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경제] "정부, 소득주도성장 독단서 빠져나와야"
매체명 : 매일경제   게재일 : 2018-09-11   조회수 : 389

"경제가 급속히 둔화하는 것이 현실인데, 우리 사회가 이념과 도그마에 치우쳐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정부가 지나친 자기 확신에 빠진 나머지 독단에 근거해 경제정책을 하면 안 됩니다."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원로학자 중 한 명인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삼성언론재단 이사장)이 한국 경제에 대해 근심 어린 진단을 내놨다.

 

정 전 총장은 11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신영기금회관에서 열린 새 저서 `민본(民本)경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도그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기본은 서민 경제"라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현실에서는 저소득층에 모든 재정적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학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이론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미지수지만 정부가 소득주도성장만 바라보는 독단에 빠지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 전 총장은 현대 경제학의 수요·공급 이론 기반을 닦은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말을 언급하면서 "경제정책은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규제 완화·민영화·자본시장 자유화 등)`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 와서 미국은 빈부 격차가 심해졌고 IMF도 양극화로 인한 성장 정체를 경고했다"면서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지만 경제정책은 냉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 임금소득을 늘릴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갈 수 있다든지 저소득층 일자리 감소처럼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고용대란과 관련해서도 "우리나라 일자리 시장은 경제사적 측면에서 봐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적인 충격을 받은 것인데 임시방편적인 예산과 정책만 나온다"며 "우리 정부가 조 단위 돈을 너무 쉽게, 가치 없이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가 연령대를 불문한 취업난 속에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수급 불균형)`와 더불어 자영업자만 양산해내는 현실에 대해 그는 "청년 세대는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부모 세대의 대량 실직 사태를 지켜봤고 상당수가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걸 보며 자랐기 때문에 더욱 위험 기피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별다른 일자리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는 영세 자영업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일자리 만들기와 관련해 정 전 총장은 "정부가 일자리를 늘린다고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말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길을 찾아가야 한다"면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가 아닌 이상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서는 민간이 일자리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장은 "최근 10년간 미국과 영국을 보면 새 일자리 60% 이상이 신생 중소·벤처기업에서 나왔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면서 "미국은 스탠퍼드대학만 보더라도 엄청난 벤처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대학 창업은 중국보다도 20년 늦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연구개발(R&D)만 봐도 우리나라는 성과 위주이기 때문에 사실상 작업이 끝난 연구가 투자를 받는 식이고, 제대로 된 중앙 컨트롤타워도 없다"며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인 중국도 기본 사항만 빼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는 `네거티브 규제`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가 많아 실용주의 관점에서도 한계가 더 크다"고 평가했다.

 

정 전 총장은 경제 문제 해법과 관련해 "신뢰 회복이 우선이고 그다음은 시장 효율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당국자가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신뢰가 한번에 무너진다"면서 "통계청에 대한 압력이 있었다면 국민이 경제 통계를 믿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굉장히 큰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총장은 "정부 역할은 민간 실패를 보완함으로써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지 앞장서서 나서면 오히려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고용·금융 부문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걱정했다.

 

마지막으로 정 전 총장은 정부가 정권을 불문하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저출산 대응은 30년이어도 부족한 장기 계획인데 3개년으로 잡힌 것을 보고 놀랐다"며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 단임제이다 보니 국가 장기 과제가 거의 해결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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