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 미사일] 죽을 때까지/ 김영승
매체명 : 대구일보   게재일 : 2018-01-16   조회수 : 586

나는 이미/ 倒立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발길로 툭툭 치면/ 옆으로도 그러고 있다// 아직/ 추워서 그런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 기다리겠다 공부하겠다/ 하지 말고/ 그것도 좋지만/ 죽을 때까지는 일단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밖에 생각은 다/ 雜念인데// 생각은/ 잘 때나 하는 것/ 무슨 심사숙고며/ 天思 만려인가// 생각은 잘 때나/ 죽을 때/ 잠깐 하면 된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나// 다들 뭔가를/ 窮理하는 거겠지/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死刑 직전도/ 다 그런 표정과 자세며/ 性交中에도 그렇다.

- 시집『흐린 날 미사일』 (나남,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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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나는 죽을 때까지 살지 않고 살 때까지 살겠다’라는 말을 남긴 이는 시인 김영승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 기다리겠다 공부하겠다/ 하지 말고, 그것도 좋지만/ 죽을 때까지는 일단 죽어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죽음은 종점인가 완결인가. 아니면 그냥 무덤인가. 반가사유상은 이미 그 의미를 다 아는 듯 입가에 얇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인생의 무상과 번뇌를 깨닫고 깊은 사색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이란 ‘반가부좌의 자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이란 뜻이며, 번뇌의 모습은 슬픈 표정을 짓는 것 같으면서도 무상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다.
 
고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통해 의자에 앉아 눈은 살며시 감고 고개와 등을 약간 숙인 자세의 반가사유상은 사색하는 부처님으로서의 깊고 맑은 정신적인 아름다움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서 ‘슬픈 얼굴인가 하고 보면 그리 슬픈 것 같이 보이지도 않고 미소 짓고 계신가 하고 바라보면 준엄한 기운이 입가에 간신히 흐르는 미소를 누르고 있어서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거룩함을 뼈저리게 해주는 것이 이 부처님의 미덕’이라 하였다. 덧붙여 ‘인자스럽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 하는 어휘들이 모두 하나의 화음으로 빚어진 듯하다’고 표현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하였는데, 반가사유상이야말로 불교를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조각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보면 중생의 삶이란 쓸데없는 일에 목매는 ‘쫓김’의 연속이다. 절벽에 늘어진 다 썩어가는 한 가닥 칡 줄기를 잡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절벽 위 나무의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의 단맛에 취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대부분 중생의 일상이라는 것이다.

이 시는 이를 망각하며 사는 삶 속에서 이미 ‘생각’을 대신해준 반가사유상을 통해 다른 잡념은 떨치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맹렬한 권고가 들어 있다.
확실히 인생은 삶 쪽에서 보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되지만, 죽음 쪽에서 보면 하루하루 죽어오고 죽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둘러치나 메치나 그게 그것 아닌가. 
 
그 이유가 이미 거꾸로 선 ‘반가사유상’의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생각은 잘 때 꿈에서나 하는 것이지 그 밖의 것은 모두 잡념이라고 한다.
죽을 때나 성교 중에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무용하고 오히려 야비한 짓이기도 하다. 굳이 생각을 해야 한다면 오르가즘의 순간만큼 찡그리거나 얇은 미소를 짓는 아주 잠깐이면 된다고 했다. 그다운 언술이다.
 

 

첨부파일 흐린 날 미사일_앞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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