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소박하게] 농사 짓고 호롱불 밝힌 산골 스님의 산방은 치열한 선불장이었다
매체명 : 법보신문   게재일 : 2021.08.23   조회수 : 461

전기도 없는 산골서 자급자족하는 두곡산방 육잠 스님 이야기
20여년 교우하며 가까이 지켜본 기자에게 죽비같은 울림 전해

단순하게 소박하게
전충진 지음 / 나남출판
344쪽 / 2만원

 

육잠 스님이 거창 덕동마을에 찾아든 것은 1991년 늦가을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 길조차 산속으로 잦아드는 마을 끄트머리의 폐농가와 텃밭에서 고향집 포근함을 느낀 스님은 단박에 이곳을 수행처로 점찍었다. 시내로 나가 살고 있던 집주인 노부부가 부른 집값 200만원에 50만원을 얹어 드릴 만큼 스님은 덕동마을이 흡족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몇 가구 되지 않던 주민들도 벌써 다 떠나고 달랑 한 집 다섯 식구가 유일한 이웃인 산촌에서 목재며 기왓장을 지게로 지어 나르며 두 달여 만에 3칸짜리 토굴을 짓고 두곡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낮에는 농사 짓고, 달뜨는 밤에는 호롱불 밝혀 선시를 펼쳤다. 먹 갈아 글 쓰고 그림 그렸다. 산승과 토굴, 자연과 ‘소욕지족’이라는 단어들이 현대인에게 주는 한가로움과 소박함, 속세를 벗어난 수행자가 자연과 조화 이루며 단순하게 이어가는 삶. 하지만 이 책은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의 실현에 대한 찬탄이나 동경이 아니다. ‘단순하게 소박하게’라는 책의 제목과 ‘문명을 거부한 어느 수행자의 일상’이라는 부제는 책장을 펼칠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만나는 스님의 산방은 한가롭지만 방일하지 않고 고요하지만 치열한 수행의 선불장이다.

스님은 남루한 처자식 모습에 가슴 저미던 두보의 울음을 함께 하고 백골마저 맑고자 했던 자쿠시츠 겐코의 시 한 줄에서 청빈한 삶을 새긴다.

“절집에서는 청빈을 탐욕의 대척에 두는데, 탐욕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하는 데서 고액(苦厄)이 온다고 하지요. 일체의 집착과 탐욕을 끊음으로써 비로소 무애자재(無礙自在)를 얻을 수 있다지요. 그러니 해탈은 청빈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가능한 것이겠지요?”

쌀 외의 모든 먹거리를 직접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는 것은 그저 한가롭고 단순한 삶에 침잠하기 위함이 아니다. 스님은 소용되는 만큼의 농사를 짓고 수확한 만큼 그 안에서 만족하며 대자연의 순환을 몸에 싣는다. 매일 새벽예불 후 직접 필사한 선사어록을 소리 내어 읽고, 농사일 없는 겨울이면 쌀 한 자루, 김치 한 독만 챙긴 채 사립문 닫아걸고 한 칸 좌복 위에서 자신과의 말 없는 전투를 치른다. 처마 밑 가지런히 쟁여 놓은 장작 앞에는 ‘다비목’이라 명패 붙여 놓고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삶을 직시한다. 그렇게 스님은 하루하루를 수행자의 시간으로 옹골차게 채워간다. 손재주 좋은 스님이 직접 만든 돌담, 구들장, 지게 이야기부터 쟁기질 할 줄 몰라 그냥 친구로 삼은 암소, 벌통 놓고 실랑이 벌인 두꺼비와의 이야기들은 그 치열한 수행 현장에서 스님이 언제나 수처작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면이다.

오랜 관찰과 교우 없이는 통찰할 수 없을 산승의 생활과 그 의미를 투박한 두레박처럼 천천히 길어 올린 지은이 전충진 작가는 22년간 기자로 활동했다. 2008년 일본의 독도 도발에 맞서 1년간 독도에 상주하며 ‘독도기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여년 전 단골 찻집 주인의 안내로 두곡산방을 찾은 날, 인기척에 고추밭서 호미를 든 채 엉거주춤 웃음 짓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에게서 저런 웃음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라고 되물은 작가는 평생에 잘한 일 하나로 육잠 스님과의 만남을 손꼽는다.

책은 육잠 스님이 덕동마을에 처음 발을 들인 1991년부터 그곳을 떠난 2012년까지의 일상을 담고 있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스님을 바라보며 변화하는  작가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도회지 생활을 하는 현대인의 삶이 으레 그렇듯, 좀 더 큰 것, 좀 더 높은 곳, 좀 더 편한 것에만 정신이 팔린 나에게, 스님이 사는 모습은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와도 같았다.’

스님이 손수 만든 해우소에 쭈그려 앉아 ‘휴지는 두 칸만 쓰라’는 문구를 읽으며 일체 만물에 나와 너가 없음을 사유하는 작가의 모습은 스님의 낡은 홑겹옷 먹물빛과 소박하게 덖어낸 야생화차의 오묘한 향기가 시나브로 그에게도 스며들었음을 말해준다. 다만, 지금은 덕동마을도 옛 모습 잃고, 육잠 스님도 그곳을 떠났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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