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고: 호암자전] [고승철의 문향(文香) 오디세이] 회고록의 에피소드… 인물 이해의 열쇠
매체명 : 법률신문   게재일 : 2023.02.06   조회수 : 188

회고록, 자서전, 평전(評傳)은 한 인물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회고록은 대체로 자화자찬 일색이지만 간혹 부끄러운 과오를 밝히기도 한다. 이 분야의 고전인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고백록은 각각 청소년 시절의 일탈 행적을 털어놓아 독자들을 놀라게 한다. ‘옥에 티를 스스로 내보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책의 가치를 높였다.

 

필자는 회고록, 평전 장르의 책을 즐겨 읽는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팩트는 물론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작은 일화(逸話)가 그 인물의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재벌집 막내 아들이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여기에 나오는 회장이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을 빗대었다는 입소문이 퍼졌다. 이 때문에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 자전이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부상했다. 이 책엔 이 회장의 젊은 시절의 방황 행각이 실렸다. 다니는 학교마다 중퇴하여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 20대 청년 시절엔 골패 노름에 빠져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노름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하여 세 자녀가 달빛을 안고 곤히 잠든 모습을 보았다. 순간 악몽에서 깨어나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대오각성(大悟覺醒)이다.

 

신현확 전 총리의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이 쓴 신현확의 증언에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이승만 정부 때 신현확 부흥부장관 체제에서 이미 마련된 것으로 기술돼 있다. 신 장관은 이승만 정권 붕괴 이후 구속되면서 사형을 각오하고 처자식의 생계를 맡아줄 의인(義人)을 찾는다. 이병철 회장이 흔쾌히 이 일을 맡는다.

 

사상가 함석헌 선생이 읊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라는 시()를 들었다면 신현확 전 총리는 아마 그렇다고 대답하리라.

 

김학렬 전 경제부총리의 아들 김정수 박사가 집필한 아버지의 꿈에는 김학렬 청년이 훗날 추기경이 된 김수환 청년과 함께 일본 학병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전장으로 떠나기 직전에 한국인 학생들이 아리랑노래를 불렀는데 일본 교관들이 제지하자 열혈파 김학렬, 김수환 군이 앞장서 항의한다. 이 과정에서 교관이 휘두른 칼에 김수환 군이 얼굴을 다친다. 김 추기경의 얼굴 상흔이 바로 그것이다.

 

재벌집 막내 아들인기 끌면서

이병철 회장 호암 자전역주행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고백록

옥에 티 내보여 스스로 가치 높여

 

한국 바둑의 대부 조남철 9단의 조남철 회고록을 보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벌인 지도대국 일화가 나온다. 바둑 애호가인 이 정보부장은 가끔 조 국수를 집무실에 불러 수담(手談)을 나누었는데 언젠가부터 대국료를 주지 않더란다. 프로 기사에겐 지도대국료가 주요 수입원 아닌가. 9단은 참다못해 하늘의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 중앙정보부장에게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무안을 당한 이 부장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훗날 이후락 씨는 조 국수의 바둑 관련 사업을 적극 도왔다고 한다.

 

치과의사 및 유도인으로 활동했던 오응서 박사의 회고록 어느 날 갑자기는 유명인사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저자의 평양고보 후배인 작곡가 길옥윤(본명 최치정)은 청년 시절엔 음악에 별로 재능이 없었단다. 대학생끼리 악단을 만들어 학비를 벌었는데 기타를 맡은 최치정 군이 실수를 자주 해서 악단장에게 질책을 많이 받았다. 최 군의 아버지는 의사, 동생도 치과의사로 평양의 명문 집안이었다.

 

정치인 권노갑 전 의원의 회고록 순명(順命)에는 저자가 목포상고에 다닐 때 복싱선수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나와 눈길을 끈다. 런던올림픽에 나간다는 목표를 세울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함께 권투도장에서 수련한 강세철 선배는 훗날 프로복싱 동양챔피언으로 이름을 떨쳤다. 목포여고 영어교사를 지낸 권 전 의원은 교도소에서도 영어를 꾸준히 공부한 학구파다.

 

최근 출판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회고록 길을 묻다에는 여의사로서 국내 최초로 의료법인 길병원을 설립한 저자의 여러 선구자 활동이 담겨있다.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업한 1960년대 말, 대부분이 중졸인 간호사들에게 영어, 의학, 교양 등을 직접 가르쳐 분필 든 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의료 소외지역인 경기도 양평에 80병상 규모의 양평길병원을 1982616일 개원했는데 이튿날 남한강에 투신한 농부를 살렸다. 이 병원은 다른 재단에서 설립했으나 적자경영이 예상되자 건물만 짓고 방치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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