리와 성격이 비슷하다. 첫 원리는 ‘사람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People face trade-offs)’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이 가리키는 상황이다. 둘째 원리는 ‘어떤 것의 비용은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한 것이다(The cost of something is what you give up to get it)’이다. 진정한 비용은 기회비용이라는 얘기다. 셋째 원리인 ‘합리적인 사람은 한계적으로 생각한다(Rational people think at the margin)’는 꽤 복잡하다. 간단히 예를 들면, 마지막 단위의 가치인 한계 효용이 그것의 비용인 한계 비용과 같은 상황에서 재화를 사는 게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넷째 원리 ‘사람은 유인(인센티브)에 반응한다(People respond to incentives)’는 설명할 필요없이 자명하다.

 개인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이 네 원리로부터 맨큐는 개인이 집단 안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행동할 때 작용하는 조건 셋을 이끌어낸다. 이어 그 일곱 원리로부터 경제 전체의 움직임에 관한 원리 셋을 더 이끌어낸다. 유클리드가 10개 공리를 제시한 것과 같다.

 마르크스의 통찰 대로 경제는 모든 사회 현상의 바탕이다. 좋은 경제학 입문서는 사회 구조와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도와 사람들이 지적 즐거움을 맛보도록 하고 사회 문제에 대해 현명하게 판단하도록 돕는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②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토드 부크홀츠 저, 류현 역, 김영사, 2만5000원)

현대 경제학의 모습을 빚어낸 주요 경제학자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일반 독자가 경제학 발전 과정을 조망하는 데 적합하다. 책 제목은 케인즈의 잘 알려진 지적(※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 아이디어는 그것이 옳든 그르든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것보다 힘이 크다. 실로 세상은 다른 것들에 의해선 거의 지배되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지적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믿는 실천가들은 대개 어떤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들이다)을 염두에 뒀다.

 피케티에게 큰 영향을 준 마르크스 이론을 알아야 피케티 주장을 사회주의의 전통 속에 놓고 살필 수 있다. 부크홀츠는 제6장 ‘칼 마르크스라 불린 성난 신탁’에서 마르크스의 아이디어를 다뤘다.

③ 소유와 자유(Property and Freedom)
(리처드 파이프스 저, 서은경 역, 나남출판, 2만5000원)

파이프스는 러시아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다. 재산권이 확립되지 못한 동유럽에서 자라난 그에게 서유럽 재산권은 경이로운 제도였다. 그는 정치 권력과 재산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사유재산 제도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의 진화에 결정적 요소라는 것을 발견했다.

 재산이란 말은 우리 마음에서 물질적 사물을 불러내지만 실제로는 특허나 저작권 같은 지적 재산도 포함한다. 17세기 이후 유럽에선 재산의 범위가 더욱 확대돼 생명과 자유를 핵심으로 한 사람이 자신의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주장할 수 있는 모두를 가리키게 됐다. 현대 인권 개념 역시 이처럼 넓게 정의된 재산에서 도출됐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재산의 사적 소유에 바탕을 뒀다. 따라서 재산과 재산권에 대한 이해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파이프스의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피케티 읽기

④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저, 장경덕 외 역, 글항아리, 3만3000원)

제목부터 마르크스와의 연관을 강조했지만 피케티가 펼친 이론엔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이 예상보다 적다.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세계관에선 마르크스를 따르지만 방법론은 주류 경제학의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재화의 값이 그것의 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고 봤다. 애덤 스미스가 주창한 이 ‘노동량가치설’은 리카도를 거쳐 마르크스에게 전수됐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값이 결정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실제로 피케티는 주류경제학의 성장 이론에 나오는 공식 셋을 가져다 ‘자본주의의 기본법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자본주의의 문제를 이끌어낸다. 두툼한 책이고 상당한 경제학 지식이 필요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비판자가 선선히 인정하는 것처럼 그의 책은 분명 주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다.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를 경제학에 주목하도록 만든 공도 인정받아야 한다.


피케티를 읽은 후

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
(안재욱 외 저, 백년동안, 1만5000원)

피케티가 펼친 주장을 비판한 일곱 학자의 반론을 모은 책이다. 따로 쓴 글들이라 겹치는 부분이 많고 놓친 부분도 눈에 띄지만 한국 학자의 업적 가운데에선 단연 두드러진다. 피케티 책만 읽을 때 안게 되는 편향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경제학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이 요구되는 책이지만, 피케티 주장을 따라가면서 품은 회의나 반론을 정리하려는 독자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메트로G팀 안혜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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