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 “김대중 정부가 S그룹에도 대북사업 참여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 듣고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매체명 : 월간조선   게재일 : 2017-11-24   조회수 : 758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2002년 《월간조선》 5월호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은 기사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의 요지는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소개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과 만나기 위해 막후 흥정을 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를 보내기로 약속하는데, 자금은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현대상선을 거쳐 현대아산으로 대출하도록 하고 이를 달러로 환전, 국가정보원 등을 시켜 해외의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불법송금하고 나서 평양회담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 기사를 근거로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을 추적한 엄 전 의원은 행시·사시 양과 합격 후 김영삼 정권에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서울 중부경찰서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대중 정권 초인 1998년 경찰청 진흥과장으로 발령나자 불만을 표시한 뒤 사표를 제출하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엄 전 의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교인 경남고 출신이다.

 

2002년 9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 때 엄 의원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나라당의 부산 사하갑 출신 엄호성 위원입니다. 본 위원은 현대그룹에 대한 특혜지원과 관련해서 증인들께 신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금년 《월간조선》 5월호에 의하면 금강산 관광 대가 지급 관련해서 이면계약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현대는 정말 북한에 4억 달러를 비밀리에 주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그 기사에 보면 2002년 3월 25일 미국 의회조사국은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레리 닉시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한미관계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대가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 대가로 지급한 4억 달러 외에 비밀리에 4억 달러를 웃돈으로 주었고 이 돈이 군사비로 전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레리 닉시는 《월간조선》 측과의 통화에서 ‘비밀자금 제공 정보는 한국 측 소스로부터 들었으며 믿을 만하다, 한국 국회에서 조사하면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 위원은 이 기사를 읽고 대북사업에서 공식으로 약속한 대금 이외에 별도의 웃돈을 주어야 한다는 대북사업에 관한 상식에 입각해서 이 과제에 대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사실로 판명됐다는 것을 먼저 전제로 하고 하나하나씩 밝혀 나가겠습니다.”

 

 

2002년 9월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

 

이날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엄 전 의원의 질문에 솔직히 답변했다. 다음은 당시 회의록 내용이다.

 

 〈엄호성 위원: 엄낙용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이 건 대출할 당시에는 산업은행 총재직에 안 계셨던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엄낙용 증인: 예, 그렇습니다.
 
  엄호성 위원: 그래서 부임하고 나니까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찾아왔거나 또는 전화를 걸었거나 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까?
 
  엄낙용 증인: ….
 
  엄호성 위원: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말씀만 하세요.
 
  엄낙용 증인: 만난 적 있습니다.
 
  엄호성 위원: 있습니까? 그때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나는 이 돈 갚지 못하겠다, 이것은 현대아산으로 건너갔고 이것이 바로 북으로 갔다, 이것 정부에서 책임져야 된다’ 그런 사정을 얘기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바로 북으로 갔다는 얘기는 제가 못 들었습니다.
 
  엄호성 위원: 그러나 ‘이 돈이 현대아산으로 갔다, 이것 내가 책임질 수 없다, 이 정부에서 책임져야 된다’ 이런 얘기는 들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현대상선이 사용한 돈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갚을 수 없다는 얘기를 저에게 했습니다.
 
  엄호성 위원: 현대상선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 회사에서 갚을 수 없다 … 어디에 사용했답디까?
 
  엄낙용 증인: 그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엄호성 위원: 현대아산이 썼다고 안 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그 부분은 제가 듣지 못했습니다. ‘현대상선에서 사용한 돈이 아니다, 정부에서 대신 갚아 주어야 될 돈이다’ 하는 얘기는 저에게 했습니다.
 
  엄호성 위원: 아, 현대상선에서 쓴 돈이 아니다, 정부에서 대신 갚아 주어야 된다. 그러면 후임 산은총재로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이라고 추정이 되는데 그 얘기를 듣고 산은총재로서 그 자금 회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예컨대 정부라는 얘기를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이 얘기했으니 정부 관계자를 만난 사람이 있으면 말씀해 보십시오. 누구누구를 만났습니까?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만났습니다.
 
  엄호성 위원: 또 진념 재경부장관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함께 있는 자리에서 보고드렸습니다.
 
  엄호성 위원: 이근영 금감위원장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위원장도 함께 계셨습니다.
 
  엄호성 위원: 같이 있었습니까? 혹시 국정원의 대북담당하는 김보현(金保鉉) 3차장 만난 사실이 있습니까? ‘예, 아니오’로만 답변하십시오.
 
