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나운서 인생이 곧 한국 방송史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8-05-30   조회수 : 6879
고려대 김민환 교수 아나운서 임택근 펴내
책 쓰려 제주·벳푸서 3박4일씩 합숙 인터뷰

"가문의 명예입니다. 저명한 언론학자가 제 삶에 의미를 두고 책을 쓰시다니…."(임택근), "우리나라 초기 방송은 아나운서의 시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임 선생님은 대표적인 인물이었죠."(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김민환(63) 교수가 올해 희수(喜壽·77세)를 맞은 아나운서 임택근씨의 삶을 정리한 책 아나운서 임택근을 펴냈다. 굵고 당찬 목소리를 전파에 실어 보내며 대중을 매혹했던 임씨의 일생을 통해 1980년대까지 한국 방송사를 정리했다.

최근 다리를 다쳐 서울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임씨는 이 책에 대해 "환갑 때 펴낸 자전적 에세이에 비하면 과대포장도 없고 참 객관적"이라며 "제가 연세대 출신인데 고려대 교수님이 관심을 갖고 써주신 것도 영광"이라고 크게 웃었다.

김 교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삶을 통해 한국 언론사를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임 선생님이 첫 번째 주인공으로 눈에 확 들어왔다"며 "제대로 가르쳐 준 선배도 없이 초기 방송계를 목소리 하나로 이끌었던 점이 대단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 책을 위해 일본 벳푸와 제주도에서 3박4일씩 두 차례 합숙까지 했다.
작년 3월 일본 벳푸에서‘합숙 인터뷰’를 가진 임택근 아나운서(왼쪽)와 김민환 교수.
"서로 너무 바빠서 서울에서 만나면 한두 시간밖에 이야기를 못 나눴어요. 아예 핸드폰도 안 되는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선생님의 인생을 정리하고 싶었죠. 온천에 함께 옷 벗고 들어간 상태에서도 인터뷰가 계속됐습니다."(김민환)

임씨는 "책을 보면서 지나온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40년 방송 인생에서 가장 뜻깊었던 건 KBS와 MBC TV 개국 방송을 제 목소리로 했다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 때 38년 만에 다시 중계석에 앉은 게 제일 행복했고요."

대학교 1학년 때 데뷔한 임씨는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고 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중계를 많이 맡아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마디로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로 스타가 된 거죠."

임씨는 "타고난 재주보다 후천적 노력이 더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초보 시절 서대문에서 동대문까지 전차를 타고 가면서 신문지를 마이크처럼 둘둘 말아서는 길거리 간판을 하나하나 다 읽었어요. 남들이 저 젊은 놈 미쳤다고 했었죠."

요즘 젊은 아나운서들에 대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표준말의 파수꾼입니다. 요즘 많은 후배 아나운서들이 연예인인지 가수인지 탤런트인지 구분하기 힘들 지경인데, 본분을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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