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타계…수난의 민족사 품은 ‘한국문학 어머니’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8-05-06   조회수 : 6823
박경리는 1926년 10월28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봉건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했던 그는 책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어떤 산문에서 그는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고 쓴 바 있다. 그가 인간으로서 겪은 슬픔과 괴로움이 오히려 박경리 문학의 웅혼한 바탕이 된 셈이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사춘기를 버틴 그는 해방되던 해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바로 결혼한다. 하지만 6·25 전쟁의 와중에 행방불명되었던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죽음을 맞고 곧이어 세 살짜리 아들마저 세상을 뜨면서, 그의 곁에는 딸 하나만 남게 된다. ‘젊은 과부’로서 세상에 맞서 어린 딸을 건사하던 그는 1955년 김동리의 주선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면서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57년 그에게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안긴 단편 <불신시대>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남편을 잃고 전쟁 뒤에는 타락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 외아들을 마저 잃는 전쟁 과부의 체험을 그렸다. 치료약의 함량을 속이는 병원, 내세를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종교인, 알량한 돈을 떼어먹는 친척 등 기만과 이기주의, 배금주의가 판치는 전후의 혼란상과 그에 대한 분노는 절에 맡겼던 아들의 위패를 불사르는 행위로 절정에 이른다. 소설 끄트머리에서 작가는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라고 썼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토지>를 통해 활짝 개화할 ‘박경리표 생명주의’의 시발이라 할 수 있다.

‘생명사상’이라면 흔히 그의 사위 김지하 시인의 발안으로 여겨지지만, 박경리 역시 인간과 자연과 우주가 다 함께 어우러지는 생명관을 기회 있을 때마다 피력했다.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산문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자연의 파괴는 우리 모든 생명체의 파괴이며 자연의 황폐는 우리 모든 생명체의 황폐이며 자연의 해체는 우리 모든 생명체의 해체입니다. 그리고 자연의 종말은 우리 모든 생명체의 종말입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신은 모두 자연의 것이며 자연의 육신과 영신 역시 우리의 것입니다.”

그가 <한겨레>와 한 2002년 신년 인터뷰에서 청계천 복원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청계천 복원 사업을 촉발시킨 것도, 그 뒤 2004년 3월 다시 <한겨레>와 만나 청계천이 생태축을 되살리는 제대로 된 방식으로 복원되지 않고 인공 호수 같은 형식으로 ‘복원’되는 데 대해 개탄한 것 역시 이런 생명주의의 적극적인 발현이었다.

69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94년 8월15일 전체 5부로 마무리된 대하소설 <토지>는 박경리 문학의 정점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우뚝한 봉우리이다. <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 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형수인 별당 아씨와 밤도망을 놓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 붙은 남녀를 쫓는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한편에서는 치수를 유혹해 그의 만석지기 농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녀 귀녀의 음모, 치수가 비명횡사한 뒤 최 참판댁 재산과 토지를 노리는 그의 재종형 조준구의 행보, 마을 남정네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의 비련, 장차 서희의 남편이 될 길상이에 대한 하녀 봉순이의 회한 넘치는 연정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피었다 진다.

<토지>는 윤씨 부인에서 서희로 이어지는 모계 중심 가족사를 인상 깊게 그린 것으로 평가받는가 하면, 지주와 빈농 사이의 계급적 모순과 갈등이 전근대적 인정과 충효 이데올로기로 희석된다는 문제를 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희와 조준구를 비롯한 중심 인물들은 물론, 단역에 지나지 않는 소소한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점은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토지>의 위대성이다.

<토지> 완간 이후 오래 침묵하던 작가는 2003년 <현대문학>에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한 장편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세 차례 만에 원고지 440여장 분량으로 중단되었다. 이 미완성 소설과 산문들을 묶어 지난해 작품집 <가설을 위한 망상>을 내놓은 그는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 설> <어머니> <옛날의 그 집> 등 신작시 3편을 8년여 만에 발표했다. 이 작품들이 결국 그가 생전에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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