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산다] 40년간 느리지만 오래 팔리는 '책의 숲' 만들었죠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19-04-18   조회수 : 672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 40주년 기념 '숲에 산다' 펴내
종로 여섯 평 사무실에서 시작… '토지' 등 출간한 책 모두 3500권

"출판사란 명확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 한 분야를 찾아 그 지점을 돌파해야 한다. AI니 뭐니 새로운 '먹거리'가 있다고 해서 갑자기 방향 바꿔 그걸 들여다보는 기획을 하면 안 된다. 아무리 시장 상황이 나빠도 매년 500권이라도 팔리는 책이라면 꾸준히 내야 한다. 500권 팔리는 책이 1000종이 되면 50만부 팔리는 거다. 어떤 비즈니스든 잽싸게 되는 건 없다."

사회과학 서적 전문 출판사인 나남출판사가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창업자인 조상호(69) 나남출판사 회장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린다'는 사훈(社訓)을 가슴에 담고 지금껏 책을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회고록 '숲에 산다'를 최근 냈다.
 
고려대 법대 다니던 시절 유신 정권에 저항하는 지하신문을 만들다 제적당한 조 회장은 1979년 서울 종로의 고대 교우회관 여섯 평 사무실에 출판사를 열었다. '나남'은 전남 장흥 출신인 그가 '전라남도'에서 따와 만든 이름. 주변 사람들은 '나와 남이 어울려 산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지금까지 낸 책이 약 3500권. '갈매기의 꿈'으로 유명한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정현종 시인 번역으로 출간한 것이 첫 책이었다. '신문방송학과'라는 이름이 낯설던 시절, 한때 기자를 꿈꿨던 그는 한발 앞서 언론학 개론서들을 펴내며 언론학 대표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언론학 책 중 '대표 상품'은 언론학자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등이 쓴 '매스미디어와 사회'. 조 회장은 "1990년 낸 책인데 5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면서 "초창기엔 '개척 교회 목사 같다'는 평을 들으며 책을 냈는데, 좀 지나니 신방과가 인기 학과가 되면서 형편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잭팟'은 의외로 문학에서 터졌다. 2002년 출간한 박경리의 '토지'가 200만부 넘게 팔린 것. 조 회장은 "박경리 선생의 사위인 시인 김지하와 운동권 선후배로 가까이 지냈다. 그 인연으로 박경리 선생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1993년 펴내 30만부 팔았는데 이후 이 출판사, 저 출판사를 떠돌고 있던 '토지'도 다시 내게 됐다"면서 "'토지'의 성공 덕에 수많은 사회과학자의 저서가 출판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4년 낸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도 50쇄 찍으며 9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조 회장은 "강남 학원가에서 논술 대비용으로 소문이 나며 많이 본다고 들었다"고 했다.

시인 조지훈을 흠모해 2001년 '지훈상(賞)'을 제정, 매년 문학·국학 분야에서 시상하고 있다. 나무를 사랑해 2008년엔 경기도 포천에 66만㎡(약 20만평) 규모 수목원을 일궜다. "출판이라는 본업을 지키기 위한 마음속 해방구 같은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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