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의 기원] [이정민의 직격인터뷰] “남북 공존 주장하면서 왜 남남갈등 심한지 이해 안돼”
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19-07-12   조회수 : 706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70) 게이오대 명예 교수는 최고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다. 학자로, 일본 정부 자문역으로 50년 가까이 한반도 문제를 다뤘다. 게이오대 학·석사를 거쳐 연세대에 유학 중이던 1972년 ‘유신’을 접하면서 한국 정치 연구에 깊이 빠져들었다. 1996년엔 북한을 방문, 북·일 수교 교섭 협상에 관여하기도 했다.
 
분단, 미·소 냉전의 불가피한 산물 정치가 국제정세 못보고 단합 못해 일본 수출 규제는 신속대응 촉구성
한국, 무대응하면 더 확대될 것  
 
그가 은퇴 후 5년여 만에 『한반도 분단의 기원』(나남출판)을 출판한다.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정리하는 것은 학자로서의 오랜 고민이고 과제였다”는 그는 “한반도 분단은 일본 현대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면에서 분단의 무대를 설정한 게 일본이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집필 동기를 설명했다.
 
내용은 이렇다. ① 분단은 미·소 냉전체제가 만들어낸 국제 정치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② 따라서 독립운동이나 해방 후 국내 정치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③ 당시 정치인들이 이런 정세와 상황을 파악하고 내부적으로 단합하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대립은 너무 심했다. ④ 미·소 냉전이 끝났을 때 (1990년대) 분단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못하면서 한편으론 국제적인 지역 분쟁의 원천이 되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진영 대결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오코노기 교수는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곧바로 독립국가 건설로 받아들였을 뿐, 해방과 분단의 이면에 작용한 미·소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와 세계적인 흐름을 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위한 남북 대화를 병행하자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화해정책은 옳지만, 그렇게 하려면 우선 남남갈등부터 해소해 정치가 단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터뷰가 이뤄진 건 지난달 말, 도쿄에서였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어 e메일 인터뷰를 추가했다.
 
질의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에서 한반도 분단의 단초를 찾았다. 이게 한반도에 미·소 양국을 끌어들이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원폭 개발이 수개월 늦었다면 소련군 점령하에 들어갔을 것이라고도 했는데.
응답 :“중요한 것은 해방 후 한반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미국과 소련의 전후 구상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적용한다는 생각에 따라 ‘조선의 자유·독립’을 연합국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두 개의 적과 싸운 스탈린은 독일과 일본이 다시 일어나 폴란드나 한반도를 대소련 공격의 우회로로 이용하는 걸 두려워했고 이를 막기 위해 한반도에 친소련 정권 수립을 원했다. 이런 미·소의 대립과 냉전이 없었다면 한반도 분단은 없었을 것이다.”
 
질의 :분단 책임론은 진보·보수가 갈라지는 지점이다. 신탁통치를 제안한 미국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응답 :“신탁통치 구상이란 게 그렇게 비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시 미·영·중·소 4국이 공존하는 세력 균형을 위해 밸런스 파워가 필요했다. 조선 독립을 보장한 카이로선언은 윌슨적인 이상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론 태평양 전쟁이 연합국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면서 조선 독립을 둘러싼 국제적 권력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개석 총통은 소련의 야심을 경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제 승인을 받는데 적극적이었지만, 인도 식민지를 갖고 있던 영국은 조선의 즉시 독립을 반대했다. 미국 정책의 핵심은 소련과의 공동 행동이었다. 때문에 한반도를 4대국의 신탁 통치하에 두고 장래의 독립 준비를 시키자는 것이었다. 분단이 아니고 통일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질의 :해방 직후 정치가 극심한 파벌 싸움을 벌인 걸 놓고 국제 정세의 흐름에 둔감했다고 비판했는데.
응답 :“결국 미국과 소련 정책을 잘 알고 행동한 사람이 유리하게 됐다. 이승만과 김일성이다. 미국 입장에서 김구는 임시정부의 대표였기 때문에 신탁통치의 걸림돌이 된다고 봤다. 박헌영은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독자적 세력을 가졌으니까 소련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한국 지도자들이 국제 정치에 무지했고 내부 대립 때문에 통일을 못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소 패권은 도외시한 채 내부 대립이 너무 심했다. 싸움을 자제하면서 ‘이 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자’라거나 하면서 단합하는 정치적 지혜가 필요했는데 그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미·소가 아니었다면 통일국가는 됐을 것이다. 다만 의견 일치가 어려웠으니까 무력에 의한 통일, 즉 내전이 일어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고 본다.”
 