  엄낙용 증인: 만났습니다.〉
 
  엄 전 총재의 답변으로 인해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송금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대북송금 사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엄 전 총재는 2002년 10월 4일 재경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 출석해서는 더욱 자세한 내용을 폭로했다.

“4000억원 대출과정에 대해 이근영 금감위원장에게 물어봤더니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청와대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이 하도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북송금 사건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회의록에서 관련 내용만 발췌했다.
 
  〈김효석 위원(민주당): 산은의 현대상선 당좌대월 4000억원이 문제가 있다고 봅니까?
 
  엄낙용 증인: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통상적인 사안이 아닙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를 폭로한) 엄호성(嚴虎聲) 한나라당 의원과 같은 영월 엄씨입니까?
 
  엄낙용 증인: 그렇습니다.
 
  김효석 위원: 자주 만나는 사이입니까?
 
  엄낙용 증인: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닙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로 만났습니까?
 
  엄낙용 증인: 누설을 했는지 질문하는 것입니까?
 
  김효석 위원: 만난 것은 사실 아닙니까?
 
  엄낙용 증인: 종친회에서 만난 것은 사실입니다.
 
  김효석 위원: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지난 6월 제2연평해전 후 일부 신문에서 북한이 새로운 무기와 화력을 보강해 우리 함정을 공격했다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저는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대북) 지원자금에 의해 공격당하는 사례가 일어났다면 하는 생각에 내 고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누군가와 상의했습니다. 상의한 것이 법적 문제가 된다면 누구와 의논했는지 얘기하겠습니다.
 
  김효석 위원: 우리가 준 돈이 북한에 넘어갔다는 말입니까?
 
  엄낙용 증인: 그렇게 말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당시에 실제로 현대로부터 많은 현찰이 넘어가고 있는데, 현대의 자금대출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이한구 위원(한나라당):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에게 4000억원 관련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김 사장이 당시 (산은의) 오규원 담당 이사에게 말하고 (나에게)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직접 들었습니다.
 
  이한구 위원: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을 만날 때 그쪽의 요청이 있었습니까?
 
  엄낙용 증인: 이 문제로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경제현안회의였습니다. 회의 말미에 (이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한구 위원: 어떤 말을 전했습니까?
 
  엄낙용 증인: 김충식 사장 얘기가 우리가 그 돈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그 돈을 만져 본 적이 없다, 정부가 쓴 돈이니 정부가 갚아야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임태희 위원(한나라당): 이기호 수석과 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이 뭐라 답했나요?
 
  엄낙용 증인: 이 수석은 ‘알았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고, 김 차장은 ‘알았다. 우리가 조치하겠다.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임태희 위원: 이근영 위원장에게 강력한 지시를 한 사람이 누군지 말할 수 있습니까?
 
  엄낙용 증인: 말할 수 있습니다. (이근영 위원장이) 청와대 한 실장(당시 한광옥 비서실장)이 전화 주셨다고 했습니다.〉

 

 

미흡한 감사원 감사, 특검으로 이어져

 

엄 전 총재의 폭로 직후인 10월 14일 감사원은 산업은행 감사에 착수했다. 2003년 1월 30일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1월 28일 현대상선이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18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천억원은 전액 운항경비로 지급하거나 단기차입금을 상환하는 등으로 사용하였고, 2000년 6월 7일 대출받은 일시당좌대월 4000억원의 경우 1000억원은 현대건설 주식회사의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의 기업어음 등 상환자금으로, 나머지 2235억원은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한 것으로 돼 있음.〉

