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海東사상의 계보’… ‘동유학안’ 한글 완역본 출간
매체명 : 동아일보   게재일 : 2008-08-04   조회수 : 7073
“(중국 청나라의) 유종록(儒宗錄)에는 ‘우리 해동(海東)의 학문이 포은에게서 나오고, 포은이 야은에게 전하고 야은이 다시 전해 점필재 이후부터 선비가 무수히 배출돼 찬란하게 도학(道學)의 적통을 이었다’라고 했다. 한훤당과 일두가 점필재에게 배웠고, 모재와 정암은 한훤당에게 배웠다.”

구한말 유학자 회봉(晦峯) 하겸진(1870∼1946)이 펴낸 ‘동유학안(東儒學案)’의 한 대목이다. 중국의 성리학이 고려 말에 전래된 후 포은 정몽주로부터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으로 이어지고 다시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이 배출됐으며 김굉필에게서 모재 김안국, 정암 조광조 등 조선 초기의 학자가 나왔다는 설명이다.

회봉이 3책 23편으로 펴낸 ‘동유학안’을 보면 이처럼 한국 유학의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도산학파, 덕산학파 등 서로 다른 학파의 학자와 사상의 특징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학안’은 학파와 그 학자들의 학설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뜻으로, ‘동유학안’은 한마디로 한국 사상사를 집대성한 책이자 한국 사상을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필수 자료다.

이 ‘동유학안’이 처음 한글로 완역돼 ‘증보 동유학안’(전 6권·27만 원·나남출판사)으로 나왔다. 이기동 최일범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 조장연 박상리 성균관대 연구교수 등 8명의 학자가 4년 꼬박 매달려 공들인 노작이다.

○ 하겸진과 ‘동유학안’

‘증보’라는 표현이 붙은 것은 회봉이 원전에 기록한 유학자 152명 외에 15명을 번역자들이 추가했기 때문. 번역 작업을 총괄 진행한 조장연 교수는 “꼭 포함됐어야 하는데 누락된 학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유학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다른 책에서도 있었으나 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망라한 ‘학안’은 회봉이 유일하다. 최 교수는 “학자들을 일부만 포함시키거나, 학자들의 행적만 기록한 책들이 있었지만 ‘동유학안’은 유학자들의 생애 등을 총망라했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 출신인 회봉은 영남학파의 맥을 이은 유학자로 선배 유학자의 학술과 덕행을 고찰할 문헌이 없는 것을 한탄한 나머지 1938년 ‘동유학안’ 저술에 착수해 1943년에 완성했다. 중국에선 왕조가 바뀔 때마다 지난 왕조의 사상을 정리한 ‘송유학안’ ‘명유학안’ 등이 편찬됐다.

○ 설총, 정몽주, 이황, 이이, 송시열, 정약용…

신라의 설총부터 구한말 간재 전우까지 학자별로 정리한 ‘동유학안’의 각 장은 학자의 이력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신라 학자 최치원에 대해 ‘최치원(857∼?)은 자가 해운(海雲)이고, 수도(경주) 사량부 사람이다. 12세에 배를 타고 당나라에 가서 학문을 익힘에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식이다.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학파는 퇴계 이황의 ‘도산학파’. 조 교수는 “회봉이 퇴계를 전승한 학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봉은 “우리나라의 유학이 있은 이래 경술과 덕행이 갖춰지기로는 퇴계 같은 분이 없다”고 기록했다.

이 책은 이와 함께 남명 조식과 그의 후학들이 포함된 ‘덕산학파’,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중심으로 한 ‘담파학파’ 등을 별도로 분류한 뒤 학파의 성격과 대표 학자들의 학문적 특성을 기술했다. 김늑, 정경세, 이휘일, 정시한, 홍여하, 정만양, 이병원, 조종도, 이광우, 하수일, 이후경, 윤선거, 정희량 등 낯선 국내 유학자도 대거 등장한다.

○ ‘증보 동유학안’이 나오기까지

‘동유학안’의 한글 완역본이 이제야 나온 까닭은 “작업이 방대하고 번역에 드는 재원 마련이 힘들어 개별적으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던 중 2003년 학술진흥재단의 기초학문육성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예산 지원이 이뤄지면서 번역이 시작됐다.

번역자들은 4년 넘게 한문 원전에 매달렸다. 잘못된 글자와 누락된 글자를 바로잡기 위해 학자들의 문집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다. 누락된 글자를 문집에서도 찾지 못할 때는 맥락을 고려해 만들어 넣은 일도 있었다.

연구 책임을 맡은 이기동 교수는 “한국의 유학사상은 우수한 수준인데도 그것을 정리한 기록물이 많지 않다”며 “‘동유학안’ 같은 귀중한 자료는 한글로 번역해야 하고 외국에도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번역에 나섰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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