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의 고대 중세 연구] 서구 사회사상가들, 한국사회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 이상의 의미는 없다
매체명 : 교수신문   게재일 : 2017-09-15   조회수 : 901

“베버 뿐 아니라 이른 바 ‘고전사회학자’로 불리는 19세기~20세기 초의 사회 사상가들 대다수는 한국 뿐 아니라 현대 사회 일반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 지금 나는 바로  40여 년간 지속된 베버와의 지적 여정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여정의 결과를 「막스 베버의 ‘실존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압축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점가에 막 나온 책 한 권이 있었다. 『막스 베버의 고대 중세 연구: 고대 문명 몰락의 사회적 원인들·도시』(나남 刊)다. 저자는 40여 년간 베버에 천착해 온 진정한 베버 연구자인 전성우 한양대 석좌교수다.

그는 지금까지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정치』, 『종교사회학 선집』, 『사회과학방법론 선집』 등 베버의 저작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왔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베버의 글 두 편(「고대 문명 몰락의 사회적 원인들」과 「도시」)을 모아 출간한 게 바로 이 책 『막스 베버의 고대 중세 연구』다. 베버 번역서로 다섯 번째 책이다. 특히 이번 신간에 수록된 「도시」는 문명과 도시에 관한 베버의 천재적 통찰이 빛나는 역작으로 오늘날 베버가 구축한 보편사적 문명비교론의 정수를 담았다고 평가받고 있는 문제적 글이다. 베버 사회학 연구의 핵심 주제로 간주되는 글을 드디어 한국어로 만나게 된 셈이다. 

전 교수는 2013년 2월로 정년을 맞았지만, 곧바로 석좌교수로 임명돼 4년 반을 더 가르쳐왔다. 그렇지만 지난 8월로 석좌교수 생활을 끝내고 ‘잠시’ 홀가분해졌다. 그의 석좌교수직은 원래 5년 임기로 2018년 2월까지이지만,  이번 가을 학기에 논문 발표가 있는 몇 개의 연속적 국제학술대회 참석 등을 위해 한 학기 일찍 은퇴한 것이다. 

베버 연구의 산 증인으로, 국제적인 베버 연구자로 명성을 누린 전 교수는 독일 학계에서도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하이델베르크대 막스 베버- 강좌를 맡아  강의한 것을 비롯해 에어랑겐대에서도 1년간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베버 뿐 아니라 이른 바 ‘고전사회학자’로 불리는 19세기~20세기 초의 사회 사상가들 대다수는 한국 뿐 아니라 현대 사회 일반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라고 말하는 전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 신간  『막스 베버의 고대 중세 연구』는 어떤 책인가. 수록된 두 편의 글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글인데, 책을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베버 사회학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서양 ‘시민’계급의 형성과 발전 경로이다. 이 발전 경로의 잠정적 종착점인 근대 자본주의 시민계급(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그의 연구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담겨 있는 바, 이 논문은 그의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위  역서에 실린 논문들에서 베버는 바로 이 근대적 시민계층의 前근대사적 뿌리 두 가지를 추적하고 있는 바, 그 하나는 고대의  ‘폴리스-정치시민’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의 ‘도시-경제시민’이다. 이번 번역서는 말하자면 베버 시민계급론의 역사적-이론적 삼각 축 중 나머지 두 가지 축을 담고 있는 셈이다.” 

 

△ 교수직에서 퇴임했을 때, 그리고 석좌교수마저 관뒀을 때, 미련은 없었나. 

“몇 십년 만에 모든 공적 의무에서 해방되는 상황을 맞게 되는데, 지금으로서는 미련보다는 우선은 이런 ‘자유인’의 특권을 만끽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런  휴식과 휴지의 시간을 통해 새로운 지적 에너지를 충전한 후 ‘베버 프로젝트’의 수행에 혼신을 다하고자 한다. ‘베버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다.” 