김대중 정부는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 모르쇠로 일관해 왔었다. 대북송금 사건은 특별검사(특검)팀까지 갔다. 감사원이 2235억원을 대북관계 사업자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 내긴 했지만, 곳곳에 ‘덮어 주기 감사’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선 감사원은 현대상선으로부터 산업은행 대출금 2235억원의 사용처에 대한 자료를 받았음에도 관계자 소환조사나 추가 질의 등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당시 감사원은 “계좌추적권이 없어 자료의 신빙성을 단시간 내 확인하기가 어렵고 어차피 검찰에서 조사할 것으로 판단, 자료 검토만으로 감사를 종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뿐 아니라 2235억원의 수표 26장에 배서(背書)된 6명의 필체가 신원확인이 되지 않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필체로 판단됐는데도 감사원은 경찰에 배서자의 신원확인을 의뢰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감사원은 현대상선 수표에 배서한 6명 중 1명은 외환은행 직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2003년 2월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구성된 일명 ‘대북송금 의혹 특검(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박지원 전 문화부장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임동원 전 국정원장을 조사해 5억 달러(현금 4억5000만 달러에 물품을 합한 금액) 불법송금 의혹을 밝혀 내고, 이근영 전 금감원장 등이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불법대출해 준 사실도 밝혀 냈다. 특검은 박지원·이기호·이근영을 구속기소했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누구?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를 알린 엄 전 총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2002년 10월 7일 자 《조선일보》 ‘엄낙용씨 누구?’ 제목의 기사를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잇따라 ‘폭탄발언’을 터뜨린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서울 출신인 엄 전 총재는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8회)에 합격, 재무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사무관 시절에는 때때로 괄괄하고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 ‘불독’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초 미국 유학시절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다닐 때 부인과 함께 교회에 나가면서 술과 담배를 멀리했다. “하느님 덕에 출세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그는 재경원 차관보 시절엔 여름휴가를 교회의 수양회로 대신하고 일요일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맡을 정도로 독실했다. 국제업무와 세제업무에 밝은 그는 98년 3월 관세청장으로 나갔다가 99년 5월 재경부에 차관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00년 8월 산은 총재로 옮기면서 ‘현대그룹 살리기’를 위한 ‘회사채 신속인수’ 제도에 반대하는 등 당시 진념(陳稔) 경제팀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평소 소신을 굽히지 않던 성격이 결국 화(禍)를 불렀다는 얘기가 관가(官街)에서 흘러나왔다. 엄 전 총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적어도 국감에서 위증(僞證)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평가다.〉

대북지원 의혹에 처음 불을 질렀던 엄 전 총재는 이후 15년 가까이 침묵했다. 2003년 7월 30일 《조선일보》와의 미니 인터뷰에서 “덮어 두면 가슴속에 암(癌)이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북송금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 겁니다”라며 “대북송금 여파로 이근영(李瑾榮) 전 금감위원장과 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구속된 데 대해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라고 말한 게 사건 폭로와 관련한 마지막 발언이었다.

 


엄낙용 전 총재가 대북송금 사건을 폭로한 진짜 이유

 

이런 엄 전 총재가 2017년 3월 《한 공직자의 경제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이 회고록에서 지난 2002년 대북송금 사건을 폭로하게 됐던 당시 상황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눈길을 끄는 내용이 많은데,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책이 출간된 지 7~8개월이 지난 이 시점에 회고록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다. 엄 전 총재가 주변 인사들이 다칠 것을 알면서도 국회증언을 통해 대북송금 사건의 실체를 공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회고록에 따르면 우선 엄 전 총재는 대출 자금이 북한에 제공됐을 것으로 거의 확신했다.

〈산업은행 총재로서 정부와의 마찰은 부임 초부터 시작했다. 전임자에 의하여 비정상적인 여신(與信)이 현대상선에 제공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필자는 이 여신이 정부의 고위층에 의하여 지시된 것임을 확인했다. 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현대 측이 상환을 거부하며 정부로부터 받으라고 버티는 것을 보고 대출된 자금이 북한에 제공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리고 현대그룹의 자금흐름을 살펴보자 매우 어지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그룹이 자금난을 겪으면서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 요청은 금융감독원 간부로부터 산업은행 임원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하여 자금의 용도가 확실한 현대그룹의 만기도래 회사채를 차환하기 위하여 발행되는 회사채의 신속인수 등엔 동의했다. 그러나 자금의 용도가 불분명한 지원요청에 대하여 “구두로 요청하지 말고 문서로 요청하라”고 면박하자 필자의 속내를 모르는 정부 측 인사들이 펄펄 뛰며 분개한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이처럼 강경하게 대응한 필자도 사임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정작 사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2001년 초 정부의 핵심 보직 개편에서 비롯됐다. 과거 필자에게 많은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 분명한 P씨와 S씨가 권력구조의 정점에 복귀하면서 필자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둘째, 엄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가 현대그룹 이외에도 다른 대기업을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심각하게 판단했다. 김대중 정부 때 대기업의 대북사업은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 대북 현금 제공 가능성이 높았던 만큼,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난 2002년 초. S그룹의 임원인 Y씨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다. Y씨는 과거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명절에 봉투를 들고 필자에게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필자가 Y씨를 차에 태우고 하남에 있는 장애인 자립시설로 데리고 가 그 봉투를 그곳에 전달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필자가 공직을 떠난 다음 가끔 연락이 와서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는 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Y씨가 지금 정부에서 S그룹에 대북사업에 참여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어찌해야 할지 골치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 필자는 짐짓 모른 체하고 그러냐고 하였지만 속으로 큰일이구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되뇌어 보니 이를 어떻게 하든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미국의 군사문제연구소 등에서 북한의 군비확충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내용과 핵개발 의혹 등에 대한 발표자료를 언론을 통해 접한 바 있었기 때문에 현대그룹에 이어 다른 기업까지 대북사업에 연루되는 것은 이러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셋째, 엄 전 총재는 2002년 6월 29일에 있었던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이 사용한 신무기는 우리가 보낸 자금으로 만들거나 도입했다고 봤다.