질의 :진보·보수가 충돌하고 있는 현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나.
응답 :“이상하게도 냉전이 끝나고 민주화가 되고서 좌우 이념 대립이 강해졌다. 이념의 렌즈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되, 현실과 이념의 균형을 잃어버리면 곤란해지는데 지금 한국이 그렇다. 이념 과잉이라고 할까. 현실 이상으로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것, 현실을 너무 대립적 시각으로만 보는 게 문제다.”
 
질의 :무슨 뜻인가.
응답 :“통일 정책만 해도 내가 보기엔 보수와 진보 사이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7·4 공동성명, 노태우 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과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경제공동체는 내용적으로 보면 비슷한 얘기 아닌가.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정책은 옳다고 보지만 그러려면 남남갈등부터 해소해야 한다. 국내에서 이념 대립이 확대되면 그 과정이 결코 순조롭게 갈 수 없다. 남북 공존을 주장하면서 왜 남남갈등을 심하게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질의 :분단은 아직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응답 :“한반도 분단이 미·소 냉전의 산물이었다는 이 조건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소련 대신) 중국의 부상으로 미·중 대립이 냉전 시절처럼 심각해지면 한반도 안정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현 상황과 국제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술, 다시 말해 외교력을 익혀야 한다. 일본과의 역사 논쟁도 마찬가지다.”
 
질의 :한국이 제기한 과거사 문제를 일본이 통상 제재로 맞받아치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일본의 의도와 배경은 무엇인가.
응답 :“일본은 강제징용 노동자 판결 이후 8개월을 기다렸지만 한국 정부는 대응하지 않았다. 이번 일본 정부의 조치는 한국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는 성격이 있어 보인다. 한국이 계속 무대응 전략으로 나온다면 대항 조치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질의 :명백한 보복 아닌가.
응답 :“일본 정부는 징용 문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어필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정권이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지 기반이 동요하기 때문이다. 또 일본 경제산업성이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다수 일본 언론들이 비판적이다. 상호의존적 경제 구조에 역행하는 조치는 양국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질의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 문재인 정부에 있나.
응답 :“한·일 관계 악화는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시작돼 박근혜 정부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마이너스(-)로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 대법원 판결이니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은 논리적으론 맞다. 법원이 독립성을 내세우고 있고 박근혜 정부의 사법 유착을 적폐로 규정해 수사를 벌이고 있는 국내 정치 상황에 옭매여 정부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코노기 교수는 해법으로 ‘한·일 역사화해재단’ 설립을 주장한다. 한국 정부와 포스코 같은 한국 기업이 주체가 되고 일본 기업들엔 자발적으로 참여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질의 :한·일 기업이 배상금을 출연하는 재단 설립안을 일본이 거부하지 않았나.
응답 :“위안부 재단을 한국 정부가 해산시켰기 때문에 여전히 불신이 있다. 또 법원 판결이니 일본 정부가 승복해라 하면 수용하기 어렵다. 청구권 협정으로 3억 달러를 받은 주체인 한국 정부가 주도하되, 이로써 과거사 문제가 끝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 일본 정부도 응하게 될 것이다. 과거 3억 달러는 정부가 준 것이지 기업 돈이 아니다. 따라서 명분만 있다면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모금도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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