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산다] 조상호 나남출판 대표 "사상의 저수지 쌓는 정성 40년"
매체명 : 뉴시스   게재일 : 2019-04-17   조회수 : 793

"언론·출판을 한 지 40년이 됐다. 천둥벌거숭이인 젊은이가 지성의 열풍지대를 꿈꿨다. 사상의 자유가 편견 없이 교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이 화두로 젊은날을 고민하면서 보냈다. 그러나 지성은 아직도 칼집에 녹슬어 있고, 야성은 머리 깎인 삼손처럼 되었는지 모른다." 

조상호(69) 나남출판사 대표가 17일 '숲에 산다' 출간 기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40여년 간 3500여권의 책을 만든 여정을 담은 책이다. 조 대표는 "나남출판사를 1979년 창립했다. 튼튼한 사상의 저수지를 쌓는 정성으로 원고를 읽고 책을 펴냈다. 세속의 유혹을 뿌리치며 숨 쉴 공간으로 조성한 나남수목원에서 나무를 심고 생명을 가꾸었다"고 돌아봤다.  

"책 속에서 내가 가지 못했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땀 냄새에 취하면서,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고 책다운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자기암시로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출판을 통해 어떤 권력에도 꺾이지 않고 정의의 강처럼 한국 사회의 밑바닥을 뜨거운 들불처럼 흐르는 어떤 힘의 주체를 그려보고자 했다.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창업의 깃발은 '나남출판사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사훈과 함께 오늘도 힘차게 창공에 휘날리고 있다. 나남출판이라는 지성의 저수지를 어떤 세파에도 무너지지 않게 튼튼하게 쌓으려면 먼저 낮은 곳에 임하는 겸손을 배워야 했다. 따르고 싶은 올곧은 선배들을 저자로 많이 모실 수 있는 행운도 같이 했다."

조 대표가 수목원에서 생명을 가꾼 지는 10년이 됐다. "세속의 크고 작은 유혹을 견디며 숨 쉴 수 있는 출구로 나남수목원을 만들었다. 직접 나무를 심고 가꾸고 있다. 숲에 살면서 계절의 순환에 호흡을 맞추며 피고 지는 수목들의 숨결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땅에 없는 것을 찾던 스무 살 청년의 기억부터 오늘날 나남을 이루어낸 뼈대도 논했다. 독자들이 글을 따라가면 나무가 책이고 책이 곧 나무인 거대한 숲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름의 숲에는 녹색의 향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름나무들의 꽃구경은 이팝나무의 하얀 꽃에서 시작한다. 백일 가까이 피고 지는 붉은 배롱나무의 꽃그늘로 여름은 화려해진다. 귀하다는 노각나무의 하얀 꽃, 연약한 기에 흐드러지게 피는 으아리의 흰 꽃이 뒤이어 핀다. 선비목이라는 회화나무 가 하얀 꽃을 피워야 여름이 간다."

"산들이 하얀 고깔을 썼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국의 통일은 이게 하는 것이라고 이불을 덮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 계곡을 감추고 바위까지 눈으로 덮은 산등성이도 부드러운 곡선을 뽐낸 다. 설원에 부딪혀 꺾인 햇살이 눈을 찌른다. 애지중지 기르는 자작나무들의 하얀 몸통에 반사된 빛인지도 모른다." 418쪽, 2만2000원

조 대표는 "나남출판은 내 스스로의 자연 채무를 갚는 마음으로 출판의 창을 통해 한국사회를 인식해 가는 작은 기록"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어쩌면 칭기즈칸의 말채찍을 빌려 지적 유배의 어두운 동굴을 박차고 나가고픈 자기 입증의 궤적일지도 모른다. 진흙밭에 연꽃을 피우자는 꿈도 아니었는데 세상에 없던 것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뒹굴었다. 어쩌면 책은 나무다. 우리들은 지구의 소풍이 끝나면 어느 별로 돌아가겠지만, 곱게 늙어가는 나무는 수백년 지구의 주인답게 이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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