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산다]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 "나무 키우는 마음으로 책을, 책을 만드는 마음으로 나무 가꾼 40년"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19-04-17   조회수 : 1071

나무를 키우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책을 만드는 마음으로 나무를 가꿨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그 동안 거둔 책이 3500여 권, 심은 나무가 10만여 그루에 달한다.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69)은 17일 자신의 지난 여정을 기록한 책 <숲에 산다> 출간을 기념해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상의 자유가 편견없이 교통할 수 있는 ‘지성의 열풍지대’를 꿈꾸며 출판계에 뛰어들었던 천둥벌거숭이가 어느덧 출판사 창립 40주년을 맞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책을 만들며 3000 명이 넘는 이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들과 동행하는 대장정을 걸어왔고, 이제는 66만여㎡의 수목원에 그분들 숫자를 넘는 아름다운 반송과 자작나무숲을 가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출판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렇게 평생 ‘책장수’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해방 이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빈민 투쟁이었던 광주대단지 사건을 취재해 대학 신문에 기고했다가 제적을 당한 그는 “처음에는 일단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출판사를 세운 것인데, 책을 내다 보니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게 되면서 계속 이 일에 의미부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남은 언론 관련 출판으로 유명하다. 한때 전국 대학의 신문방송학과 교재는 나남에서 낸 책이 아니면 구할 수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다. 대학 시절 언론활동 때문에 실제 저널리즘 현장에 몸을 담지는 못하게 됐지만, 출판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언론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역할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의 나남이 존재할 수 있도록 밑거름 역할을 해준 것은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이다. 조 회장은 1990년대 초 <김약국의 딸들>을 팔아 번 돈 전부를 2001년 <토지> 출간 계약금으로 다시 재투자했다. “당신 책을 팔아서 번 돈이니까 다시 당신에게 돌려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계약해 출판된 나남의 <토지> 21권 완간본은 200만권 이상 팔렸다.


그는 “출판을 경영이나 장사의 도구로만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오니 좋긴 하더라”면서 “그때 <토지>로 번 돈은 이후 나남이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좋은 책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착한 자본’이 됐다. 젊은 학자나 신인 작가의 책을 내면서 ‘박 선생님 덕입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20년 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도 어찌보면 출판 본업을 지키며 ‘선을 넘지 않고’ 살겠다는 일종의 각오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는 “사회가 민주화되고, 함께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정치권에 몸담게 되면서 권력에 대한 유혹이 많아졌다”면서 “그때마다 ‘나무에 물 주러 가야 한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나무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생명에 대한 연민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그렇게 키우던 나무들이 점점 많아져서 2008년에는 아예 경기도 포천시에 나남수목원을 조성했다. 

               

숲을 키우는 일과 책을 내는 일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꾸준히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고 꽃이 피지 않으면 벌과 나비도 찾아오지 않는 것처럼, 좋은 책을 꾸준히 내지 않는 출판사에 갑자기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조 회장은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사훈처럼 조급해하지 않은 덕에 오늘의 나남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500권씩 팔리는 책이 1000종이면 1년에 50만권 팔리는 것”이라며 “예전처럼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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