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진화론은 자유주의+공동체정신"
매체명 : 한겨레신문   게재일 : 2008-06-05   조회수 : 6588
박세일 교수 “한국 선진화론은 자유주의+공동체정신”
‘공동체 자유주의’ 펴낸 박세일 교수

이명박정부 탄생 사상적 바탕 제공
경제·교육·노사 등 정책방향 제시도
“헌신성 없는 부패한 우파들만 많아”

이명박 정부 탄생에 사상적 바탕을 제공한 학계의 두 흐름이 있다. 하나는 안병직(전 서울대 교수·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영훈(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을 중심으로 한 ‘낙성대 경제연구소’ 그룹이다. 다른 하나는 박세일(서울대 교수)·나성린(한양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안민정책포럼’ 그룹이다. 경제학자들이 터를 닦은 두 학문집단은 지난 10여년간 개발독재 시대의 ‘근대화론’을 재해석하여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전으로 ‘선진화론’을 제기한 진앙지가 됐다.

이 가운데서도 박세일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 법경제학과)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학계, 시민운동, 정계를 두루 섭렵했고, 김영삼 정부 이후 줄곧 한국 보수세력의 사상·정책적 브레인 구실을 해왔다. 그가 동료 학자들과 함께 <공동체 자유주의>(나남)를 펴냈다. 박 교수 외에도 나성린, 신도철(숙명여대) 교수가 공동 편집했고, 김일영(성균관대), 박효종(서울대), 류석춘(연세대), 이근식(서울시립대) 교수 등 15명이 글을 썼다. 1996년 ‘신자유포럼’으로 출범했던 안민정책포럼은 2006년 이후 ‘공동체 자유주의’를 공식적인 이념지향으로 내걸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이들이 생각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집대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박 교수가 2006년 2월 펴낸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1세기 북스)에서 공식화됐다. 이 책에서 박 교수는 선진화의 철학으로 공동체 자유주의를 입론했다. 이명박 정부는 ‘통합적 자유주의’와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는데, 통합적 자유주의와 공동체 자유주의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박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공동체 자유주의는 국가발전의 원리이자 국민통합의 이념”이라고 말했다.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통적 공동체 정신으로 자유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것이 공동체 자유주의”라고 설명했다. 책에서는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가미하려는 ‘제3의 길’과도 다르다”고 썼다.

박 교수는 개정판 <법경제학>(박영사) 서문에서 “학문을 통한 진리 추구에는 반드시 사회적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 사회변동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려는 보수주의 경제학자의 문제의식이 공동체 자유주의 담론에 강하게 담겨 있다.

실제로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산파 노릇을 했고, 그 내부에서 ‘경실련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하며 당시 ‘세계화론’의 이데올로그 구실도 했다. 불법 대선자금 사태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렸던 2004년에는 비례대표로 영입돼 박근혜 당시 대표와 함께 총선을 지휘했다.

임기 중도에 돌연 학계로 돌아간 이후에도 그의 ‘실천적 관심’은 잦아들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추상적 담론과 구호는 많이 내세웠는데,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며 “정리된 정책기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짧게 평했다.

다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우파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철학적 우파’는 한국에 없다”며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하는데, 현실에 안주하여 기득권만 지키려 하고 그 결과 부패하는 보수주의자들만 많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이번 책에서는 공동체 자유주의에 입각해 경제·노사·사회·환경·교육 등에 걸친 정책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개방과 경쟁의 원리를 중심에 두는 이명박 정부의 지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 강하지만, 박 교수는 “이번에 준비한 책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무관한 전혀 별개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안민정책포럼은 5일 오후 4시30분부터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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