 

△ 40년간 베버와 동고동락해오셨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령과의 동고동락’이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베버와 씨름했나? 더군다나 학부 전공이 ‘독문학’이었는데, 어째서 사회과학, 그것도 고전 사회학의 터줏대감인 베버에게 매료됐는지 궁금하다. 또, 베버가 여전히 한국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장황한 학술적 배경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베버 주술’에 홀렸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간단하면서도 솔직한 답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한 사상가나 예술가에 사로잡힌 사람들 다수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직한 답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질문은 어째서 독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갔냐는 것인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의 구체적 정황 설명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독문학 분야 독일정부장학생으로 도독해, 후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엘리아스 카네티에 대한 박사논문을 집필하던 중 부전공으로 택한 사회학에서 우연히 베버를 만나게 된다. 상기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그의 대표작을 읽으며 자본주의라는 ‘물질적 생산체계’와 개신교라는 ‘정신적 구원체계’간의 이른 바 ‘선택적 친화성’을 규명해 내는 베버의 지적 ‘마술’에 홀려 버린다. 그 이래  베버의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결국 독문학 박사 과정생에서 졸지에 사회학과 신입생으로 변신해 1984년 「막스  베버의 도시론: 서양 시민계급 발전사 연구」라는 주제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곧 바로 (1985년 3월) 한양대 교수로 초빙돼 지금까지 봉직해 왔다. 여담이지만, 베버 자신 평생 마르크스의 유령에 시달렸다는 것은 그의 내밀한 기록들에서 잘 나타난다. 물론 베버는 이 싸움에서 결국 마르크스 유령을 제압하고 우뚝 서서 자신이 그 ‘대안’임을 주장했고, 그의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은 그의 사후 ‘베버 학파’라는 거대 사단을 구축했다. 베버는 그래서 간혹 ‘부르주아 마르크스’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나 역시 마르크스를 베버에 대한 비판적 동반자로 여기며 지속적으로 함께 공부해 왔고, 지금도 내 서가에는 각각 수십 권의 베버-전집, 마르크스-전집(과거 동독판, 즉 1985년 귀국 당시 밀수된 ‘불온서적’!)이 정답게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여전히 ‘가련한 베버 문헌학도’ 이상의 성취를 이룩하지 못했다!

다음 질문이 ‘베버 사상의  한국사회에 대한 시사점’이었던가? 가장 중요하면서 또 그런 만큼 답변이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 답변은 다른 기회에 별도로 제공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대 사회’ 일반을 염두고 두고 단도직입적으로 매우 원론적인 몇 가지 단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나는 베버 뿐 아니라 이른 바 ‘고전사회학자’로 불리는 19세기~20세기 초의 사회 사상가들 대다수는 한국 뿐 아니라 현대 사회 일반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성찰의 출발점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아직도 공자왈, 플라톤 왈 하고 있는데도?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런 先賢들의 ‘지혜’는 아직도 유효하고 유용하다. 그러나 사회학은 ‘지혜’가 아니라 ‘객관적 지식’을 창출하는 학문 분야이고 따라서 베버 사후 그 동안 수많은 전문분야의 ‘事實的’ 지식 기반이 새로이 구축되고 있는 이상 우리와는 다른 지식기반을 가졌던 고전사회학자들의 유용성은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컨대, 이 고전사상가들이 활용했고 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 서구-및 비서구 문화권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수준, 폭, 깊이의 상당 부분은 현대의 정교하고 철저한 역사 연구에 의해 무력화-무효화됐다. 그런데 이들 고전 사상가들은 바로 이런 오류투성이의 역사적 자료들에 의거해 이른 바 서구 중심주의, 서구 예외주의, 서구 우월주의 등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이론틀을 구축했으며 비서구 문명권 일반을 폄하-무시했다. 다시 말해 ‘無知’가 ‘無視’를 낳고, 또 그 역도 성립한다는 원칙이 베버를 비롯한 이들 고전 거장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됐다고 할 수 있다. 나의 師父 베버의 말을 빌려 마무리 짓자면, 우리는 이들을 철저히 ‘탈주술화’ 시켜야 한다.” 

 

△ 막스 베버 탄생 150주년(2014년)을 앞둔 2013년에 연구논문집 『막스 베버 사회학』(나남)을 내놓으셨다. 이와 함께 제자 11명이 헌정한 『현대사회와 베버 패러다임』(임운택 외, 나남)도 출간됐다. 선생님의 베버 연구를 한 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거칠게나마 정리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실는지.

