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아나운서 임택근’ 그를 통해 본 한국 방송사
매체명 : 일간스포츠   게재일 : 2008-06-02   조회수 : 10377
한국 방송의 역사는 아나운서와 궤를 같이한다. 김동건·변웅전·차인태·황인용에서 김성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스타 아나운서들이 브라운관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항상 먼저 오는 이름이 있다. 임택근. 그의 목소리 한번 들은 적 없는 세대도 예전에 임택근이라는 아나운서가 있었다는 민담처럼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김민환의 아나운서 임택근은 그 전설을 활자로 옮긴 책이다.

1932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서 태어난 임택근은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을 시작했다. 최고의 스포츠 캐스터로, 스무고개의 명 사회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1964년 MBC로 이적해 아나운서 실장을 거쳐 전무를 지낸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이다.

물론 이 책은 전기(傳記)를 넘어 전기(傳奇)로 보일 수도 있다. 얄개전의 저자로 유명한 조흔파는 왕년의 방송인이자 임택근의 고교시절 은사로 등장한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그를 경무대로 불러 임 변사라고 부르는 역을, 당대의 톱스타 엄앵란은 그와 춤 한번 추고 약혼 상대로 스캔들의 상대가 되는 역을 맡았다. 알려진 대로 그는 가수 임재범과 탤런트 손지창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가 방송국에서 당직을 하던 날은 시내 유명 요정 주인들이 앞다퉈 야식을 배달시켰다든지, 4.19 때 방송국 앞으로 몰려온 대학생 시위대가 면담을 요구한 사람은 방송국 사장이 아니라 임택근 아나운서였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홍길동전이나 전우치전 처럼 신나게 읽힌다.

하지만 이런 경이적인 이야기들이 당시를 훨씬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 언론사 전문가인 김민환 교수(고려대 언론학부)는 임택근의 활약상을 그리는 틈틈이 1950년대 이후 한국 방송의 발전사를 낱낱이 짚어내는 데도 게으르지 않다. 이 책이 결코 단순한 신변잡기나 회고담이 아닌 이유다.

컬러 TV 시대와 함께 임택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사라져 갔지만 실제로는 1995년까지 EBS에서 방송 진행자로 일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는 라디오 중계방송을 맡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한마디로 쉼 없는 반생. 저자의 말 그대로 그는 대중 곁에 있어 행복했고, 대중은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김민환 지음, 나남, 1만5000원.

송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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