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실험국가 '만주국'을 파헤치다
매체명 : 경향신문   게재일 : 2008-07-15   조회수 : 7029
ㆍ시카고대 두아라교수의 ‘주권과 순수성’

중국사에서 스러진 나라 ‘만주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꼭두각시 왕으로 있었던 ‘괴뢰국’의 슬픈 이미지로 기억돼온 실험국가. 지구상에서 13년(1932~45) 동안만 존재한 만주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 작업이 구체화됐다.

만주 국경 지역에서 군수물자를 수송 중인 일본 군인들이 열차 위에서 경계태세를 취한 모습.

최근 번역된 미국 시카고대 역사학과 프래신지트 두아라 교수의 ‘주권과 순수성-만주국과 동아시아적 근대’(나남)는 만주국이 갖는 의미를 새로운 시각에서 파헤친 시도로, 최근 들어 고조되고 있는 만주국에 대한 국제학계의 관심을 잘 보여준다.

만주국이 지금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책을 번역한 한석정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만주국은 오늘날에도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동북아 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한다”며 “나아가 개발국가와 잔인한 폭력의 기록 등 근대국가의 기묘한 두 얼굴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만주국은 일본의 1930년대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뒷받침이 됐으며, 일본의 군대와 관료들을 위한 훈련장, 통제경제, 건축, 도시계획 등 일본 근대의 실험장이었다.

기시 노부스케로 대표되는 이른바 ‘만주 인맥’은 45년 이래 일본 보수정치의 한 기둥을 형성했고,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한국 사회의 근대화 전개 과정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만주국이 한국에 끼친 가장 중요한 영향은 발전국가 모델”이라는 지적이다.

만주국이 이상국가임을 선전하는 관동군의 포스터.

사실 31년 일본 관동군의 만주사변 직후 세워져 45년 일제 패망과 함께 마감한 만주국의 학술적 의미는 지금까지 잊혀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규탄이나 항일투쟁 담론이 다른 담론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두아라 교수는 만주국을 1차 세계대전 이후 시대의 산물이라고 정의했다. 당시는 제국주의가 점차 비정통적인 것이 되고, 국가간의 정치·경제적 경쟁이 민족주의 형태로 표현되던 시대인데, 만주국의 탄생은 일본 제국주의가 새로운 실험공간인 만주에 이식한 내셔널리즘의 영향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두아라 교수는 이 과정에서 만주국의 민족적 순수성 또는 정체성이 발견됐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는 만주지역의 수렵 부족인 오로첸(鄂論春)인들에 대한 일본의 연구다. 당시 인구 2000~3000명에 불과한 소규모 부족이었지만 일본어로 된 오로첸인 연구서는 20개가 넘었다.



중국 주변부에 대한 일본의 민속학적 연구 활동은 변방의 원주민들과 그 땅을 민족적 ‘상상’ 속에 흡수시키려는 중국 측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권적 민족 형성을 위해 전통 요소의 문화적 접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발시켰다. 민족적 순수성을 발견하려고 했던 예는 이외에도 만주의 원시림, 도덕회 같은 희생적인 구세(救世) 집단의 여성들, 량샨딩(梁山丁)의 소설 ‘녹색의 골짜기’(錄色的谷) 같은 향토·농촌의 순수한 문화를 수호하고 대변하는 문학 작품 등을 포함한다. 그의 주장은 “세상을 도덕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잠재력 즉, ‘순수성’이란 것이 있고나서야 민족주의의 핵심인 주권이 확보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두아라 교수는 그러나 “해방적·반제국주의적 성격을 갖고 생겨난 만주국의 민족주의는 어떤 점에서 제국주의와 비슷한 새로운 지배양식으로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만주국의 ‘아시아주의’ ‘다민족주의’ 이념은 이 잠재력의 일본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만주국 탄생의 의의를 이런 잠재력이 구 소련, 인도 등 새 국민국가들에 확산된 데 있다고 짚었다.

번역자 한석정 교수는 “만주국은 국가 건국의 기술을 도출하고 있다. 만주국의 경우 순수함을 동반한다면, 어떤 문화적 요소이든 그 수호자로 자처하려 했다”며 “이는 만주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입되는 과정들”이라고 했다.

만주국이 연구 대상으로 가치 있는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수많은 ‘위성국가’(Client State)의 한 전형이 됐다는 점이다. 냉전시대에 소련과 미국이 그들의 우방에 영향을 행사한 본보기가 되었던 만주국의 그늘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이라크의 현 상황에까지 걸쳐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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