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우] 지금껏 우리가 몰랐던 한비자를 만나다,『적우』양선희
매체명 : 교보문고   게재일 : 2017-09-12   조회수 : 648

중국 최초의 패왕(霸王) 진시황과 당대 최고의 책략가 한비자. 비정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적으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우정을 싹틔운다. 그러나 그들은 천하의 운명을 건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비극적 숙명을 마주하게 된다.

 

중국의 다양한 고전과 책략을 탐구하고 이를 자신의 글 속에서 깊이 있게 다루어 온 작가가 있다. 바로 《余流 삼국지》를 통해 삼국지를 자신만의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였던 소설가 양선희. 이제 두 영웅의 모순적 관계를 중심으로 인물의 고뇌를 치밀하게 추적해 들어가면서도 중국 전국시대 말의 중원을 박진감 넘치게 재현한 장편소설 《적우》로 돌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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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장편소설 《적우》(敵友)를 출간하셨는데요, 제목이 낯설면서도 신선합니다.

사람들은 인간과 관계를 ‘흑과 백’으로 명쾌하게 딱 잘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원래 인간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존재이기에 그런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제목을 통해서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적’(敵)과 ‘친구’(友)는 상반된 개념이기에 공존할 수 없어요. 하지만, 마음과 영혼은 서로 통하는 벗이 이념과 현실문제에선 적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록 비극적일지라도 이런 관계는 인간이 단순하지 않기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이를 바로 한비자와 진시황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고, 제목도 《적우》로 정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한비자와 진시황입니다. 그 이름들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두 사람을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저도 두 사람의 삶을 세세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을 다룬 역사적 기록 자체가 매우 적고 단편적이거든요. 그래서 그들의 전기소설은 쓸 수가 없습니다. 팩트(fact)와 히스토리(history)를 충분히 담은 전기소설을 쓰는 데에 필요한 사료가 애초에 없는 거죠.

소설 속 두 사람의 내면이나 서로의 관계는 상상하며 그려낸 것입니다. 다만 오래전부터 한비자를 많이 읽어 왔기에 그러한 상상도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회사와 저희 집 책상의 독서대 위엔 《한비자》가 펼쳐져 있었죠. 틈틈이 몇 페이지씩 넘겨보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행간을 읽게 되더군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한비자의 모습을 그 행간을 통해 발견하고 소설로 쓰신 것이군요?

네. 한비자의 글은 매우 냉정하고 때론 잔혹하지만, 비꼬거나 비난하는 태도는 전혀 없습니다. 마음속에 열등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한편 그의 글은 대단히 격정적이고 강하면서도 사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점점 궁금해졌어요.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 못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의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한비자에 주목한 소설을 찾아봤는데 별로 없더군요. 저에겐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 같아 대신 제 소설의 주인공으로 불러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한비자와 진시황을 묶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제왕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비자는 이상적 군주상을 깊게 탐구했고, 진시황은 스스로 그런 왕이 되고자 했죠. 두 사람의 우정도 그러한 접점을 통해 싹을 띄우고요. 두 사람의 제왕학은 분명 닮았으면서도 다른 점이 있죠?

한비자가 꿈꾼 군주는 밝은 눈으로 인재를 찾아내 기용하고, 자기 이름으로 상벌을 분명히 내리며, 권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간신들이 제 잇속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요약하자면 밝고 강하고 냉철한 군주라고나 할까요.

진시황은 여러 면에서 그러한 리더상과 닮은 듯합니다. 대단히 강하고, 총명하고, 집요하고, 이해에 밝고, 교활한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천하를 정복할 수 있는 군주로는 적임자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이익에 몰두하는 자는 세상을 통합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못 타고나죠.

 

 

그러면 한비자와 진시황의 관계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신 건가요? 무척 애틋하면서도, 전에 없는 관점이어서 매우 참신하게 다가오는데요.

두 사람을 다룬 단편적 기록들을 접하다가, 그들의 관계가 좀 달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시황을 보자면 한비의 상소문에 깊이 감탄하며 신하들에게 돌려 읽히거나 한비자가 죽은 후에 그 죽음을 후회 섞인 뉘앙스로 언급하는 모습 등을 발견할 수 있어요. 평소 거침없고 냉철한 진시황의 태도나 어법과는 좀 다른 느낌 같은 거죠. 반면 한비자가 진시황에게 누군가를 비난할 때에는 아주 격의 없는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거칠고 격한 표현이 많이 등장합니다. 원래 인간관계란 친해지면 거침이 없어지죠. 왕과 사신이 나누는 대화라기엔 지나치게 격의가 없더군요. 이런 단편적 기록들이 그들의 ‘브로맨스’를 상상해 내는 기초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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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적우》에서 역사와 상상을 절묘하게 연결하셨어요. 그런데 결과가 이미 정해진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글을 쓸 때에는 자칫 인물을 긴장감 없이 그려내기 쉬울 것 같은데요.

《적우》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여러 자료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 고대사의 인물들은 관련한 사료가 적어요. 결과가 결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할 공간이 큽니다.

