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작가들 위해 원주에 토지문화관 마련
매체명 : 조선일보   게재일 : 2008-05-06   조회수 : 7295
팔순에도 손수 밥상 챙기며 창작열 북돋워

"내가 자네들을 뒤에 숨어서 살펴주는 이유는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뜻이야."

팔순의 노작가 박경리는 원주 토지문화관에 모여든 작가들의 밥상에 올릴 반찬 몇 가지를 손수 준비했다. 병마로 쓰러지기 전, 그녀는 새벽 3시에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고구마와 당근, 옥수수, 고춧잎을 씻었다. 가끔 뒷산에 올라 두릅도 땄다.

지난해 동인문학상을 받은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이곳에서 완성한 작가 은희경은 박경리를 한 쪽 젖이 없는 어머니라고 불렀다. "선생님은 종양 수술로 이미 한쪽 가슴이 없었지만 두 가슴을 다 가진 여자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소설가 윤대녕은 박경리를 "말이 아닌 몸의 실천으로 후배들의 창작을 독려한 어른"으로 기억했다. "토지문화관에 보통 한 달 정도 들어가 있게 되는데, 한 번 들어가면 단편이나 중편 하나씩 손에 들고 나오게 됩니다. 팔순을 넘긴 대선배가 차려주신 밥상을 받고 나면 도저히 그냥 놀고먹다 나올 수가 없어요."

1999년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들어선 토지문화관은 많은 작가에게 창작의 고향이었다. 정찬, 박범신, 윤대녕, 은희경, 권지예, 차현숙 등이 이곳에 들어와 그녀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글을 썼다. 올해도 이강숙, 이승우, 윤흥길, 권여선, 김미월 등 30명의 작가와 예술인들이 토지문화관에 입소 신청을 했거나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본관 건물 일부와 선생의 사저 옆에 있는 매지사라는 흰 목조건물이 작가들의 집필 공간으로 사용됐지만 작가들이 몰려들자 2006년 문화관 입구에 귀래관이라는 창작 전용 건물을 다시 세웠다.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노작가를 지척에서 모셨던 문학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교수는 토지문화관이란 이름이 지어진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처음엔 토지문학관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선생께서 반대했어요. 그분 뜻대로 토지문화관으로 하고 나니 문인뿐 아니라 모든 예술인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지요."

대작가는 갔지만 토지문화관은 새로운 신화를 꿈꾸고 있다. 원주시의 재정 지원을 받아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인근 회촌마을에 작가마을이 들어설 예정이다.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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