〈2002년 6월 한국의 월드컵 4강전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필자는 빠른 속도로 기동 중인 우리 해군의 고속정을 북한 경비정이 단 한 번의 포격으로 핵심부위를 명중시켰다는 보도를 접하고 북한 경비정이 고성능의 무기를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곧이어 북한 경비정이 장착한 무기가 탱크포라는 발표가 있었지만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우리 고속정의 급소를 탱크포로 단번에 명중시켰다는 발표에 신뢰가 가지 않았다. 우리 해군 함정들의 반격에 의해 침몰상태로 파괴된 북한 경비정을 아군이 끌고 오지 않고 북한의 다른 함정이 예인하도록 허용하였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지금도 필자는 그러한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북한군의 이러한 신무기 무장이 남한에서 보낸 자금으로 이루어진 것일 개연성이 있다는 생각이 필자를 잠 못 이루게 했다.〉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다음 날인 6월 30일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참관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그다음 날인 7월 1일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 장관, 이남신 합동참모의장 등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 장례식에 불참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대북감청부대장인 한철용 소장은 북한의 도발 징후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한 소장은 “군 수뇌부가 (보고를) 묵살했다”며 “우리가 충분히 제2연평해전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소장은 이런 실상을 공개했다가 보직 해임됐다.

 

 

기획폭로 준비

 

제2연평해전을 보고는 행동을 결심한 엄 전 차관은 정의로운 기획폭로 준비에 나섰다.

〈필자는 이 문제를 표면화시키는 데 직접 나서기로 하고 당시 야당의 엄호성 의원에게 필자의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연락했다. 엄호성 의원을 지목한 것은 문중 모임에 초청받아 한두 번 만난 적이 있고, 엄 의원은 경찰 출신이니 보안의식이 확실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엄 의원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국정감사에서 필요하면 필자가 직접 증언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두었다. 그렇지만 막상 국정감사장에서 엄 의원의 질의에 대해 답변하게 되었을 때 필자는 어깨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눌리는 느낌과 함께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지는 통증을 느꼈다. 가장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분과는 아무런 개인적 인연이 없고 업무상 한두 번 보고한 것밖에는 없지만, 필자는 그로부터 각별하다고 느낄 만한 관심과 격려를 받은 바 있다. 그의 커다란 호의를 이런 식으로 갚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너무 괴롭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 대통령의 통찰력과 판단력을 많이 존경하였는데 지금 이 문제에서는 필자가 그의 노선에 정면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매우 곤혹스러웠다. 필자는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있으면서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하는 것은 군사적, 정치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 명백하므로 동의할 수 없었다. 필자가 담당했던 해외차관 도입 업무에서도 국제금융기구나 차관제공 국가에서는 그 자금이 군사적 또는 정치적 목적에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확인했다. 더구나 자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은행을 경영위기에 직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만약 그러한 비밀스러운 자금 제공으로 남북관계에 근본적 화해가 형성된다면 모르겠지만 제2연평해전에서 나타난 결과는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를 그들의 손에 쥐여준 형국이 아닐 수 없다.〉

 

 

다시 그런 상황이 재현돼도 같은 선택 할 수밖에

 

 엄 전 총재는 대북송금과 관련한 내용 마지막에 본인의 폭로로 인해 사법처리된 인사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하면서도 “인간적 고통이 컸지만, 국가를 위한 일인 만큼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중에 특검을 거쳐 많은 사람이 사법처리되는 단계에서 필자의 인간적 고뇌는 더욱 커졌다. 이기호 수석과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는 필자가 여러모로 감사하고 친밀하게 생각하는 공직의 선배임에도 그들에게 이러한 고난을 끼치고 말았다는 것은 필자에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알기에는 이기호 수석은 비밀스러운 자금 제공 대신 다른 대안을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못한 탓으로, 이근영 전임 산은총재는 북한에 제공되는 자금인 줄 모르고 현대그룹에 대한 금융지원 차원에서 이 일에 연루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필자가 인간적 어려움으로 이를 외면하고 침묵한다면 평생을 두고 자신을 가책하면서 괴로워할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그러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지금 다시 그러한 상황이 필자 앞에 재현된다 하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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