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를 위한 그날까지 亞! 민중의 외침은 계속된다
매체명 : 세계일보   게재일 : 2008-01-12   조회수 : 6490
평화를 향한 아시아의 도전 박은홍 외 지음/나남/1만5000원

“2007년 11월에 있었던 파키스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1972년 한국의 10월유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버마 민중들의 민주화를 위한 시위와 군부의 강압적 발포는 27년 전 광주 5·18민중항쟁을 기억 속에서 불러냅니다. 30여년 전 장기집권을 위해 인도네시아가 취했던 극렬한 조치들은 한국 군사정권의 긴급조치, 학원탄압, 엄혹했던 사상탄압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장면 한 장면은 고스란히 아시아국가들의 과거의 모습,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 모습에서 다시 살아납니다.”(발간사 중에서·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아시아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관광자원을 지닌 태고의 모습과 독재정권의 무지막지한 민중 탄압이 동시에 떠오른다. 곱고도 슬픈 역사를 간직한 아시아를 지켜온 것은 끝없이 들고 일어난 민중들의 민주화운동이었다. 이 민중의 힘은 아시아의 밝은 미래를 꽃피울 재료로 작용할 것이다. 아시아의 책임 있는 일원이라면 생사가 요동쳤던 아시아 민주화 운동의 궤적을 밟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책으로라도.

‘평화를 향한 아시아의 도전’은 아시아 민주화운동사를 한 줄에 꿰고 있어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며 교양을 일순간에 해박한 경지로 끌어올린다. 책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희망세상’에 연재된 ‘세계의 민주화운동’을 모은 것으로, 대학교수와 NGO 단체 대표, 저널리스트 등으로 구성된 14명의 저자가 각자의 전문 분야를 진지한 탐구와 날카로운 필봉으로 기술해 나간다. 한국과 핏줄처럼 연결된 그곳 어디에서 언제, 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를 숙지하노라면 아시아에 대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뿐더러, 발을 빼지 못하는 마술에 걸린다.

책은 크게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아시아 각국에서의 민주화 과정을 돌아보고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과 함께 앞으로 민주화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된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천안문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시민사회 발전과 민주주의가 그려지고, 중국과의 대립,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 진행된 대만인의 자유의식과 민주화 과정이 소개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쿠데타의 나라’로 기억되는 태국의 힘겨운 자유를 향한 행진과 여전히 반민주주의가 공고한 말레이시아, 첫 직선제 대통령선거 이후 민주주의로 순항 중인 인도네시아가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해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동티모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민주화의 길을 연 필리핀의 멀고 험한 민주화 여정, 군부에 대한 승려들의 시위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민주화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는 버마(민주화 인사들은 군부독재가 고쳐놓은 미얀마보다 조상대대로 불려온 버마라는 국명을 더 좋아함)가 차례로 손에 잡힌다. 여전히 킬링필드의 비극이 계속되는 캄보디아, 제10차 공산당대회에서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인 베트남의 상황에도 눈을 뗄 수 없다.

남아시아에서는 한 번도 군부쿠데타를 겪지 않은 세계 최대 인도 민주주의의 한계가 짚어지고, 살얼음판 위의 스리랑카 휴전 상황과 군부독재하에서 테러의 온상이 된 파키스탄, 국왕의 권력 독점으로 군주제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네팔의 상황이 설명된다. 마지막으로 중동에서는 걸프전 이후 이라크 민주화 달성을 위한 여러 진단과 정책들을 검토한다. 또한 세계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의 고통을 겪는 팔레스타인과 아프가니스탄의 현 상황과 갈등의 원인이 파헤쳐진다.

우리는 아시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과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사정권의 독재에서 겪은 아픈 기억들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우리는 식민지배, 군부쿠데타, 독재체제, 전쟁, 학살 등의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현실에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이 책의 글들이 연재되고 1년여가 지나는 동안에도 아시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버마 승려들이 거리로 나섰는가 하면, 태국에서는 쿠데타로 물러난 탁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12월 총선에서 승리해 탁신의 복귀를 꾀하고 있으며, 타밀셀반과 부토의 죽음으로 스리랑카와 파키스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는 생생한 민주화 역사의 흐름 속에 살고 있으며, 그 흐름에서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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