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 나는 시민인가 [최보기의 책보기]
매체명 : 시사저널   게재일 : 2021.04.06   조회수 : 37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유와 사랑’이다. 《나는 시민인가》 이후 6년 만에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책을 다시 만났다. 저자가 정의했던 시민은 ‘사익을 추구하되 타협할 줄 알고, 공익에 긴장하는 정신이 들어있는 사람’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시민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은 그런 기준에 맞춰볼 때 감히 ‘나는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었다.

그는 국민적 단결 아래 시작된 새마을 운동과 경제 기적에 정신이 팔려 앞뒤 재지 않고 달리는 사이 우리가 희생시킨 것이 바로 ‘시민의식’이라고 했다. 서양에서 거의 100여 년이 걸렸던 시민사회 형성의 노력을 건너 뛴 것이다. ‘경제는 시간 단축이 가능하지만, 사회는 단축과 생략이 불가능함을 몰랐던 것이다. 자율성이 토대인 시민사회의 부재는 공유코드의 부재를 불렀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틀리기에 적절한 양보와 타협이 없다. 정치와 사회에 극단적 충돌이 계속 되면서 누구나 속으로 바라는 국민 대통합은 요원하기만 하다. 사회학자의 6년 전 진단인데 지금 그러한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필자는 감히 판정한다.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은 ‘민주화 34년, 이제 독주하는 정치를 폐기해야 할 때가 됐다. 무엇보다 국민이 지치고 한국의 창의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우리 역사에 내장된 불굴의 의지, 그것은 흐르는 강물이다. 강물은 정의와 불의를 다 담고 흐른다. 분노가 사랑이 되고, 사랑이 큰 폭의 여울로 휘감아 돌며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박근혜 탄핵부터 우리사회를 진단했던 칼럼들’을 추린 책이다.

이 칼럼들은 주로 ‘00일보’에 많이 실렸다. 저자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 중에는 저자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도 전에 해당 신문에 대한 반감이 먼저 작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구 책임이 더 큰지 알 수 없지만 격렬하게 대립 중인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저자는 자신의 칼럼들이 촛불광장에 나가 주권회복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에 동참했지만 문재인 정권 4년 후 갖게 된 실망을 담은 ‘공공지식인의 반성적 고백’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한 책일 것임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 시끄럽고 퇴행적인 정치와 사회를 유발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진단하려면 불편한 고언(苦言)의 경청부터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보수논객, 곡학아세’라는 비판을 향해 송호근 교수는 ‘나는 우파 좌파 사이의 진자(振子) 운동가’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높은 경지의 학문이 있어야 세상을 꾸짖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바, 그것은 아세(阿世)가 아니라 질세(叱世)’라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한 가지는 서구형 건전한 교양시민사회 형성을 위해서는 각계 지도자와 깨어있는 시민들의 자각 못지 않게 사회의 공기(公器)이자 촛불인 언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건만 《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에서 이 부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뼈아픈 성찰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의 질세(叱世)가 모두 정답인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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