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토지에서 더 높은 산 지으소서"
매체명 : 한국일보   게재일 : 2008-10-20   조회수 : 5854
박경리 추모 시집 출간

이왕구기자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말씀 기억합니다/ 웃음도 눈물도 버리고 남편 아들 잃어버리고/ 뒤주의 바닥까지 딱딱 긁어 밥을 짓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문 닫고 귀 닫고 오로지 글밭만을 일구셨으니/ 그 밥을 먹고 자란 우리는 이제 고아가 되었습니다(고명자 우리들의 토지에서).

지난 5월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기리며 시인 50여명이 쓴 추모시를 묶은 시집 <아, 토지여 생명이여>(나남 발행)가 출간됐다.

토지문학제추진위원회가 엮은 이 시집에는 이근배, 강희근 등 중진 시인들에서부터 갓 등단한 젊은 시인들, 경남 하동과 통영, 강원 원주 등 고인과 인연이 있는 지역의 문인들이 쓴 작품이 실렸다.

거목이 드리운 그림자가 깊고 짙듯 선생을 향한 후배 시인들의 그리움은 통절하다. 고인의 영결식에서 조시를 낭송했던 이근배 시인은 선생의 붓은 시대를 경작하는/ 쟁기요 삽이요 호미였고/ 사람이 사는 길을 가리키는/ 지도였고 나침반이었습니다/ 토지는 우리 역사이고 산하이고/ 겨레이고 생명이고 평화이고/ 자유이고 희망이고 미래입니다(하늘의 토지에서 더 높은 산 지으소서에서)라고 추모의 염을 표한다.

박경리의 문학은 많은 시인들에게 그들의 문학적 모태, 출발점이었다. 권석창 시인은 나의 문청 시절은/ 토지와 함께 시작되었고/ 토지를 읽으며 나이를 먹어갔다/ 이 땅을 살다간 토지의 사람, 사람들, 하나하나는 내 가족이고 내 이웃이고/ 나의 동지이고 나의 적이었다(토지의 사람들에서)라고 했다.

권선희 시인은 그이라는 시에서 빈 들판 같은 가슴에도 강이 흐른다/ 그 사람 생각하면/ 강은 한없이 깊어지고/ 강 오래 바라보면/ 어린 버들치 노니는 수초 숲에도 알 품은 새가 산다며 문학의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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