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칼럼] 종전(終戰)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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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명 : 중앙일보 게재일 : 2018-05-01 조회수 : 794 | |
남북 정상이 천명한 시대적 소명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1950년 6월 27일, 서울 한복판에 포탄이 떨어졌다. 집이 허물어지고 담장에 깔린 사람들의 비명이 진동했다. 당시 19세, 문학소녀였던 장모는 가족과 인근 동산으로 피신했다. 서울 묵정동 소재 작은 주택이 포화 속에 주저앉았다. 이후 찾아온 궁핍과 굉음 공포증을 한평생 버텨냈다. 7월 15일, 소달구지에 가족을 태우고 영주에서 예천으로 피란하던 21세 아버지는 더 빨리 남하한 인민군에게 소를 징발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예천 처갓집에 도착했다. 젊은 아버지는 마루 밑에 숨어 의용군 차출을 모면했다.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그의 손자 김정은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발한 일성(一聲)이 그래도 피로 물든 회한을 어루만졌을까, 전후세대의 가슴에도 희망이 전해졌다. “우리는 대결하며 싸워야 할 이민족이 아니라 단합하여 화목하게 살아야 할 한민족이다.” ‘대결의 시대’를 마감한다는 청년 김정은의 감성적 레토릭은 전후 태어난 남한 중장년들의 부채의식을 정확히 건드렸다. 포화 속에 살아남은 부모 세대의 간난을 모른 채 천방지축 살아온 정전(停戰)세대의 어설픈 세상살이를 말이다. 의구심도 피어난다. 여행은 시작됐지만 길은 희미하다. 장사꾼 기질이 충만한 트럼프를 달래고, 대범한 척 주판알 튕기는 시진핑을 설득하는 길이 어디 쉬우랴. 한몫 끼려 틈새만 노리는 일본과, 전리품에 눈독 들이는 러시아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이 어디 쉬우랴만,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는 한민족의 결속 앞에서 누가 무슨 훈수를 두고, 누가 감히 앞길을 막을 수 있을까.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이 엄청난 선언은 우리의 인식공간을 결박했던 이념의 말뚝을 뽑아 낸다. 남한의 아사달과 북한의 아사녀가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손잡고 노래할 시간을 열었다.
보수 진영의 화살이 맵기는 하지만, 제발 이 역사적 국가 대사에 동참하기를 고대한다. ‘완전한 핵폐기’는 북·미 정상회담 몫이다. 핵폐기 북·미 담판으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판문점 선언의 최고치라면, 남북 두 정상은 일단 ‘시대적 소명’을 천명한 것이다. 되돌아가는 길은 차단됐다. 오직 ‘종전입니다!’를 향한 길이 뚫려 있을 뿐이다. 두 정상의 합창이 8000만 민족 전체의 코러스로 울려 퍼질 그날, 정전 직후 태어난 나도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부기] 권주필께 소 값 물어내라 했다가 접수증이 없어 실패했다. 대신 아들 주례 서 주고 술만 얻어먹었다. 병상에 누운 장모는 TV에 등장한 김정은을 보고 눈물지었다. ‘우리가 다 치렀다’는 세대의 메시지가 뺨에 흘렀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서울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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