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으로 생명의 존엄 가꾸고 출판 통해 지성의 향기 나눠요”
매체명 : 경기일보   게재일 : 2018-11-20   조회수 : 973

“숲은 후손들의 힐링 공간”… 20년간 10만여 그루 심고 가꾸며 소통
수목원 중턱엔 40년간 펴낸 3천500여권 서적 모아 ‘책 박물관’ 조성
작가·출판인·예술인 문화쉼터 제공도… “나무처럼 늙고 싶어”

 

“나무를 키우다 보니 주인이 나무고, 인간은 그저 자연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절감하게 됩니다.”

숲은 미래 후손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는 공간이자 힐링의 장소라며 20여 년 동안 나무를 심어온 노부가 있다. 나남 수목원 조상호 이사장(68)이 그 주인공이다.
 
조 이사장은 “말 못하는 놈들인 것 같은데 나와는 말이 통해 볼 때마다 늘 반기는 것 같다. 특히, 바람이 부는 날이면 반송들이 카드섹션을 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 흥분되기도 한다”고 웃는다.
 
조 이사장이 신북면 갈월리 산자락에 나남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인 2008년부터지만 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외환위기 때 파주 교하에 도서창고를 짓는 과정에서 부실채권인 파주 적성의 임야 5만㎡를 떠안으면서 땅을 그냥 둘 수 없어 자작나무, 느티나무, 산딸나무, 메타세쿼이아 묘목을 심었다. 그러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쉽지는 않아 죽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무 지식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20여 년 동안 나무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나무와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66만여㎡ 부지에 10여만 그루의 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조 이사장은 나남출판 대표이기도 하다. 수목원 중턱에 자리 잡은 3층 규모의 책 박물관은 조 이사장이 40년 가까이 땀 흘려 만든 책을 담고, 출판을 매개로 만난 작가·출판인·예술인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는 “출판과 수목원은 모순된 것 같은데 둘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출판은 지성의 향기를, 수목원은 힐링의 공간으로 생명의 존엄함과 가치를 높여주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는 세월과 함께하며 자란 나무를 보며 느낀 마음을 담은 에세이집 ‘나무 심는 마음’에서 “나이 들면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은 나무밖에 없다.”, “나무처럼 늙고 싶다”는 소외를 담아낼 정도로 그의 나무 사랑은 사뭇 진지하다.
 
조 이사장은 지금까지 3천5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나남신서’로 대표되는 사회과학 서적이다. 사회과학서 중 언론학 분야는 나남의 도서목록이 가장 풍성하다. 학술 서적 위주이다 보니 판매량이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 안 되는 사회과학서 출간을 고집스레 이어온 이유는 뭘까? 그는 “돈이 안 되는 학술서 출판에 승부를 걸었던 것은 당장은 외면받지만, 나중엔 거목으로 자라게 되는 가죽나무와 참죽나무 같은 존재가 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나만의 고집이고 그것이 나무처럼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언론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명사다. 고려대 출신으로 신문방송학 박사인 그는 계간 ‘사회비평’ 발행인, 한국언론학회 이사, 연세대·고려대·서강대 언론대학원 강사, 방송통신융합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또 조 이사장은 시인 조지훈 선생의 ‘선비의 지조’라는 강의를 듣고 반해 2001년부터 지훈상(문학, 국악부문)을 제정해 운영해 오고 있다.
 
“책과 나무는 내 삶이고, 지성의 숲이고 생명의 숲”이라는 조 이사장, 수목원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생명의 공간으로 탈바꿈해 찾는 이들에게 힐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전글
다음글 [Heart to Heart] 출판의 길 40년, 나남출판 조상호 회장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