“지금 나는 바로  40여 년간 지속된 베버와의 지적 여정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여정의 결과를 「막스 베버의 ‘실존 사회학’」이라는 주제로 압축하고 있다. ‘실존사회학’이란, 베버가 자신의 학문적 작업을 ‘Wirklichkeitswissenschaft’라고 부른 점에 착안해 내가 잠정적으로 구성한 개념이다. 독일어에서 ‘Wirklichkeit’란 통상적으로 ‘현실’, ‘현존’(철학에서는 ‘현실성’) 등을 의미하지만 나는 이것을 ‘實存’이라는 말로 의역했다 (그러나 가령 ‘실존철학’ 등과의 체계적 연계성은 전혀 전제되지 않고 있음을 밝혀 둔다). 나는 인간 실존의 문제를 일단 세 가지 차원으로 단순 소박하게 유형화 한다. 즉 生存(목구멍이 포도청이다), 自尊(억울하면 출세하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共存(누이 좋고 매부 좋다). 우리말로는 우연찮게 ‘존’자 돌림이라 ‘생자공’으로 축약한다. 영어로는 subsistence, self-esteem, solidarity로 번역할 수 있어 ‘S’자 돌림이다. 모든 사회학적 문제에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얽혀 있고 상호 작용한다. 그리고 ‘생자공 원칙’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 제도, 조직, 체제 등 모든 단위에 적용될 수 있다. 

나는, 현존 사회이론 모델과 개념들의 상당 부분이 매우 설득력이 있고 실효적이라는 점을 기꺼이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 이들 중 상당 부분은 흔히 일종의 현란한 ‘이론-개념-주술’에 홀린 듯한 인상을 준다. 즉 이 모델들은 우리 일상이 가진 단순 소박한 ‘실존’ 문제는 등한시 한 채 이론과 개념의 거품들로 생자공적 현실 그 자체는 덮어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말하자면 識者 끼리의 ‘담론 놀음’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나는 특별히 복잡하고 이해가 어려운 현대 사회학 이론모델들과 씨름할 때 간혹 ‘선무당’을 떠올리며 동시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도 함께 되뇌인다. 우리가 무당을 주문할 때는 어떤 ‘문제’―분명 생자공 문제 중 하나라도 풀기 위해서이지, 무당의 현란한 춤, 이 경우 개념의 춤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니지 않는가? 나는 유행을 타는 현대 사회학 이론의 상당 부분이 바로 무당들의 춤사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물론 이 춤사위가 당사자 생자공의 기반이라는 점은 두말 나위도 없다. 

흥미롭게도―적어도 나에게는―현대 사회학을 각인 시킨 세 명의  고전 사회이론가, 즉 마르크스, 베버, 뒤르케임(나는 사회학사 강의에서 종종 이들을 현대 사회학의 聖三位一體라고 비꼰다)은 일종의 분업을 수행했는바, 즉 마르크스는 ‘생존’(생산양식) 전문가, 베버는 ‘자존’(특히 종교사회학) 전문가, 그리고 뒤르케임은 ‘공존’(유기적 연대-기계적 연대 등)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세 거인은 각각의 ‘전공’ 영역에서는 탁월한 업적을 남겼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세 가지 생자공 영역의 유기적-체계적 상호작용과 연계상황을 충분히 성찰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그나마 이 세 가지 실존 영역간의 상호작용에 상대적으로 체계적인 성찰 작업을 한 학자가 베버라고 보며 그의 사회학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재구성할 뿐 아니라, 그를 출발점으로 하나의 종합적 ‘실존사회학’ 구축의 첫 발을 내딛고자 한다. 

물론 어느 새 나이 70줄에 들어섰고, 너무 거창하고 기약 없는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생자공’ 문제의 절박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지금이야말로  이런 시도를 하기에 適期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 역시 하나의 매우 어설픈 ‘선무당’ 꼴이 될 위험은 상존할 것이다.”

 

△ 사회과학 분야, 특히 사회학계에서는 근래 이론적 자기 갱신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 기존 사회학(이론)에 대한 위기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선 ‘이론사회학’의 궁구가 더 요청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40여년 베버에 매달려 오셨다면, 과연 한국 사회학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 학문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아가 은퇴한 선배 교수로서 조심스레 어떤 제안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학자 생애의 대부분을 ‘베버 왈, 마르크스 왈’하며 고전문헌학자로 보낸 내가, 살아 생생하고 엄혹한 한국 현실 그 자체와 씨름하고 있는 대다수 우리 사회학자들에게 감히 ‘한국 사회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그리고 감히 한 마디 매우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당부의 말씀 드리고자 한다. 모든 직업에 해당되는 말이긴 하지만, 특히 학문에 종사함에 있어서는 단순히 ‘職業(Beruf)’을 수행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베버적 의미에서의  ‘召命(‘Berufung’: 신의 부름 )을 실현한다는 의식이 각별히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각종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작동하고 있는 사회 전체의 구조를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학도들에게는 상기한 소명의식의 훈련과 체화가 그 어느 분야에서 보다 절박하다. 나는 바로 이러한 소명의식으로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다 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우리 사회학도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 전하고자 한다.”