제 경우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각 인물 관련 자료를 챙기고, 대강의 캐릭터를 머릿속으로 설정하면 소설을 쓰기 시작해요. 그러면 인물들이 알아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집필을 시작하고 나면 자료를 많이 보지 않습니다. 사상과 논리, 역사적 사실 부분이야 자료를 많이 참조했지만, 사람들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주인공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주도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어느새 그들 각각이 자신만의 개성을 입체적으로 가지게 되더군요.

 

 

이번 《적우》의 배경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던 중국 전국시대에요. 그런데 앞서 출간하셨던 《余流 삼국지》도 혼란러운 난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죠. 계속해서 난세에 관심을 기울이시게 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실은 아주 어려서부터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제 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전쟁사, 전쟁영화, 전쟁소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전쟁과 전투,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지는 전술 등이 무척 쉽게 이해됐고 제 상상력도 엄청나게 확장시켰죠.

어쩌면 저에게는 난세나 전쟁처럼 뭔가 엉켜 있는 이야기와 상황을 쉽게 이해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학교 다닐 때 여자아이들은 가사시간에 뜨개질을 했는데 실이 잘 엉키거든요. 그럼 반 친구들이 엉킨 실을 모두 저한테 가져왔어요. 제가 워낙 잘 풀었거든요. 그렇게 뭐든 엉킨 것을 잘 파악하고 푸는 데에 능숙했어요. 난세도 세상사가 많이 엉킨 순간이니 저한테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 아닐까요?

특히 난세에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지혜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어떤 참혹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 길을 찾아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지요.

 

 

책략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작가님은 ‘고대와 현대 중국의 책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셨는데요. 한중 간 사드 외교를 보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외교 면에서 중국은 우리나라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한데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이익’일 겁니다. 중국인들은 이득이 곧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러내어 득실을 따지는 데에 부끄러워하거나 체면을 차리지 않아요. 또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기법이나 논리도 상대의 억장이 무너질 만큼 잘 만들어 내죠. 사실 중국에는 이득을 좇기 위한 교묘한 논리가 고대로부터 차곡차곡 축적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 중국의 논리들도 그러한 옛 지식이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접근법은 ‘이익’을 중심에 두지 않았던 것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리, 정, 선행, 믿음, 명분, 예의 등으로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상대도 나처럼 하길 기대하지요.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에 있어서는 좀 복잡해요. 뒤에서는 은밀하게 이익을 좇으면서도 그걸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이중성이 있어요. ‘이심전심’과 같은 비합리적 감성이 통할 거라고 믿는 이런 태도는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외교도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국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외교에서 우리가 선의를 베풀면 상대도 따라오리라 기대하거나 “우리가 어떤 사인데 네가 그럴 줄 몰랐다”며 항변하는 건 정말 순진하고 무익한 행동입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군요.

우리는 여전히 유교적 관점이 강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정신을 유교적 덕목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제자백가와 중국 역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발견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오히려 여기서는 다 못하겠네요. 다만 일단은 사서삼경을 잠시 덮어 놓고, 다른 선진제자들의 사상과 중국의 고대 책략서들을 읽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유학에 편중된 중국관은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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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눌수록 중국, 그리고 중국 고전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시리즈를 연재하시며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하셨잖아요? 이렇게 폭넓게 중국 고전을 사랑하시는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중국 고전, 그중에서도 제자백가는 인간과 세상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게 되는 데에 가장 좋은 텍스트인 것 같습니다. 독서는 원래 식사를 하는 것과 같고, 책은 식품과 같은 것이어서 책을 잘 소화시켜 나를 건강하게 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자백가가 요즘 저의 건강식인 것 같습니다.

원래 다른 사람들처럼 젊어서는 사서삼경을 공부했었죠. 대략 중국 고전은 유학이 전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한비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에서야 나의 독서가 얼마나 협소했는지 깨달았습니다. 한비자를 계기로 법가, 병가, 도가, 종횡가 등 다른 제자백가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글도 오랜 스승을 소설로 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30대 후반에야 한비자를 만났으니 좀 늦었다고 생각해요. 늦은 만큼 집중하다 보니 요즘은 제자백가를 중심으로 많이 읽고 있습니다.

 

 

남성적인 언론조직에서 여성 언론인으로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아직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성공이라고요? 저는 그냥 버텼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걸 성공으로 봐주시는 분이 있군요. 여성 후배 여러분. 그저 버티십시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얼마 전 “요즘 독자들은 소설을 살 때 기존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이나 외국 소설을 번역한 작품 정도를 선택한다. 그러니 한국 소설가 작품은 출판하기 어렵다”는 말을 출판 관계자로부터 들었습니다. 한국은 시장이 워낙 작아 우리말로 문학을 하며 전업 작가로 사는 것은 원래부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독자층도 옅으니 한국인 작가들은 책도 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한국문학이 어려운 시대에도 한국의 소설가로 살고 싶어 절치부심하는 양선희라는 작가가, 그리고 저와 같은 많은 작가가 있다는 걸 기억해 주시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결국 타자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 ‘소통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통로이며, 우리의 모국어를 조탁하는 일입니다. 그런 문학의 기능과 장점이 많이 이해받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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