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 속으로] 소설 쓰는 사회학자·정신과 의사…‘르네상스 작가’ 시대
매체명 : 문화일보   게재일 : 2018-02-19   조회수 : 705

교수 송호근·의사 홍순범…
직업의 메시지를 글로 표현

 

 요즘 소설책 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 소개를 읽다 보면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의사, 뮤지션, 경제학자 등 여러 직업의 작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요 네스뵈만 해도 매년 100회 이상 공연하는 인기 뮤지션이자 경제학자이며 저널리스트다. 최근 번역, 출간된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의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夏川草介)는 의사, ‘책 읽어주는 남자’로 유명한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헌법재판소 판사 출신이다. 작가란 별다른 ‘전공’이 필요 없지만 최근 들어 이 같은 르네상스형 작가의 기세가 더 강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학자인 송호근(62)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 4월 첫 장편 ‘강화도’를 낸 데 이어 최근 두 번째 장편소설 ‘다시, 빛 속으로-김사량을 찾아서’(나남)를 냈다. 일제강점기, 굴곡의 역사를 통과한 작가 김사량(金史良·1914~1950)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송 교수는 학술서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을 내고 ‘국민의 탄생’을 쓰기 위해 일제강점기 민족 정체성 형성을 연구하다 논리로 따지면 이념 장벽에 부딪히니 상상의 공간에서 해결하자는 욕심에서 김사량을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반일 투쟁으로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간 김사량은 25세에 쓴 소설 ‘빛 속으로’로 일본 아쿠타가와(芥川)상 후보에 올랐으나 ‘반도인’이란 이유로 수상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황군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됐다가 탈출, 조선의용군 선전대에 가담했고 광복 후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종군작가로 참전한 그를 통해 작가는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든다. 

 

한편 홍순범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는 얼마 전 심리치료 소설 ‘내 마음, 새로 태어나고 싶다면’(글항아리)을 냈다. 갓 의사가 됐을 때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인턴일기’를 썼던 저자는 이번에는 심리치료 과정을 소설로 담아냈다. 주인공은 3년간 백수인 취준생. 학창시절 성적은 중상위권, 여자 친구도 있고, 가정에도 큰 문제 없는 평범한 청년. 하지만 취직도, 삶도 희망이 보이지 않자 삶을 마감하겠다며 한강 다리 난간에 선다. 그때 난간에 붙은 메모가 보인다. 생각연구소, 감정수련원, 행동체육관. 한 번 만나본다고 손해날 건 없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죽음을 잠깐 보류하고 그곳을 찾아간다.

 

이 두 작품은 결국 작가의 오랜 작업의 연장 선상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메시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인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이들 르네상스 작가의 등장은 한 사람의 취향과 표현 욕구가 다양해지고, 사회적 전문 지식의 깊이도 깊어지는 데다, 작가 되기의 진입장벽이 무너져 버린 여러 요인이 결합된 결과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라는 링 위에 누구나 올라올 수 있다. 다만 누가 그 링 위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라는 문제만 있다”고 말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대의 변화 속에 이제 더 많은 이들이 이 소설가의 링 위에 오르고 있다. 독자들 앞에 더 다양한 이야기가 던져진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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