 

△ 오늘날 한국 대학은 연구비 측면에서 정부 지원이 상당히 확대됐다. 반면, 연구자들, 교수들의 자율성이랄까, 이런 측면에서는 위축된 듯하다. 업적평가가 강화된 탓인지, 논문 쓰는 데는 신경을 쓰지만, 영향력 있는 ‘모노그라프’ 단행본 저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직을 떠난 지금, 돌아본다면 이러한 학문정책의 흐름에 불편함을 느끼실 듯하다. 교수업적평가는 단기적으로는 논문 생산을 북돋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도전적인 저술 작업’을 위축시켜, 학문적 호흡을 짧게 만들지 않겠나.

“매우 적절한 지적이다. 학문적, 특히 인문사회과학적 ‘지식 생산양식’이 가진 특수한 성격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적한 문제들의 뿌리에 깔려 있다. ‘길고 깊은  숨쉬기’가 필요한 인문사회과학적 지식 생산을 단기적-형식적 잣대로 평가하고 지원하는 현 기조는 개선돼야 한다. 현 평가시스템에 대해 인문사회과학도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개별 학문 분야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이 “논문 쓰는 데는 신경을 쓰지만, 영향력 있는 ‘모노그라프’ 단행본 저술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나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자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의 역량을 매우 높이 평가하는 바, 이들의 잠재력이 실현될 수 있는 제도와 기관의 확장에 훨씬 더 많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우리 학계에 어느 정도 확산돼 있는 경향, 즉 강의를 하는 ‘대학 소속 교수’와 ‘연구소 소속 학자’에 대한 은연중의 도식적 차별적 평가 경향은 철저히 근절돼야 한다고 본다.”

 △ 독일에서도 강의를 하셨다. 우리가 좀더 고민해볼 수 있는 독일 사회학계의 장점, 독일 학계의 전통이 뭔지 물어보고 싶다. 

“국제 학회에서의 논문 발표가 주된 일정이다. 독일 사회학계의 강점 중 하나는 역시 분야 별 전문화가 매우 잘 정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문화는 주로 대학별 그리고 ‘막스 프랑크 연구소’ 등 연구기관별로 진행돼 왔다. 예컨대 하이델베르크대는 고전사회학이론, 특히 막스 베버 연구의 중심지이며, 그와 달리 빌레펠트대는 니클라스 루만(Niklkas Luhmann) 교수를 필두로 현대 사회학 이론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쾰른대의 경우 경험적 연구의 사령탑 역할을 하는 등, 일종의 대학 간 분업 체제가 형성돼 있다. 물론 이런 체제는 독일 대학들이 모두 국립이며 따라서 재정적 기반이 확고하고, 우리 식의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비학술적―가령 수도권 소재냐 지방소재냐 같은―기준에 의거한) 대학 서열화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과 연관돼 있다. 독일 대학들의 경우, 어떤 계기에서든 (가령 역사적 배경, 개별 학자들의 탁월한 업적 등을 통해) 한번 확립된 대학 자체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크며 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이 대학에 대한 평가와 지원의 기준이다. 

한국 대학들은 전혀 다른 구조적 조건하에 성장해 왔으므로 독일과의 평면적 비교 또는 성급한 비판은 삼가야 할 것이다. 다만, 학자와 학문 기관의 ‘자존감’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전문성’에 기반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염두에 두고 학자 및 학술기관에 대한 지원과 평가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적어도 대학과 연구기관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아직도 남아 있는 ‘연줄공동체적’ 기질이 근절되고 ‘전문가공동체적’ 원칙이 더 철저히 관철돼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 대학과 연구기관들도 그간 이런 방향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은 기꺼이 인정하는 바 이지만, 학문적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배고픔’은 여전히 상존한다는 느낌만은 지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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