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음속의 속물 근성을 해부한다
매체명 : 문화일보   게재일 : 2008-03-04   조회수 : 7143
‘사회비평’ 봄호 ‘우리시대 속물주의’특집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스스로 철저한 속물이 되자 다짐하고 나면 현실적으로 확실한 선택을 하는 데 갈등이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사소한 일로 심정을 그르치는 일도 줄어든다.”(남인숙 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랜덤하우스) 바야흐로 ‘속물’의 시대다. ‘스스로 속물이 되라’고 명령하는 처세서의 문구가 아니더라도 속물, 속물주의의 도도한 흐름은 이미 거스릴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최근 출간된 계간 ‘사회비평’ 봄호(통권 39호)는 ‘속물, 우리시대의 초상’이라는 특집을 마련,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욕망구조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 속물주의의 뿌리 = “속물주의는 사람들의 왜곡된 인정(認定) 욕망의 표현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의 근대성에서 일상화된 체계적인 모욕과 무시의 경험이 깔려 있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수록문 ‘상처 입은 삶의 빗나간 인정투쟁’에서 속물주의의 본질을 맹목적 이익추구나 과시적 물질주의가 아니라 빗나간 인정의 욕망에서 찾았다.

장 교수는 속물근성에 대해 “나도 너처럼 잘나 보이고 싶다는 욕망, 남들과 달리 잘나 보이고 인정받는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고 싶어서 나도 남(대중)들과 다르게 보이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라며 “바로 이것이야말로 속물근성이 왜 그처럼 천박스럽게도 ‘획일적인 다양성’과 ‘똑같은 차이’만을 추구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장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속물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이 같은 생존 이데올로기와 터무니없이 좁은 문화적 인정 지평의 악순환적 상호작용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전면적인 속물주의적 근대문화의 비밀이라는 것. 즉, 속물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형성됐다는 우리의 근대성이 체계적으로 빚어낸 특별한 종류의 근대적 인간형이라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속물주의적으로 폐쇄된 사회문화적 가치 지평을 열어젖히고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존중받으면서도 그들의 자질과 속성이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정받는 사회정치적 조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판적 문화운동과 정치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속물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다’ =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이 겪는 위기 중의 하나는, 속류화되고 세속화된 엘리트들의 야릇한 투기행위와 스노비즘(snobbism·속물주의)에 대해 그들 내부에서의 경고와 자성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수록문 ‘속물의 정치경제학’에서 스노비즘은 지배계층 내부에서 스스로를 ‘권면(勸勉)’하기 위해서 사용한 용어라고 설명했다. 즉, 자본주의의 보수층 내부에서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용어라는 것.

하지만 상호 간 견제와 최소한의 규율에 대한 지적이 없는 한국 지배층에서 속물이라는 말은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않으며, 이 점에서 선진국의 지배층과 핵심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우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지금 시급히 필요한 것은, 한국 우파 내부에서의 건전한 견제 장치”라며 “지배계층들이 서로 속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면, 최소한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 속물주의와 윤리 = “스놉(snob·속물)은 근대의 산물이다. 위계적 신분질서가 자유 경쟁과 평등의 원리로 재구성되는 시민사회에서, 인정 투쟁을 왜곡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는 존재가 바로 스놉”이라고 김홍중 대구대 교수는 규정했다. 김 교수는 ‘스노비즘과 윤리’라는 제목의 수록문에서 “스놉은 인정을 열망하다가 인정의 목적을 잊는다”며 “이것이 스놉의 아이러니”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문제는 성찰성의 도구화, 즉 도구적 성찰성의 전횡”이라면서 “스놉은 성찰성을 도구화한다. 요컨대 그는 성찰 그 자체를 성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도구화된 성찰성은 자기성찰, 자기관리, 자기계발의 근본적 목적에 대한 모색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윤리란 외부에서 주어지는 공동체의 준칙들에 대한 자신 고유의 판단과 성찰과 행위 양식을 의미하며 따라서 “윤리적 삶의 핵심에는 망설임, 주저, 행위의 중단이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이 밖에 문학평론가 고봉준씨는 ‘속물의 계보학’에서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문학에서 속물에 대한 형상화와 이해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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