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 ‘인정 이론’의 대가 악셀 호네트가 재해석한 유럽 사상사
매체명 : 대학지성   게재일 : 2021.07.25   조회수 : 374

■ 인정: 하나의 유럽 사상사 | 악셀 호네트 저 | 강병호 역 | 나남 | 276쪽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하버마스로 이어지는 독일 비판철학의 계보를 잇는 3세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 사상가이자, ‘인정이론’으로 현대 철학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악셀 호네트의 케임브리지대학 강연을 정리한 2018년 저작이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부터 독일의 헤겔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영국·독일 전통에서 ‘인정’ 관념의 형성과 발전을 역사적으로 추적하여 현대사회의 인정관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이전까지의 비판이론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높은 추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호네트의 ‘인정이론’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인정 경험에서 출발하여 사회이론으로 나아가는 철학적·실천적 담론이다. 

 

‘호네트는 프랑스·영국·독일의 대표적 사상가들의 저작을 ‘인정’ 관점에서 해석하여, 17세기 이후 유럽 사상사의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인정’ 개념이 어떻게 각 나라의 시대적·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형성되어 왔는지 분석한다. 이를 통해 기존 인정이론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문화권별 인정 개념의 사상사적 특징들을 포착하고, 나아가 각각의 개념들을 어떻게 하나의 인정이론으로 종합할 수 있는지 또한 보여준다.

굳건했던 봉건질서가 해체되며 17세기 유럽에서는 사회구성원들 간 관계의 양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 시대적 과제로 대두됐다. 따라서 호네트의 연구는 서유럽의 봉건질서가 해체되면서 비로소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의 어떤 속성에 기반하여 어떻게 서로 긍정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긴박해졌다는 논제에서 출발한다. 전에는 각자가 속한 신분에 의해 확고하게 규제되었던 것이 점차 의심스럽게 되면서, 이제 새롭게 관계를 맺는 주체들은 서로를 상호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에 대해 물어야 했다.

프랑스·영국·독일 각 언어문화권별로 주체와 타자의 관계,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각 지역의 사상적·문화적 조건에 따라 ‘인정’ 개념은 다르게 발전해 왔다. 즉, 상호작용관계의 이러한 구상에서 세 나라 사이에 매우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차이는 각 나라가 마주한 정치적 경제적 도전들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프랑스어권에서는 일상적 의사소통관계에서 사회적 구별 짓기가 갖는 막대한 중요성 때문에 주체들 사이의 인정이 항상 허위와 위선, 따라서 진실성의 상실이란 위험과 결부되었다. 시장이 사회적 생활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했던 영국 문화권에서는 반대로 주체들이 서로를 관찰한다는 사실이 도덕적 공통감각의 형성을 위한 기회로 여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전히 건재한 귀족에 맞서 시민계급의 해방이 중요했기 때문에 프랑스 및 영국과는 다른 종류의 도전에 직면해 있던 독일어권에서는 상호 인정이 모든 사회성의 필요조건이 되었고, 이로부터 사회적 평등에 대한 요구가 도출되었다.

악셀 호네트는 이 책의 2장에서 루소, 사르트르, 라캉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인정 사상사를, 3장에선 흄, 애덤 스미스, 밀로 이어지는 영국 인정 사상사를, 4장에선 칸트, 피히테,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 인정 사상사를 면밀하게 해석하고 검토한다. 그리고 마지막 5장에 이르면 본인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인정 개념의 이러한 세 물줄기를 생산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인정이론의 모습을 그려 낸다.

호네트가 기획한 이 연구가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생생하게 전달된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또 다른 장점이다. 호네트는 각 분석 및 논증 과정에서 일종의 ‘중간결산’을 실행하며 자신의 머릿속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듯한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인다. 이는 논증의 현 상황과 그 위치를 끊임없이 밝히며 독자들이 유럽 사상사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인정 개념의 발자취를 좇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유럽 사상사를 재해석하여 종합한 인정 개념은 호네트 인정이론의 근간을 더욱 두텁게 해준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정에 의존하고 있다는 관념이 각 나라의 시대와 문화적 특징에 따라 형성되어 온 양상과, 그것이 주체와 타자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은 오늘날 인정이론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이다. 나아가 호네트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이 책이 서구와는 다른 사유 전통과 역사를 지닌 한국에서도 인정 동기의 역사에 대한 연구를 자극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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