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가슴으로> 동아일보 2014-06-18
작성일 : 2014-06-23   조회수 : 1958
이만섭 前국회의장 “정치와 사랑은 계산해선 안돼, 가슴으로 해야”

이만섭 前국회의장, 51년 정치인생 회고록 출간

“각하, 야당이 농성을 하고 있어 정상적 통과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다음 회기에 통과시키도록 하겠습니다.”(공화당 김종필 의장)

“무슨 소리야! 내가 이 나라 경제발전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데, 뭐? 야당이 반대한다고 국회에서 통과를 못 시켜? 뭐 이런 일이 다 있어!”(박정희 대통령)

제63회 임시국회 회기 마지막 날이던 1968년 2월 29일 오후 10시 반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예산 조달을 위한 세법 개정안 처리에 김 의장이 난색을 표하자 박 대통령은 화를 참지 못하고 재떨이를 던졌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공화당 원내부총무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82·사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각하, 고마 한 번만 봐 주이소.”

이 전 의장의 억센 경상도 사투리에 박 대통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이 전 의장이 최근 회고록 ‘정치는 가슴으로’를 출간했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를 하다 1963년 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2004년까지 8선(選) 국회의원, 두 번의 국회의장 등으로서의 51년 정치 인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회고록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 시작해 역대 대통령이 역사와 국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기록했다.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빗발치던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이 전 의장에게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를 만나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해 줄 것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찾아간 노 당시 대표는 “나도 직선제를 (전 대통령에게) 건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계를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토로한다.

이 전 의장은 회고록 서문에서 “모든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수와 진보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썼다.

이 전 의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를 객관적 사실 그대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보수냐 진보를 떠나 오로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이제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이념의 틀을 깨고 화합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며 “우리만 살다가 없어질 나라가 아닌 만큼 모두가 힘을 합쳐 나라를 살릴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은 서로의 공적을 인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노(老)정객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여전히 힘이 넘쳤다.

이 전 의장은 회고록의 제목(정치는 가슴으로)을 얘기하면서 “정치와 사랑은 계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정치는 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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